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은 아니어도 삶을 완성하는 것들에 대하여
10년 전쯤이었다. 지인이던 한의원 원장님의 권유로 처음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을 접했다.
“식사 전에 두 숟갈씩 마셔보세요.” 처음 들었을 때는 고개를 갸웃했다. 기름을 그냥 마신다고? 게다가 두 숟갈이나? 하지만 그 말이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음식보다 몸을 먼저 지켜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그날부터 시도했다. 아침에 일어나 물 한 잔 마신 후 식사 전 올리브오일 두 숟갈. 저녁에도 밥을 먹기 전 두 숟갈. 처음엔 낯설었지만, 어느새 습관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내 건강 루틴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올리브오일을 먹는 방식은 단순하다. 식전 그냥 마시거나 양배추를 채 썰어 그 위에 살짝 뿌리거나,
빵이 있으면 올리브 오일에 함께 찍어 먹는다. 때로는 그냥 두 숟갈을 꿀꺽 삼키기도 한다. 특별한 레시피가 필요 없다. 중요한 건 꾸준함이다. 늘 주문하는 건 이탈리아산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이다. 아마 늘 주문하는 판매처에 단골로 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병 모양만 봐도 왠지 품격이 느껴진다. 어느새 내 주방 한편에는 이 병이 빠지지 않고 놓여 있다. 문제는 요즘 주문이 쉽지 않다는 것. 수요가 많아졌는지 품절이 잦고, 가격도 꾸준히 오르고 있다. 그럼에도 굳이 이 브랜드를 고집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 하루를 지탱하는 ‘작은 의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원장님 강력 추천도 한 몫했으리라. 사람마다 루틴이 있다. 누군가는 커피로 하루를 열고, 누군가는 명상이나 러닝으로 자신을 다잡는다. 나에게는 올리브오일 두 숟갈이 그 자리를 지킨다.
올리브오일은 등급에 따라 나뉜다. 가장 높은 단계가 바로 엑스트라버진(Extra Virgin)이다. 첫 압착으로 얻은 오일, 산도는 0.8% 이하, 화학적 가공 없이 기계적으로만 짜낸 순도 높은 오일. 말 그대로 ‘정점’의 기름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엑스트라’라는 수식어다. ‘버진 올리브오일’만 해도 충분히 순수한 느낌인데, 엑스트라가 붙는 순간 완전히 달라진다. 보통이 아니라 더 특별하고, 더 고급스럽고, 더 남다른. 단어 하나가 제품의 위상을 바꿔버린다. 브랜딩 관점에서 보면 이건 기가 막힌 발견이다. 엑스트라라는 말 하나로, 평범한 식재료가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의 상징이 된다. 이름 하나가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는 힘을 가진 것이다.
우리는 엑스트라라는 단어를 생각보다 자주 쓴다. 엑스트라 라지(Extra Large) : 라지보다 더 큰 사이즈. 엑스트라 타임(Extra Time) : 정규 시간 이후에 주어지는 연장전. 엑스트라 오디너리(Extraordinary) : 평범을 넘어선 비범함. 엑스트라 마일(Go the extra mile) : 기대 이상으로 더 노력하는 태도. 엑스트라 파인(Extra Fine) : 더 섬세하고, 더 정교한 것. 이 단어가 붙는 순간, 보통은 특별로, 평범은 비범으로, 기본은 프리미엄으로 바뀐다. 단순히 ‘추가’가 아니라, 격상된 가치를 뜻하는 언어다.
하지만 엑스트라는 또 다른 의미도 가진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엑스트라는 주연도 조연도 아닌 보조 출연자를 뜻한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손님, 거리의 행인, 경기장의 관중. 대사도 없고, 이름도 남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이 빠지면 장면 전체가 어색하다. 주연이 빛나려면, 배경이 살아 있어야 한다. 사실 나도 엑스트라를 해본 적이 있다. 예전 대행사에 다닐 때, 아이스크림 CF 촬영을 진행하다가 엑스트라로 교통경찰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사내직원 출연인 셈이었다(출연료는 30만 원이었다). 메인 모델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장면이었는데, 차량을 정리하며 신호를 지키는 교통경찰이 있어야 장면이 성립됐다. 대사도 없고, 스크린 타임도 짧았지만, 그 장면은 없으면 안 되는 컷이었다. 그날 느꼈다. 엑스트라는 결코 하찮지 않다는 것. 주연이 주연답게 보이도록 받쳐주는 보이지 않는 힘. 내가 잠깐이지만 그 역할을 직접 해보니 엑스트라라는 단어가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은 내게 그런 의미에서 더 특별하다. 주방 구석에 늘 있는 크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은 병. 하지만 아침저녁 두 숟갈의 루틴이 빠지면 하루가 허전하다. 주연 같은 화려한 존재는 아니지만, 없으면 불안한 삶의 배경 같은 것.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 누군가의 삶에서 엑스트라일 때가 많다. 잠깐 스쳐 가는 인연이지만, 그 순간 장면을 완성하는 사람. 이름은 남지 않지만, 존재 덕분에 스토리가 자연스러워지는 역할. 엑스트라가 빠진 영화가 성립되지 않듯, 작은 루틴이 빠진 삶도 어딘가 허전하다.
엑스트라라는 단어는 참 묘하다. 올리브오일에서는 최고의 순도를 뜻하고, 영화와 드라마, 광고에서는 이름 없는 보조 출연자를 뜻한다. 겉보기에는 정반대 같지만, 공통점은 뚜렷하다. 주연은 아니어도, 전체를 완성하는 힘. 내 인생 최고의 엑스트라는, 아이러니하게도 매일 아침저녁 마시는 올리브오일 두 숟갈이다.
크게 보이지 않지만, 그 작은 루틴이 내 하루를 완성해 주니까. 오늘의 뒤테일은 그래서 엑스트라라는 이름에 담긴 작은 위대함이다. 보통을 넘어서는 태도, 주연을 살려주는 배경, 그리고 두 숟갈의 오일이 남기는 존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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