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체리를 발견하자마자 달려가고, 나무에서 갓 따서 먹는 신선한 체리에 모두의 노곤함이 풀어지는 듯. 독일의 에덴동산에서 달콤한 과실을 따 먹고 있는 나와 세 살 반짜리 아이는 눈을 마주친다.
자전거에서 내리면 하루의 2막이 시작된다. 짐을 풀고 나면 '캠핑'으로 들어간다. 남편은 텐트를 치고, 나는 식사 준비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신기하게 정확한 시간에 배가 고프다. 신생아 때부터 아이는 새벽 2시, 4시, 6시 한치의 오차 없이 정확한 시간에 깨서 모유를 먹었다. 인간에게는 이렇게 정확한 알람의 기능이 존재하며 네 살이 된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나는 여행에서 '잘 먹고 다녀야 한다'는 주의여서 짐을 쌀 때도 대부분이 음식이었다. 남편은 허기만 채우면 된다고 생각하는 나와 정반대. 집에서 짐을 챙길 때 나는 간장부터 된장, 마른미역에 김, 짜파게티와 스파게티 소스와 집에 있던 과일들을 몰래 자전거에 실었다. 들켰다간 당장 남편의 얼굴 표정이 굳어질 테고 이 중요한 먹을 것을 포기하는 중대한 사태가 일어날 테니. 그러다 보니 자전거가 휘청이고 넘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첫날 넘어져 다친 것도 결국은 내가 몰래 실었던, 먹을거리 때문이었다.
그리고 하루, 이틀 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허기를 채우기 위해 먹는다. 더 중요한 건 무엇을 먹어도 맛있다.
인적이 드물고, 땅바닥이 평편하고, 물이 흐르는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는 곳을 찾고 어두워질 때 즈음해서야 겨우 짐을 풀었다. 오전에 마트에서 사 온 목살을 남편이 간이 숯불에 굽고, 가지고 온 된장과 미역으로 국을 끓인다. 독일 들판에 미역 된장국의 향이 퍼지고 있다.
맛있어. 진짜, 맛있어.
자전거로 탈진한 상태에서 배고픈 천사는 찾아왔다. 고기의 육즙이 입 안을 감도는 데, 오르막 끝에 올랐을 때처럼 깊은 감동. 고기를 꼭 꼭 씹어가며, 아이 입에도 넣어주면서 지는 해를 본다. 벌써 저녁 여덟 시, 아이는 말도 하지 않고, 먹는다. 엄마의 '맛있냐?'는 말에 아이는 대답할 겨를이 없다. 나도 배가 고프지만, 아이가 한 입 더 먹으라고 한 타임을 쉰다. 아이 입으로 맛있는 게 솔솔 들어가는 것처럼 고마운 게 없다. 늘 밥을 떠다 먹이듯이 하다가 스스로 맛있게 먹는 모습이 대견해 연신 머리를 쓰다듬는다.
"잘하네. 잘하네."
아이는 자신이 대체 무엇을 잘하는지 알지 못한다. 엄마가 무엇 때문에 기뻐하는지 모른다. 그냥 맛있어서, 배가 고파서 먹는다.
"엄마, 나는 이 초록색 아이스크림이 너무 맛있어요."
"응, 엄마는 커피가 너무 맛있어."
"커피는 쓰지 않아요?"
"쓰고 달콤하고 맛있어. 먹으면 기분도 좋고 힘도 나고."
"어? 나도 아이스크림 먹으면 힘이 나는데, 우리 똑같다."
엄마와의 공통점을 찾은 아이는 "똑같다."라는 말을 끝내고 봉싯 웃으며 흘러내리는 아이스크림을 핥아먹는다. 무전여행에서 커피와 아이스크림은 최고의 사치이지만, 우리 고생했으니까 서로를 칭찬하면서 보상의 대가를 당당히 받는 시간. 독일의 아이스크림과 커피는 최고의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