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다운 Nov 11. 2017

그의 시선_ 맥주와 하몬

며칠 전, 아내와 농담처럼 우리의 바르셀로나 생활을 구성하는 것들에 대해, 이곳 생활의 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내 바르셀로나 생활의 2할, 아니 2.5할은 호프만이야. 크루아상과 요리학교가 빠지면 이야기가 안 될 것 같아."

"나는 날씨가 20%, 수영장이 10%, 커피가 15% 정도 될 것 같네. 핌팜 버거는 몇 퍼센트 정도 될까?"

"최소 5%는 줘야지. 아, 난 카냐가 15%쯤 되는 것 같아."



두서없고 즉흥적인 대화였지만 먹고 마시는 것이 절반 이상의 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 살짝 부끄러웠고, 이곳을 떠나면 내 삶에서 카냐가 없어질 거란 사실이 새삼 절망스러웠다. 카냐Caña는 스페인어로 생맥주를 뜻한다. 실은 200cc 정도 되는 작은 컵을 말하는데, 이 컵에 마시는 맥주가 대부분 생맥주이다 보니 보통의 경우 "카냐 한 잔 주세요Una caña por favor"라고 이야기하면 생맥주를 준다. 

체감상 스페인에서 카냐는 술보다는 음료의 범주에 속한다. 바나 음식점 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카페에서 카냐를 팔고, 사람들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카냐를 마신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갔는데 옆 자리에서 누군가 카냐를 마시고 있다면 그건 그가 술꾼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바르셀로나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격도 매우 저렴하다. 보통 1.5유로에서 2유로 초반 정도이며, 안주를 따로 시킬 의무가 없기 때문에 정말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인심 좋은 지방에서는 카냐를 시키면 작은 안주 하나를 내어주기도 한다. 소비량이 많아서 그런지 선도도 대단히 좋은 편인데, 흔히 신선한 맥주의 상징처럼 거론되는 '엔젤링'을 대부분의 카냐에서 만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는 에스트레야 갈리시아Estrella Galicia로 쌉쌀하면서도 진한 황금빛 라거의 정석을 맛볼 수 있다. 원래 북부지방 맥주이기 때문에 판매하는 곳이 많지는 않지만, 왕의 광장 근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카탈루냐 최대의 판매량을 자랑하는 에스트레야 담Estrella Damm은 메이저답게 무난하면서도 거스름 없는 맛이 좋고, 아예 양조장이 바르셀로나 구시가지에 자리 잡고 있는 모리츠Moritz는 시트러스향이 느껴지는 청량감이 좋아 여름철에 특히 권하는 맥주다.

가벼운 안줏거리가 필요하다면 하몬Jamón이 올라간 핀초Pincho를 함께 먹어도 좋다. 하몬은 스페인을 대표하는 식재료지만 의외로 여행자들의 평이 부정적일 때가 많은데, 안타깝게도 이는 하몬을 잘못 골랐을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험적으로 하몬은 크게 호오가 나뉘는 식재료가 아니다. 불에 익히지 않은 고기 특유의 퀴퀴함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걸 아득히 뛰어넘는 풍미와 감칠맛이 있기 때문이다. 

하몬은 크게 하몬 세라노Jamón serrano와 하몬 이베리코Jamón Ibérico로 나뉘는데, 가급적 이베리코를 권한다. 이베리코는 스페인의 흑돼지 품종으로, 세라노에 비해 비싸긴 하지만 확연한 맛의 차이가 있다. 호프만 요리학교의 셰프 중 한 명은 자신의 SNS에 하몬 사진을 올릴 때마다 "하몬 세라노를 매일 먹느니, 이베리코를 열흘에 한 번 먹겠다"라는 멘트를 덧붙이는데, 조금 허세스럽긴 하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맛있는 와인 한 잔에 하몬 몇 조각 혹은 시원한 생맥주 한 잔에 하몬이 올라간 핀초 하나는 스페인에서의 삶을 훨씬 행복하게 해주는 것 중 하나다. 

조금 더 고급스러운 하몬을 맛보고 싶다면, 베요타Bellota라는 단어를 기억해두면 좋다. '도토리'라는 뜻인데 이베리코 중에서도 도토리만 먹여 키운 놈으로 만든 하몬을 '하몬 이베리코 데 베요타Jamón Ibérico de Bellota'라고 부른다. 최고급 식재료인 만큼 가격은 꽤 비싼 편이지만, 사실 다리 하나를 통째로 사는 게 아니라 안주로 조금씩 먹을 때는 몇 유로 차이에 불과하다.  

카냐와 하몬을 먹기 좋은 곳 

El Xampanyet

보른 지구에 위치한 엘 샴파넷은 언제나 손님이 가득한 타파스바다. 타파스는 대부분 서서 먹는 문화이니 남는 의자가 없어도 홀에 들어가 적당히 자리를 잡으면 된다. 무척 신선한 생맥주와 정말로 맛있는 하몬 핀초를 맛볼 수 있다. 가격도 비싸지 않아 맥주 한 잔에 핀초 두 개를 먹으면 딱 5유로가 나온다!

주소 Carrer de Montcada, 22, 08003 Barcelona

Fàbrica Moritz Barcelona

모리츠 맥주의 양조장이자 거대한 펍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이 리노베이션을 하여 대단히 현대적인 감각으로 꾸며져 있다. 지하가 양조장이니 맥주의 선도야 두말할 필요가 없고, 다양한 안주를 비싸지 않은 가격에 맛볼 수 있다. 특히 비어캔치킨Picantón a la Moritz을 강력 추천한다.

주소 Ronda de Sant Antoni, 39 - 41, 08011 Barcelon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