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동안 7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이 집 저 집으로 여섯 번을 옮겨 다녔다. 낯선 땅에서 안정적인 공간은 너무 절실했다. 한 달 여 만에 겨우 집을 구했는데 월세는 상상치도 못한 70만 원 정도, 그나마 바이마르는 구동독 도시여서 다른 도시에 비해서 저렴한 편이라는 더 놀라운 사실. 그리고 입주하게 된 독일식 주택은 사진에서나 보던 딱, 고풍스럽고 예쁜 유럽 집.(그런데 살아보니, 바닥 난방이 아니라 너무 너무 춥고 전기수도세는 너무 비싸다)
한국에서 배편으로 보낸 짐은 아직도 도착하려면 멀었고, 일단 인터넷부터 설치하기로 했다. 남편이 인터넷 회사에 전화를 했더니 메일로 집주소와 연락처를 보내라고 했고, 연락을 기다렸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삼일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 일주일이 지나고 연락을 했더니 아주 당연하고도 무심한 말.
조금 더 기다려라.
그래 그래, 여기는 한국이 아니야. 독일이잖아. 독일은 한국과 진짜 많이 다르겠지. 스스로 주문을 걸며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한 달이 되었다.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바우하우스 도서관으로 가서 필요한 것들을 처리했다. 어느 날,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밖에 나가 봤더니 아무도 없다. 문 앞에는 메모가 남겨진 종이가 달랑 붙어있다. 무서울 정도로 불길하다. 남편이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메모를 해석하고, 믿을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인터넷 설치를 하러 왔으나, 너희가 문을 열어 주지 않아 돌아간다. 오늘 다녀 간 인건비 70유로를 입금해라.
나는 저주의 편지를 받은 듯, 손에 힘이 풀리며 종이를 떨어뜨렸다. 이건 아니잖아. 나는 앞머리가 쏟아질 듯 아파왔다. 생에 처음 겪어보는 당혹스러움을 안고 우리는 70유로를 입금한 후, 다시 인터넷 설치 날짜를 잡았다. 그러나 왜 사람은 똑같은 오답을 또 쓰고야 마는 걸까. 며칠 후, 나는 초인종 소리를 또 늦게 듣고 달려 나갔고, 아저씨는 메모를 붙이고 또 가셨고, 우리는 70유로를 또 보내야 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고 우리는 인터넷 설치는 하지도 못하고 140유로를 날렸다. 이후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주택에서 학교 기숙사로 옮기며 학교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어 사설 인터넷을 설치할 필요가 없어졌다.
지금은 한국. 나는 초고속 인터넷으로 영화를 1분 안에 다운로드한다. 그리고 이렇게 뜬금없이 독일 생각이 난다. 한국은 인터넷도 설치기사 아저씨도 과할 정도로 빠르다. 하지만 독일처럼 천천히 여유롭게 일할 수 있다면, 일하는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너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키보드를 타닥타닥.
보험계약 한 달 동안 세 곳을 찾아가다
독일학교에 등록을 하려면 보험에 가입되어야 한다. 보험 계약? 하면 되지 뭐, 하며 독일어에 능숙한 지인과 함께 보험회사를 찾았다. 그리고 첫 번째 회사에서 단번에 거절. 통장잔고와 국적, 가족 수, 직업 등을 살펴 보험을 계약할 수 있는데 우리는 조건이 안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어 두 번째 보험회사도 거절. 남편의 학교 등록 마감일은 다가오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학교는 합격했는데 보험 등록이 안되어 학교 등록이 안될 수도 있다는, 말이 안 되는데 독일에서는 말이 되는 사실.
집도 겨우 구했는데 보험가입도 만만치 않다. 다시 보험회사에 찾아가 서류를 제출하고 부탁하고 반복했지만 안된다는 슐디궁-미안하다는 말만 돌아오고, 마지막으로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세 번째 보험회사를 찾아가 서류를 내고 기다렸다. 안되면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아야지, 하는 남편의 말이 조금은 위로가 되기도 했지만 독일이란 나라는 참으로 무엇이든지 어렵구나. 그리고 세 번째 보험회사에서 기대와 달리 너무 쉽게 승인이 났다. 독일 도착한 지 한 달만에 보험 가입했다.
처음 만나보는 불편함과 기다림의 형태. 마치, 여유롭게 걸으면서 풍경을 보기도 하며 차를 마시면서 일이 되어가기를 지켜봐야 하는 곳.
택배, 직접 못 받으면 찾으러 가야해요
독일에서는 한국 음식이 엄마처럼 마냥 그립다. 독일 소시지도 빵도 완전한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 엄마는 황태며 깻잎 반찬이며 고춧가루까지 한 상자를 항공편으로 보냈다. 된장은 혹시나 터질까 봐, 또는 세관에서 썩은 음식으로 알고 박스 자체를 버리는 일이 있다기에 패스했다. 그리고 나는 몇 달 전, 인터넷 설치 기사 아저씨가 다녀 간 과거의 잊을 수 없는 사실을 잊고 말았다. 이 모든 것은 내 잘못이다. 초인종이 울렸고, 설거지를 하다 고무장갑을 벗는데 잘 안 벗겨지는 데다 아기가 기어와 '어매 어매'하며 다리를 붙잡고 시간은 지체됐다. 역시나 아저씨는 메모를 붙이고 가버리셨다.
아저씨... 제발요...
나는 진짜 울먹였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다니. 그래도 내일 다시 오겠다는 메모였기에, 그나마 다행이라 한 숨. 한국처럼 몇 시에 택배가 도착하는지, 실시간 배송으로 아저씨가 어디에 계시는지, 문 앞에 둘지 경비실에 맡길지 선택할 수 있는 건 상상할 수 조차 없는 독일에 우리는 있다. 택배 아저씨가 언제 오시는지도 몰라 하루 종일 초인종이 언제 울리는지 귀를 기울여 기다리며 오늘은 반드시 이 미션을 성공하리라 다짐한다. 그러나 미션 파서블 하지 못하면 그렇게 두 번을 기약 없이 아저씨를 못 만나서 택배를 받지 못하면 사태는 심각해진다. 우체국으로 직접 택배를 찾으러 가야 하는 것. 당연히 차도 없어서 그 무거운 택배를 들고 오면서 남편과 몇 번을 쉬었다가 다시 들고 집으로 이동하는 생애최초 번거로움 끝판왕.
한국에 왔더니 택배는 소비자 입장에서 너무 편리하다 못해 새벽과 휴일까지 원하는 물건을 원하는 시간에 받는다. 나는 택배 아저씨를 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다. 추적이 아니라 감시에 가깝다. 그러는 동안 2020년 이후, 택배 사망자는 16명, 그들은 일일 14-16시간 주당 60시간 이상을 일한다. 이 거대하고 무거운 벽을 우리는 함께 무너뜨릴 수 있을까. 그러기에 소비자들은 편리함에 너무 익숙해져 그들을 배려해 불편함을 감내하기에는 아직 무리인 상태.
독일 도로공사, 천천히 천천히
바이마르의 주요 도로 슈토이벤길(Steubenstraße)이 공사 중이다. 한국이면 보름이나 한 달이면 될 일이 독일에서는 6개월이 걸린다. 바이마르에서 통행량이 가장 많은 도로 중 하나라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모든 버스는 한 참을 돌아가야 하며, 아침저녁으로 차가 밀리기도 한다. 평소에는 작은 도시 바이마르에 차가 밀리는 일이 거의 없다. 또한 이 도로를 지나는 사람들이 불편할 뿐 아니라, 주변 상인들에게는 실질적인 수입의 감소를,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소음과 먼지를 참아내야 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야간작업은 없다. 토요일 일요일은 작업 쉰다. 오후 4-5시면 모든 공사가 중단된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마음속에 불평이 없어서가 아니라 당연히 기다려야 된다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내 경험으로 보아) 의문을 가진다.
'어떻게 유럽은 퇴근해서 아이들과 함께 놀고 (4-5시를 말함) 저녁을 먹으며 또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지?'
여기에 '키'가 있다.
참아야 할 것을 참는 것.
사용자의 입장에 있을 때도, 제공자(여기서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
이 바이마르 공사는 내게도 불편을 준다. 하지만 이 '불편한' 길은 또한 내게 생각할 시간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