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살든 간에 한숨 돌리고 쉴 수 있는 장소를 찾는 버릇이 있다. 어쩌면 본능인 것 같다. 어느 곳에서든 '산다'는 것은 일상이고 매일 일상을 살다 보면 잠시 멀찍이 떠나 있고 싶어지기 마련이니까. 다행히 바르셀로나에서도 그런 곳을 찾았다.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생긴 것만큼 즐거운 일이다.
부산에서 보낸 학창 시절, 도대체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면 교복 바람으로 송정 바닷가에 가서 달빛이 비친 바다를 향해 쪼그리고 앉아 있곤 했다. 바다를 향해서는 교복 치마를 입고도 아무렇게나 앉아도 되어 좋았다. 모래 위에 나무 막대기로 괜히 아무 글씨나 써대곤 했는데, 그러다 보면 힘이 나서 다시 다음 날을 살 수 있었다.
서울에 살 때는 고창 선운사로 갔다. 회사 일이 힘들거나 연애가 어려워 마음이 전쟁을 치를 때면 그곳에 가서 템플스테이를 했다. 절에서 나누어주는 옷을 입고 작은 방에 머물면서, 저녁 일찍 자고 이른 아침에 일어났다. 낮 동안은 찻물을 길어오거나 주방에서 설거지를 했고 세 끼 고기반찬이 없는 절 밥을 먹었다. 커피가 마시고 싶어지면 차를 마셨다. 휴대폰은 아주 가끔 열어보았다. 그러다 보면 복잡한 서울의 일들이 모두 별일 아닌 것 같아졌다.
제주에 살 때는 백약이 오름에 갔다. 푸른 제주가 내려다보이는 오름 꼭대기에서 바람을 맞으며 앉아 있자면 어김없이 기분이 좋아졌다. 온전히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으려면 몇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사람이 많지 않을 것.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을 것.
바르셀로나에서도 그런 곳을 하나 찾았다. '콜로니아 구엘Colònia Güell'. 가우디의 후원자 구엘이 120여 년 전 조성한 공장 단지로, 시내에서 기차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다. 입구에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직물 공장이 있는데 지금은 운영되지 않는다. 공장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면 집들이 얌전히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마을 안쪽에 작은 성당이 있다. 지하만 짓고 공사가 중단되어 대성전은 없는 성당.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건축가 가우디가 설계하고 지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짓기 전 이곳의 성당을 지으며 많은 실험적 시도를 했다고 전해진다. 가우디의 명성 덕분에 가이드북에도 실려 있는 곳이지만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일부러 찾아가지는 않는 곳이기도 하다. 시내에서 떨어져 있는 데다가 막상 가보면 성당 외엔 특별히 볼 게 없는 탓이다.
몇 년 전 스페인을 여행하던 중 처음 들르게 된 이곳을 보자마자 한눈에 반했다. 조용한 성당과 그보다 더 조용한 마을이 마음에 들었다. 한가로운 공기는 내가 바쁜 여행객임을 잊게 해주었다. 주민도 관광객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 19세기에서 그만 시간이 멈춘 듯한 작은 동네를 걷다가 '여기 살아도 좋겠네'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한참을 잊고 지냈다.
가족을 한국에 두고 외국살이를 하는 자식들에게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걱정이 하나씩 있다. 마음 한편에 꽁꽁 묻어두고 모른 척하며 살지만, 어떤 밤은 그 때문에 밤새 뒤척거리기도 한다.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일,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있을 수 있는 그 일이 친구에게 일어났다. 집에서 온 비보에 급히 한국행 비행기를 끊고 열몇 시간을 날아 그는 한국으로 갔다. 비행기에 홀로 앉아 보냈을, 길고 외로운 시간을 나는 감히 가늠할 수가 없다.
몇 주 후 다시 돌아온 친구는 조금 수척해 있었고, 예전보다 조금 덜 웃었다. 그리고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위로할 방법을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혼자 두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자꾸 연락을 했다.
"밥 먹자." "어디 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겨우 그 정도였다. 그러다가 날씨가 몹시 좋던 날, 문득 그에게 말했다.
"콜로니아 구엘에 가자."
초행길은 아니었지만 워낙 길치라 길을 헤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에 도착하니 가는 방향이 잘 표시되어 있어 화살표를 따라 걷기만 하면 되었다. 공장을 지나 마을을 가로 질러 우선 성당으로 향했다. 유난히 햇살이 밝은 날이라 성당으로 한 걸음 들어서니 커튼을 친 듯 순식간에 시야가 어두워지고 동시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성당에는 일본인 관광객 몇 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띄엄띄엄 떨어져 앉아 조용히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끄적이고 있었다.
친구는 예수님 십자가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더니 작은 의자에 조용히 앉는다. 그리고 자꾸 손을 얼굴로 가져가 눈가를 훔쳤다. 잠시 혼자 둬야겠다 싶어 멀찌감치 떨어져 성당 가장자리 벽을 따라 걸었다. 그러다 열려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앞 기둥에 기대섰다. '창 모양이 꼭 나비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성당 관리인이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렇게 쇠줄을 당겨서 창을 여는 거예요. 한번 해봐요."
그가 시키는 대로 쇠줄을 당겨 창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나비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가 접힌다. '어라, 재밌네.' 순간 밝아지는 내 표정에 관리인 아저씨의 어깨가 쑥 올라간다.
건축가 가우디는 바르셀로나에 많은 건축물을 남겼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에는 그의 모든 인생을 담았고, 구엘 공원에는 그의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담은 것 같다고 혼자 생각하곤 했는데, 이 성당은 어쩌면 그의 일기장이었던 것 같다. 성당에 머무는 내내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앉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마음속이 되게 아늑했다.
성당을 나와 마을을 걸었다. 하나같이 빈 집인 것처럼 보였지만 창가에 꽃 화분이 나와 있는 걸로 보아 다 사람이 살고 있는 듯하다. 이 작고 외딴 마을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까. 궁금해하던 차, 마침 건너편 이층집에서 아저씨가 개를 끌고 나온다. 개에게 말을 거는 척하며 슬쩍 이야기를 건넸다.
"여기 사세요?"
"네, 저 집에 살지요. 이 마을 정말 조용하죠?"
"네, 그래서 좋네요."
광장 한쪽 카페 야외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한 잔씩 시켰다. 술과 커피만 파는 작은 카페였는데, 생맥주를 시키니 하얗게 살얼음이 낀 잔을 냉동실에서 꺼내 맥주를 따라준다. 그 맛이 정말 좋아서 얼른 마시고 한 잔 더 시켰다. 쓰던 잔을 다시 건네자 새 잔을 꺼내 맥주를 따라주었다. 머리를 대충 묶어 올린 여인이 밝게 웃으며 말한다.
"맥주는 잔까지 차가워야 제맛이죠."
그러는 사이 광장 건너편 집에서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 한 분이 대문을 열고 나오셨다. 아, 저 집에는 저 할머니가 사시는구나.
여행을 하다 마음에 드는 동네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저 집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지 상상해보곤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그 집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을 목격하면 마음이 조금 두근거린다. 어쩐지 그 동네와 이 집, 저 사람과 친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또 와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친구가 말했다.
"고향에 온 것 같아요. 어린 시절에 시골에서 살았는데, 거기 온 것 같아요."
그리고 덧붙였다.
"언니, 바르셀로나에 오고 나서 손에 꼽게 오늘이 좋아요."
"그래."
툭 대답을 던지고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슬플 때 웃겨줘야 하는지, 아니면 충분히 슬퍼하도록 내버려둬야 하는지, 나는 이 나이가 되어서도 아직 모르겠다. 이런 경우 어떤 말이 위로가 될지도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그는 성당에 앉아 조금 더 울었고, 한결 개운해진 얼굴로 마을길을 거닐다 이곳이 참 좋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에게 좋은 친구를 한 명 소개해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마음이 조금 놓였다.
간혹 이곳을 좋아할 것 같은 여행객을 만나면 조용히 추천하곤 한다. 콜로니아 구엘에 가보라고. 왕복 한 시간이 걸리는 그곳에 가면 가우디가 짓다 만 아주 작은 성당이 하나 있다고. 그리고 그것 외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