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용기란_독일 야외수영장

아인스, 쯔바이, 트라이!

by 정아름

독일 작은 도시 바이마르에 여름 야외 수영장이 개장했다. 평소에는 실내 수영장만 개방하는데 여름이면 야외 수영장을 개장한다. 야외수영장은 드넓은 초원에 하늘을 덮는 흰 자작나무들이 가득하고, 풀장은 넓고 깨끗해 값비싼 리조트가 하나도 부럽지 않은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수영장이다.


정교하고 세심하게 만들어진 나무 놀이터에서는 아기들과 아이들이 놀고, 잔디밭 옆 모래 코트에서는 젊은이들이 금발머리를 날리며 배구를 한다. 파란 눈과 하얀 모래가 여름 볕에 반짝인다. 수영을 하는 사람들 반, 풀밭에서 한가롭게 책을 읽거나 쉬는 사람들이 반이다. 비키니를 입은 할머니가 풀밭에 앉아 화이트 와인을 마신다. 고운 백발과 어울린 할머니의 늘어진 살들과 배가 아름답게 출렁인다. 만삭의 임산부도 비키니를 입고 지나간다. 옆에서 아장아장 걷는 갈색머리의 아기가 첫째인가보다. 배가 무거워도 옆에서 아이가 칭얼거려도 비키니를 입은 임산부는 여름 햇살처럼 눈부시게 웃는다.


게다가 모처럼만에 해다. 사람들은 일 년 내내 흐린 날씨에 축축했던 몸을 말린다. 뜨거운 내음과 여름빛을 몸 구석구석에 채워 넣는다. 다시 빛 없는 일 년을 살아갈 준비를 하는 것처럼 조용한 움직임을 연다.

수영장은 시립이어서 아주 저렴하다, 약 삼천 원 정도. 한강 수영장처럼 긴 줄을 오랫동안 서거나, 오물이 떠다니거나, 사람이 많아 자리가 없거나, 음식을 가지고 못 들어가거나, 수영장 안, 음식 값이 턱없이 비싸거나, 몸매가 안 되는 사람이 이용하기 민망한 분위기이거나, 젊은이만의 전유물이거나 하는 일은 없다.


그리고 위치는 시내 중심, 바이마르 시청 바로 앞이어서 사람들은 집에서 슬리퍼를 신고 걸어 나온다. 가족과 나는 드넓은 풀밭에 앉아 독일 소세지와 감자튀김으로 점심을 먹은 후, 후식으로 수박을 쪼개먹고 있었다. 그 때 한 초등학교 3학년쯤 보이는 남자 아이가 스스로 가장 높은 다이빙대에 올라갔다. 이 다이빙대는 성인 남자도 의협심에 올라갔다가 그냥 내려오곤 하는 곳이었다.


소년은 무서워서 뛰어 내리지도, 그렇다고 뒤돌아 내려가지도 못하고 다이빙대 끝과 계단 사이를 한참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지나자 부모로 보이는 사람이 아이에게 다가가 그만하면 됐으니 내려오라는 손짓을 했다. 아이는 망설였다. 그리고 계속 망설였다. 시간이 한참 지난지라 수영장의 모든 사람들이 이 모습을 재밌어라, 또 궁금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스피커에서 수영장 관리자로 여겨지는 사람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당연히 아이의 부모에게 '위험하니 어서 아이를 데리고 내려오라'고 말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전혀 다른 말을 했다.


"넌 할 수 있어! 겁내지 말고 뛰어내려! 자, 내가 도와줄게! 이제 셋을 셀 거야. 뛰어 내리면 돼!"


그리고 스피커에서 큰 소리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수영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도 스피커 소리를 따라 큰 소리로 숫자를 따라 셌다.


아인스, 쯔바이, 트라이!


사람들의 목소리가 하늘 높이 솟은 자작나무 가지를 지났다. 다함께 세는 같은 목소리는 마치 화음 있는 멜로디처럼 수영장의 물결을 일으켰다. 목소리의 여운은 공연장의 클라이막스처럼 짧고 강렬했다. 아이는 다이빙대 끝을 박차고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뛰어내렸다. 아이가 물로 떨어지는 몇 초 동안, 모든 것은 잠시 숨을 멈추었다. 바람도 공기도 나뭇잎의 흔들림까지. 이윽고 “풍덩!”하는 소리와 함께 세상은 다시 깨어났다. 여름 공기를 흔드는 박수소리가 수영장을 울렸다. 모든 사람들은 아이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나도 손뿐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박수를 쳤다.


이후, 난 가끔 이날을 떠올린다. “위험해! 그냥 내려 와. 그만하면 됐어.” 이런 말이 스피커에서 나왔다면 그래서 풀이 죽어 그 아이가 그냥 내려왔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그 아이에게 평생을 두고 기억에 남을, 어쩌면 용기 있는 삶을 사는 시작점이 될 이 사건이 그냥 지나치고 말지 않았을까.


나는 과연 용기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뛰어 내려도 죽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뛰어 내려 보고 싶으면서도, 단지 두려워서 '이 일은 무모하다고, 이 일은 위험하다고, 이만하면 되었다고' 두려움 때문에 모든 것과 타협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이 초등학생 아이만한, 아니, 이렇게 용기 있는 삶을 나는 과연 살아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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