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네가 결정한 거야
한마디에 마음이 녹을 때
말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다.
같은 말이라도 상황에 따라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한다.
우울감이 밀려오면 마음에 자리 잡은 모든 생각을 다 밀어내 버린다. 밀물처럼 들어와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그 자리에 불안만 꾸깃꾸깃 꽂아놓는다. 이럴 때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내가 된다.
한 번은 주말에 불안으로 가득 차 밥도 안 챙겨 먹고 거실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는데 친구에게 톡이 왔다. 산책을 가자는 것이다.
한참을 폰을 바라만 보았다. 나가고 싶기는 한데 그게 또 그렇게 어려운 일이다.
다시 카톡이 온다.
"5시 콜?"
세 글자의 카톡에 "응"이라고 한 글자로 답한다.
친구와 산책을 가는 것이 뭐라고 그렇게 어려운지 씻으러 들어가기까지도 한참이 걸린다. 그리고 뭉그적 거리다가 다시 문자를 보냈다.
"10분만 더 있다 보자"
그렇게 5시 10분에 집을 나서 근처를 어슬렁어슬렁 걷다 보면 이상하게 기운이 풀렸다.
왜 10분 더 일찍 나오지 않았는가에 대한 후회가 될 지경이었다.
"나, 진짜 니 아니었으면 어떻게 지냈을지 걱정이다. 니가 있으니 이렇게 바람이라도 쐬지."
"아니다ㅎㅎ 그건 니가 결정한 일이다~"
친구는 웃으면서 말했다.
말이라는 것은 참 신기하다. 한마디로 사람을 얼릴 수도 있고 녹일 수도 있다.
가스 라이팅이 한참이던 시절 나는 이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어떤 일이 꼬이거나 실패하면 '그건 네가 결정한 일'이라는 말이다. 그 뒤는 항상 질책이 잇달았다. '네가 부정하지 않았잖아'라던가 '싫으면 하지 말지'라는 말을 들으면 그런 질책들이 다 맞는 말이어서 마음을 후벼 판다.
지금은 그런 말은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수단이고, 흑백 논리로 점철된 오류 투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왜 조금 더 일찍 생각하지 못했을까...
오랫동안 함께 할 사람들은 안 좋은 일을 겪을 때,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지'라고 서로를 위로한다. 손가락질을 자주 하는 사람과는 오래 함께할 수 없다. 그가 하는 말의 일부가 맞을 지라도 진리일 수는 없다.
친구는 나의 작은 성취에 대하여 그건 네가 선택한 일이어서 너는 응당 이 성취를 누릴 수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심지어 먼저 산책을 하자고 말해 주었는데도 말이다.
너의 결정으로 인한 성취라는 말은 성장의 씨앗이 된다. 우울의 늪에서 기어나올 에너지를 준다. 나도 누군가에게 온전히 그의 성취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해주는 날들을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