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7월의 공기를 흔들었던 그 사람의 목소리. 세 번째 데이트에서 남편은 독일에 가자고 했다. 이거 청혼 비슷한 거 아닌가? 여자의 상상은 신혼집 커튼 색깔을 고른다. 세 번째 사적인 만남에서 그가 제안한 독일행은 섬 소녀가 육지에 끌리듯 끌렸다. 그리고 흠뻑 그에게 반한 나는 그냥 좋아서 응, 이라고 나는 바로 대답해버렸다. 머뭇거리는 밀당 어린 대답은 애초에 나랑 어울리지 않았으므로.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서 이불을 뜯었다. 나 미쳤나 봐. 제주도밖에 안 가봤으면서.
이듬해 우리는 신혼여행을 독일로 갔다. 미리 본 독일은 상상보다 더욱 정갈하고 모던하고 아름다웠다. 살게 될지도 모르는 곳들을 여행하는 동안 안심이 되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슈투트가르트로, 그리고 바이마르까지. 그때는 잘 몰랐지만 독일은 여행하기보다 살기에 더 좋은 곳.
남편은 하던 건축을 접고, 사회학으로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독일 학비는 얼마야?
무료야.
나는 에이, 하고 웃으면서 더 잘 알아보라고 했다. 갑자기 억울하고 싸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2000년대에 사립대 인문학부에 입학했었다. 인문학부라 공대나 예체능보다는 학비가 적은 편이었으나, 등록금을 내는 입학 첫 해에 우리 집은 오래된 차를 팔았다. 다음 해에 아빠는 호형호제하는 옛 회사 동료에게서 돈을 빌렸다. 학비를 내야 하는 여름과 겨울 방학의 끝에 서면 나도 모르게 눈치가 보이고 죄스러워졌다. 졸업을 하고 빨리 취직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대학생활 내내 내 주위를 휘감았다.
친구들이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 나는 자취방에서 집에서 가져온 감자와 양파로 카레를 한 냄비 끓여 먹었다. 학점을 잘 주는 교수님 수업을 수강 신청해 꼼꼼히 메모하고 열심히 암기해 좋은 점수를 받았다. 그렇다고 공부를 완전히 잘하지도, 잘 놀지도 못한 참 재미없는 대학생활을 했다. 학기마다 내야 할 등록금과 교재비, 기숙사비와 교통비는 계속 나를 쫓아다녔고, 나는 스물두 살이었다.
독일의 학교는 학비가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학교에 입학하고 매 학기 등록기간에 약 25만 원 정도 돈을 내긴 한다. 그런데 25만 원의 대부분은 그 지역의 교통수단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교통비다. 버스와 트램, 기차까지 학생증을 제시하면 그냥 탈 수 있다. 우리는 튜링겐 주의 바이마르에 살았는데 남편은 학생증으로 튜링겐 주 어느 도시의 어떤 교통수단이든 자유롭게 이용 가능하다. 그래서 주말이 되면 인근 도시로 기차 여행을 종종 가며 독일의 여러 도시들을 구경했다.
그리하여 결론은 독일의 학교는 무료로 다닐 수 있고, 소정의 등록금을 내면 플러스알파의 교통비를 학생에게 제공한다.
독일에서 세금을 내며 일하면, 만 18세까지 한 아이당 매달 양육수당을 219유로(29만 원 정도)를 매달 받을 수 있다. 아이들은 연필과 공책까지도 무상으로 학교에서 제공받는다. 적어도 등록금 문제 때문에 부모와 아이가 공부를 더 할 수 있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정말 아이가 공부를 하고 싶으면 대학에 가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직업학교에서 전문 기술을 배우는 마이스터 과정을 밟으면 된다. (과정이 초등학교 4학년 때 분리되어 너무 이르다는 논쟁도 있다.)
그리고 독일처럼 음대에서 첼로를 가르치는 전임교수와 보일러를 수리하는 마이스터의 월급 차이가 없다면 대학은, 그야말로 선택의 문제가 될 것.
우리는 아이들이 원한다면, 독일에서 공부했으면 하고 종종 이야기한다. 남편은 꼭 공부가 아니더라도 길게 유럽여행을 꼭 보내자고 말한다. 독일 생활 중간에 한국에 돌아와 남동생을 설득해 끌고 간 것처럼, 우리만 알고 있기에 너무 아까운 독일의 사회 분위기와 독일의 교육 체계. 물론 매달 생활비와 초기 어학원 비를 합하면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비용과 비슷하겠지만, 이왕 같은 비용이라면 독일에 가서 공부하는 것이 인생을 놓고 볼 때 훨씬 많은 경험을 하지 않을까.
만약 스무 살의 내가 독일을 알았다면, 그래서 부모님과 딜을 해서 짐을 싸서 그곳으로 갔다면 나의 서른과 마흔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상상해보는데, 곁의 두 아이가 전혀 맞지 않는 화음으로 삑삑 질러대는 노래에 화들짝.
아무 말도 필요 없어. 이 시간 사이에,
*전 세계에서 학비가 없는 나라는 독일과 노르웨이다. 그동안 무료였던 핀란드도 2017년부터 유료화 했고, 스웨덴은 2012년부터 유료가 됐다. 노르웨이는 외국인에게도 학비를 받지 않는다. 독일의 경우 16개 주 가운데 바덴바템뷔르크주는 예외적으로 국제학생들에게 수백만원 수준의 학비를 받는다. 독일의 나머지 주는 무료다.
출처: 아시아엔 2020. 8. 9 [이강렬의 행복한 유학] 가난한 유학생들의 소망 ‘노르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