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떠나기 3일 전, 크리스마스 마켓은 둘러보고 가야한다는 생각에 바삐 거리에 나섰다. 시내에 사는 지인에게 저녁 초대를 받고 남편과 잠시 구경해 보기로 한다. 독일 사람처럼 추적추적 비를 맞으면서.
아이는 마침 자고 있어서 유유히 시내 산책한다. 우산이 없어 모자를 뒤집어 쓴다. 비가 오고 날씨는 춥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마켓구경을 한다. 나도 비슷한 얼굴로 하려 해 보지만,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어깨는 움츠려들고 눈가는 주름으로 기울진다. 그리고 사람이 이렇게도 많은데 그리 시끄럽지 않다. 독일 사람들의 조용조용한 성향 탓인가.
거리를 마냥 걸어도 좋을 것 같다. 조명이 은은해서 그런지 별빛 같고 달빛 같아서 소녀 감성은 이미 충만.
빨간 별과 빨간 우산이 잘 어울려서 보게 되는 사진.
함께 걷는 독일 사람들과의 보폭이 가까워지니, 이들과도 독일이라는 나라와도 더 친밀해지는 느낌이다.
그동안 빙빙 돌며 한국 사람 가득한 기숙사에서만 생활해 와서 그런지, 이렇게 모처럼 시내에 나오면 더욱이 축제나 마켓이 서는 날에 북적이는 사람들 가운데 서면 이런 기분이 든다. 밖으로 나와야만 가능한 일인데, 무엇이 나를 발목 붙잡아 방안에 가두었던 것인지.
한 달 전부터 크리스마스를 이토록 기다리는 사람들 곁에서 나도 크리스마스를 생각한다. 내일은 일주일 뒤는 한 달 뒤는 어떻게 될까. 어디에 있을까. 크리스마스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무로 만들어진 장식품을 파는 가게에서 멈춘다. 하나 정도 기념으로 살까 하는데, 우리 집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남편은 만류한다. 어울리는 집은 언제쯤? 남편은 대답이 없다. 대신 있는 동전으로 아이 기차를 태워주기로 한다. 더 값진 일이라는 남편의 말에 동감하는데, 말이 끝나자마자 일어나는 신기한 아기.
오후 늦게 잠들어서 이제 일어나다니, 오늘 밤 잠은 다 잔 것 같다. 기차를 보자마자 아이들은 너도나도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우리 아기.
앞자리에 앉으라고 했더니 맨 끝이 더 낫단다. 거만한 포즈로 기차에 오른다. 웃지도 않고, 소리도 내지 않고 묵묵히 기차를 탄다. 해맑게 웃는 독일 아이들과 표정 없는 우리 아기의 조합. 나와 오빠만 연신 "좋아? 좋아?" 되묻고, 아기는 그저 당연한 것을 즐긴다는 표정. 어릴 적 동네에 장난감 말이 달려있는 트럭이 오면 신이나서 달려가 50원을 주고 탔었다. 앞 뒤로 흔들리는 말을 타면서 정말 하늘을 달리고, 초원을 가로지르는 듯한 기분이었는데, 아이도 기차를 타며 다른 세상에 온 듯 한 기분일걸까. 엄마 아빠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