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케탈 48. 독일 야외베란다

우리들의 특별하고도 아늑한 바깥 공간

by 정아름

독일 바이마르,

사람에게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에서 키친이 그녀에게 그런 존재였듯, 누군가에게는 부엌이 그러할수도, 서재가 그러할수도, 혹은 화장실이 그러할수도 있겠다.

어렸을때부터 단칸방이나 좁은 방 두 개에서 부모님과 남동생과 살았던 나는, 늘 그 공간에서 살아왔기에 불편한 줄을 몰랐다. 오히려 가까이 있어 남동생과 늘 함께 놀았고, 바깥 화장실에 나갈때면 무서워서 혼자 노래를 부르면서 달려갔다 들어오다 밤하늘을 보고 한참 서 있기도 했다.

늘 한 공간에 엄마 아빠와 함께 있는 것이 좋았고(물론 엄청 혼나기도 해서 울어댔지만) 아빠의 청소년기 무용담을 들으며 엄마 옷깃을 잡고 잠드는 것도 좋았다. 스무살이 갓 넘어 새 집으로 가게 되었는데 방도 있고 거실도 있고 넓고 깨끗한 화장실도 집 안에 있었다. 현관도 있고 창문을 열 때 삐그덕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아빠는 서재에서, 나는 내 방에서, 엄마는 부엌에서, 동생은 거실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드디어 각자의 공간이 생긴 것이다. 가족 모두가 환호했고 기뻐했다.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싱숭생숭했다.


그런데 이게 왠걸!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자 각자의 공간이라고 좋아했던 그 곳에 아무도 있지 않았다.

모두가 거실에 삼삼오오 붙어 앉아 있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기에 우리는 각자의 특별한 사생활을 지켜주는 것보다는 무릎을 맞대고 같이 있는 편이 더 좋았던 것. 그래서 서로 거실에 있겠다고 했다. 그러다가 웃었다.

독일에서는 밖이 보이는 거실 겸 서재였던 방, 그리고 이어지는 야외베란다가 우리에겐 퍽이나 특별한 곳이었다. 남편과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곳, 바람에 햇볕에 빨래를 널며 기지개를 펴던 곳,

해가 모처럼 뜨면 일광욕을 즐기던 곳, 옆 베란다에서 비키니를 입고 썬텐을 즐기던 아리따운 아가씨가 있어 나는 깜짝 놀라고 누군가는 매우 좋아했던 곳, 아이가 유치원 끝나고 돌아와서 화분에 물을 주던 곳,

분필로 기찻길이라며 그림을 그리던 곳, 이불을 매어주어 흔들침대로 아기가 누워있던 곳,

휴식을 잠시 취하고 다시 물놀이를 즐기던 곳,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할로'하고 인사하던 곳.

야외베란다는 집에 있으면서도 밖에 나와있는 기분을 만끽하게 해 주고, 드넓은 유채꽃밭 풍경이 시든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멀리 보이는 하늘과 푸른 공기는 매일 숨 쉬고 싶은 마음을 들게 했던 곳. 베란다에서 키울 줄 도 모르는 꽃을 키우며 말 거는 법을 처음 배웠던 곳. 어떤 이유에서건 외롭거나 답답한 마음들을 위로해 주던 곳.

그래서 식물과 꽃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해 주었고, 꽃을 사고 물을 주고 바라볼 줄 알게 되었다.(만약 독일에서 꽃을 좋아하는 시기가 없었다면 한국에 돌아와서 돈으로 포장한 꽃다발을 사달라고 사랑을 앞세우며 남편 옆구리를 마구 찔러댔을지 모른다.)


한국에 왔더니 야외베란다가 없다. 기존 베란다를 꾸며 앉아보았으나 앞 집이 여실히 보인다.

방충망을 열고 고개를 빼 본다. 쉽사리 '바깥'을 느끼기가 어렵다. 이럴 땐 어렸을 적, 마당 있는 집이 자꾸 생각난다. 그래도 이렇게 밖을 볼 수 있어 공기를 마실 수 있어 다행이라고 스스로 토닥여본다.

괜찮아. 괜찮아.


햇볕이 너무 따뜻하게 내리쬐던 야외베란다에서 나는 두 팔을 뻗어 '아으자으'하며 알 수 없는 외계 생명체의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폈다. 베란다 앞 쪽빛 벌판을 보고있으면 남편은 커피를 가져오고 아이는 다가와 안겼다. 그곳은 바로 우리의 '집'이었다. 우리들의 특별하고도 아늑한 바깥의 공간.


어른이 된다고 더욱 알아가고 커지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이를 먹으며 나도 모르게 복잡하게 머리를 쓰려하니, 사랑은 흐려지고 관계는 빛바래진다.

아이가 웃는다. 왜, 웃냐고 물어보니 엄마가 좋으니까 라고 답한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의 '집'에서 사랑의 방법 하나를 곁에 있는 이들에게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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