현대인이 고독의 섬을 벗어나기 위한 탈출속도_김씨표류기

by 정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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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준(2009), <김씨 표류기>


이 영화는 무엇을 말하는가?

표류하는 현대인.


누구?

나 그리고 당신.


1. 오해하기 쉬운 것 하나.


이 영화에서 섬에 갇힌 김 씨는 몇 명인가?

둘.


하나, 남자 김 씨.


그는 자살을 시도하다 결국 한강 한가운데 섬인 밤섬에 갇히게 된다. 그럼 그가 갇힌 곳은 섬인가? NO.


그가 갇힌 곳은 도시 한 가운데. 그는 회사의 구조조정과 부도로 실업자가 되었다. (구조조정이란 무엇인가? 10명 중 5명이 실직되어야 한다면, 그 순서는 무엇인가? 능력? 만약 10명 모두가 능력 있는 자라면?

누군가. 어차피 누군가는 실업자가 되어야 하므로.) 실업자가 된 그에게 여자 친구는 말한다.


"오빠, 못된 거랑 무능한 거랑 어떤 게 더 나쁜지 알아?"


여기 직업도 변변치 못하고 (카프카의) 벌레처럼 꾸역꾸역 사는 착한 -지금 시대에 욕이 되어버린 형용사-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삼성 중견직의 멋진 차와 옷을 입은 하지만 못된 한 사람이 있다. 당신은 누가 더 나쁜 사람이라 생각하는가? 누구에게 호감이 가는가?


그는 직업을 잃고 결국 사채를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과는 신용 분량자. 그가 갈 수 있는 곳은 아무도 없는 섬? 혹은 죽음.


둘, 여자 김 씨


그녀는 집 밖 아니 방 밖을 나가지 않는다. 그녀는 사이버 세상에서 자신의 삶을 찾는다. 그녀는 그녀의 방에, 아니 더 정확히 사이버(가짜) 세상에서 고립되었다.


왜?

집단 따돌림과 (언어) 폭력.


그녀는 외모 때문에, 따돌림 때문에 대인공포증에 걸렸다. 그녀는 이제 현실 세계를 버렸다. 그녀는 모든 것이 가능한, 얼굴조차 바꿀 수 있는 가상 세계에서 리플에 의지해 살아간다. 이 가상의 세계는 그녀의 유일한 도피처, 곧 섬이다. 그녀는 이곳을 표류하고 있다.


2. 섬에서 희망을 찾다?


하나, 남자 김 씨의 희망, 짜장면.


김 씨는 자살을 시도하다가 섬에 갇히게 된다. 다시 자살 시도. 그런데 어이없게도 설사에 실패.(이 인간 나약함의 승리여!) 그리고 똥을 누던 김 씨는 사루비아의 달콤함에 눈물을 흘리며 다시 한번 살아보기로 한다.


"죽는 건 언제라도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왜 갑자기 샐비어를 먹더니 눈물을 흘리고 살 결심을 하지? 까뮈의 이방인은 햇살이 너무 좋아 방아쇠를 당긴다. 정확히 그 반대로 바디는 목을 메달 나무의 체리 향기에 살 결심을 한다 (압바스 카아로스타미 1997, '체리 향기'). 삶과 죽음의 끝자락에서 김 씨는 100년 전에나 경험해 본 듯한 사루비아의 달콤함을 맛본다.


그 한 방울의 달콤함.

이 세상은 아름답다는 혀 끝의 떨림.


그는 살아보기로 한다. 그리고 매일 같이 물고기와 물새 고기만 먹던 그에게 12g의 가루가 그를 욕망하게 한다. 바로 짜파게티 수프. 그에게 짜장면은 곧 욕망이자 희망이자 삶의 의욕이 된다. 여자 김 씨가 배달해준 짜장면을 거절한 것은(그 누구의 도움도 아닌) 자신이 만들어 먹는 짜장면이 곧 그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나도 이 섬에서는 내 힘으로 꿈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짜장면(자신의 노력에 의한 욕망의 성취)'은 희망이 될 수 있는가? 자신이 만든 섬에서 그는 표류를 멈추고 안식할 수 있는가?


둘, 여자 김 씨의 희망 '사이버 세상'


여자 김 씨는 사이버 세상에 산다. 현실 세계는 그녀에게 독설과 상처, 따돌림의 공간이었다. 그녀는 이제 안락하고 편안한 가짜 세상에 산다. 그녀는 모든 것을 마음껏 꾸밀 수 있다.


거짓이 현실 같은 세상. 무능력한 현실의 나를 지우기 위해 게임 속의 캐릭터를 열심히 키우듯(그곳에서 능력자가 되려 하듯), 내 삶은 구질 구질해도 멋진 핸드폰과 비싼 가방, 그럴듯한 옷으로 나를 뽐내 보이듯,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리플로 자신을 만들어 간다.


그녀는 이 가상의 섬에서 피난처를 찾을 수 있는가?


3. 다시 표류


그들은 다시 표류하기 시작한다. 그들이 깨달은 것은 이것. 이 세상에서 나만의 영원한 피난처는 없다. 섬에서 끌려가는 김 씨가 절규하듯 말한다.


"그냥 여기 있게 해 주세요."


4. 그렇다면, 도피처는 (그것이 잠시일 망정) 의미가 없는가?


사이렌이 울린다. 봄, 가을 두 번 20분간. 모든 것이 멈춘다. 멈추어버린 세상을 볼 수 있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짧은 시간. 절망적인 (표류하는) 현실을 떠나 두 김 씨는 섬으로 도피한다. 그곳에서 그들은 자신의 희망을 꿈꾸어본다. 세상이 돌아간다면 곧 사라져 버릴. 하지만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짧은 휴식.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가?


"수고한 자여 떠나라!"

쉬라. 꿈꾸라.

살아있음을 느껴라!


다만 이곳은 잠시 피난처임을 결코 일상이 될 수 없음을 기억하라. 이 시간, 살아있음이 일상이 될 계략을 꾸미라. 그대,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로워라!


5. Who are you?


여자 김 씨에게 남자 김 씨는 질문한다.

'Who are you?'


섬에서 자신의 꿈을 일구어 보려던 김 씨에게 한강 정화작업을 하러 온 의경은 묻는다.

'아저씨, 누구세요?'


자신의 섬에서, 그 고립에 안주해 피난처를 찾던 그들은 이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다.

'나는 누구인가?'


6. 진짜 희망은 없는가?


사루비아의 달콤함을 맛보고 다시 살기로 결심한 김 씨는 모래 위 메시지를 바꾼다.


HELP 에서

HELLO 로


그리고 여자 김 씨와 남자 김 씨는 대화를 시작한다. 아주 짧은 하지만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대화.


HELLO.


자신의 섬에서 쫓겨난 김 씨는 이제 모든 희망을 잃었다. 그에게 마지막 희망은 확실히 죽는 것. 63 빌딩 옥상으로 향하는 남자 김 씨에게 여자 김 씨는 달리기 시작한다. 끊긴 메시지 'Who are you?'에 답하기 위해서. 자신의 마지막 희망에 답하기 위해서. 그녀의 한 마디는 그 두 김 씨를 섬에서 끄집어 내주었다.


'MY name is Kim Kyongyuen. Who are you?'


7. 현대인의 섬은 어디인가?


출근시간. 신도림역에 한 여성이 구타당하고 있다. 남자는 욕설과 함께 여자의 뺨을 때리고 땅에 뒹구는 여자를 발길질한다.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사람들에게 (차마 속으로) 말한다.


'HELP'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아니 모르는 척한다. 모두들 같은 노래를 부르고, 모두를 같은 가방을 메고, 모두들 같은 소리를 하면서, 지금 이 시간 그들은 남이다. 김 씨는 어두운 하지만 불빛으로 가득한 서울의 고층빌딩에 바지를 까고 외마디를 지른다.


"이래도 안 보이냐?"


현대인의 섬은 어디인가? 이제 더 이상 섬은 외진 곳이 아니다. 사람이 많은수록, 높은 빌딩이 많을수록 이곳은 더 고립된 섬이다. 오늘날 가장 고립된 섬은 서울 한복판 아닌가? 현대인들은 (나와 당신은) 고립되어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세상이 요구하는 능력에. 어떻게 이 섬에서 빠져나오지?


이 영화는 말한다.

이제 'HELP'라 말하기보다 'HELLO'라 말하자. 그리고 'Who are you?'에 답하자.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 나 자신을 찾는 것, 이것이 원자화된 현대인이 표류를 마치는 방법이 아닐까. 이 섬은 누군가의 손길 없이 빠져나올 수 없으므로.


-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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