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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하루의 BGM

-주연은 아니지만 하루를 완성하는 배경음

by 언덕파

라디오를 틀면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오는 건 진행자의 목소리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같은 영상 콘텐츠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대개 화면의 비주얼, 혹은 내레이션에 집중한다. 하지만 나는 늘 그 뒤에서 흐르는 소리에 신경을 쓴다. 크게 울리든, 나지막하게 배경을 채우든 상관없다. 그 소리가 바로 BGM이다.

편집의 퀄리티와 내레이션의 차분함도 어탠션이 있지만 난 BGM을 관심 있게 들어본다. BGM은 귀에 걸리지 않고 흘러가는 곡도 있지만 그 채널만의 아이덴티티로 고정된 곡도 있다. 음악만 들어도 아 그 채널, 아 그 광고, 아 그 사람. 우리는 메인을 기억하려 할 때 서브의 무언가를 떠올려 기억을 선명하게 떠올린다. 광고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배경음악은 내게 그냥 곁다리가 아니라 메인과 똑같이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사람들은 메시지와 카피를 기억한다고 생각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광고를 각인시키는 건 BGM일 때가 많다.


광고 촬영에 들어가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바로 PPM(Pre Production Meeting)이다. 확정된 콘티와 의상, 촬영 로케이션, 아트, 장비, 모델 리스트까지 촬영 당일 필요한 모든 체크리스트를 클라이언트와 합의하는 자리이다. 이 자리는 수많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중요한 순간이지만, 내겐 항상 또 하나의 중요한 제안이 있다. 바로 BGM 리스트. 콘티를 살려내는 건 편집 기술이나 모델의 연기만이 아니다. 어떤 음악을 입히느냐에 따라 메시지가 전혀 다른 무드로 전달된다. 때론 평범한 영상이 음악 하나로 극적으로 살아나고, 때론 좋은 아이디어가 음악을 잘못 만나 힘을 잃기도 한다. 이런 예는 많다. 지금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광고 중 하나는 “사람을 향합니다” 캠페인이다. 그 시리즈 영상 안에는 늘 비틀스의 ‘Let it be’ 편곡 버전이 흐르고 있다. 어떤 카피보다, 어떤 장면보다 그 음악이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했다. 원곡 자체가 주는 감동을 광고에 고스란히 끌어온다. 오히려 영상 속 장면의 감정을 더 증폭시킨다. 사람들은 광고 내용을 다 기억하지 못해도, 음악이 흐를 때 그 캠페인을 기억해 낸다. 그리고 그때 느낀 공기와 정서는 오래 남는다.


BGM은 광고에만 있는 게 아니다. 내 일상에도, 당신의 일상에도 늘 배경처럼 깔려 있다. 세계적인 음악이나 대중적인 히트곡만이 배경음악은 아니다. 아침에 출근길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한 곡, 사무실에서 무심히 틀어놓은 인터넷 라디오, 저녁 러닝 때 이어폰에서 반복 재생되는 곡. 이것들은 다 내 하루의 리듬을 만들어주는 일상의 BGM이다. 심지어 가게 앞의 교통 소음도, 골목의 아이들 웃음소리도, 골프장 코스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도 생각하기 나름이다. 소리는 가끔 느끼기에 따라 음악이 되기도 하니까. 의식적으로 신경 쓰면 불편할 수 있지만, ‘아, 이것도 내 하루의 배경음악이구나’ 하고 받아들이면 삶은 조금 더 유연해진다. 엄마의 잔소리조차 그렇다. 그 순간만큼은 귀에 거슬리지만, ‘이것도 내 삶의 BGM이다’라고 생각하면 낯선 화음처럼 묘한 안정감이 생긴다.


대부분 사람들은 메인 스트림(주류)에 집중한다. 화면 속 모델, 무대 위 주연, 라디오 DJ의 멘트, 유튜버의 표정. 하지만 진짜 감도를 만드는 건 메인이 아니라 곁이다. 메인스트림이 놓친 이야기는 늘 배경에 깔린다. 그 배경 중 하나가 바로 BGM이다. 광고든 삶이든, 사실 주연은 늘 과장되어 있다. 빛나는 카피, 화려한 의상과 영상기법, 잘 짜인 각본. 하지만 우리가 오래 기억하는 건 배경에서 은근히 스며든 소리다. 잠깐 지나갔지만 무드 전체를 바꿔버린 음악,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공기를 채워준 사운드. 그게 진짜 메시지다. 최근 개봉했던 F1 더무비에서도 난 영화음악이 주는 힘을 발견했었다. 영화음악의 거장 한스 짐머의 OST가 내겐 더 강렬하게 남는 영화였다. 트랙 위의 긴장과 경쟁, 희열과 좌절을 주연배우의 대사 없이 음악으로도 충분히 느껴졌다. 오히려 음악이 더 메인으로 다가왔었다.


가령, 내가 골프를 칠 때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티샷 직전의 정적'이다. 어쩌면 가장 긴장되는 몇 초의 모먼트. 잔디 위에서 바람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 동반자의 숨소리가 배경처럼 깔린다. 그게 없었다면 라운드의 긴장과 설렘은 반감됐을지도 모른다. 책상에 앉아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손가락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 창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 이런 것들이 다 내 글의 배경음악이다. 때로는 집중을 방해하는 것 같아도, 사실은 리듬을 만들어주는 요소다. 결국 삶이란, 우리가 택한 수많은 BGM의 조합이 아닐까. 주연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주변에 깔린 사운드, 곁에서 묵묵히 흐르는 것들이 하루의 무드와 기억을 좌우한다.


BGM은 메인이 아니다. 화면 뒤에, 장면 밑에, 무심하게 깔려 있을 뿐이다. 하지만 없으면 허전하고, 있으면 삶이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B를 좋아한다. 앞면보다 뒷면을, 주류보다 곁길을. BGM이라는 이름의 비사이드가 내 하루를 풍성하게 완성하기 때문이다.


bgm1.jpg BGM은 메인이 아니다. 화면 뒤에, 장면 밑에, 무심하게 깔려 있을 뿐이다. 하지만 없으면 허전하고, 있으면 삶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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