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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은 Dec 20. 2020

욕심쟁이 다람쥐 같은 삶의 방식

벌려놓은 일들은 이렇게 많은데, 난 왜 제대로 하는 것이 하나도 없지?


요즘 나에게 가장 불만인 부분은 일을 엄청 많이 시작해 놓고는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잘 없다는 것이다. 몇 달 전에 주짓수를 하겠다면서 산 도복은 딱 한 번만 입고 장롱 안에 모셔져 있다. 일주일에 한편을 올려야겠다고 다짐한 브런치에는 마무리 짓지 못한 글들이 작가의 서랍에 켜켜이 쌓이기 시작하였다.


주변에 꾸준히 하는 사람들을 보면 더욱 주눅이 든다. 킥복싱 수업을 함께 듣다가 주짓수도 함께 하자고 도복을 산 분들이 있다. 그분들은 벌써 한 달 넘게 꾸준히 운동을 해서 주짓수에 익숙해져 있어서 나는 다시 운동을 함께 할 엄두를 못 내겠다. 10월 말 공모전에 브런치 북을 내 보자고 생각했지만, 제대로 기획을 하기도 전에 어느덧 11월도 중순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벌써 12월도 끝나간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면 전생에 욕심쟁이 다람쥐였음에 틀림없다.

양 볼이 빵빵하게 넣고도, 또 도토리를 찾는 모습이 꼭 나와 같다.


욕심쟁이 다람쥐는...

1. 열심히 돌아다니지만, 사실 행동반경이 넓지 않다.

2. 양볼에 가득 씨앗이 있어도 새로운 씨앗을 찾으면 입에 욱여넣느라 고생한다.

3. 입안에 씨앗이 다 들어가지 않는다면, 나무 아래에 몰래 숨겨놓고 다시와 씨앗을 입에 욱여넣는다. (절대 포기가 없다.)

4. 나무 아래 몰래 숨겨놓은 씨앗을 까먹는다.

5. 결국은 바쁘게 움직여 먹을 만큼밖에 못 먹는다.



그리고, 나는...

1. 열심히 돌아다니지만, 회사-집을 반복한다.

2. 지금도 바쁘지만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억지로 스케줄에 끼워 넣느라 고생한다.

3. 일정을 모두 소화하지 못하게 되면, 몇 가지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 (나 역시 절대 포기가 없다.)

4. 나중에 무엇을 하기로 했는지 까먹는다.

5.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는 것인가'라고 자책한다.


사실 나는 욕심쟁이 다람쥐가 되지 않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일명 '도토리 분신술'이다. 내가 얻은 도토리를 여러 개로 늘려서 마치 대단히 많은 도토리를 가진양 생활하는 것이다. 늘리는 방법도 간단하다. 단기 목표를 세워서 목표가 여러 개가 되도록 하거나 연관된 일들을 하는 것이다. 예컨대 외국어 공부를 한다면,  회화 수업을 듣는 일정과 시험공부를 하는 일정을 분리하고, 추가로 말하기 시험과 필기시험 등을 매달 따로 신청하는 느낌이다.


분명 나의 일을 유지하는 데도 편하고 목표 달성을 위한 쾌감도 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런 생활을 유지하지 않는 것인가? 




10월 말, 정부 과제의 지원 덕분에 우리 팀에는 대학생 인턴 두 명이 합류했다. 그녀들은 영상을 만드는데 상당히 감각이 있고, 생각이 선명한 친구들이었다. 우리 팀은 종종 '우리는 모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잘 어울려서 다행이다.'라고 이야기하는데, 그 친구들도 그런 우리와 꼭 맞는 느낌이었다.


11월 초, 원티님과 데이먼 님이 우리 앱을 테스트하기 위하여 테스트센터로 출장을 갔다. 나는 간단한 디버깅을 위해 사무실에 남아있었고, 새로 합류한 인턴 두분도 나와 함께 사무실에서 근무를 했다. 사실 이날을 조금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회사 근처에 있는 아기자기한 카페에서 점심을 꼭 먹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양은 조금 적더라도 식후 커피를 함께 주는 귀여운 카페에서 여자들끼리 식사를 하고 수다를 떨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회사를 다닐 때는 여자 선배들이 종종 나를 데리고 귀여운 카페나 식당을 가 주었는데, 최근에는 그런 경험이 통 없어서 그리웠는지 모른다.


카페에는 런치 메뉴가 한 가지뿐이었다. 런치를 주문하자, 인상 좋은 사장님께서 먹음직스러운 미트 오일소스 파스타를 테이블 매트 위에 가지런히 놓아주셨다. 오일 파스타와 미트 소스는 생소하지만 맛있었다. 원티님과 데이먼 님이 왔더라면 조금 양이 적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식사를 마치고, 파스타 접시가 치워진 매트 위에 아메리카노가 올려졌다. 우리는 코로나로 휴학하고 마음대로 여행을 못 다녀 아쉽겠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소에 어떤 경험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이런저런 도전을 하는 것을 좋아해요. 근데 다 끝까지 성공하거나 그러지는 못하겠더라고요. 그래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옆에서 듣던 다른 친구도 반갑게 말했다.

"저도 그런 생각 많이 해요! 다음 학기에는 복수전공을 해보려고 하는데, 못할 거 같아서 걱정되지만 그래도 새로 하려고 하니 설레더라고요."


눈을 반짝반짝하면서 이야기하는 그 두 명을 보고 있자니 내가 왜 욕심쟁이 다람쥐 같은 삶을 버리지 못했는지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그것은 그냥 단순히 '설렘'이다. 결과가 나오는 순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느껴지는 것이다. 도토리 분신술을 여러 번 써봐도 지금의 설렘이 채워지는 것은 아니니까.


"근데, 수업에 못 따라 가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어서 이것저것 학원 다니면서 준비하는데요, 그래도 걱정은 계속돼요."

"그건 한 학기 밤을 자주 세다 보면 해결되지 않을까요?"


그런 이야기들을 듣던 나는, 내가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느라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느낄 '설렘'을 포기한 나 자신을 생각하면서.


그날 저녁에는 주짓수 수업을 못 가고 야근을 하면서도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왜 시작한 것을 끝까지 해내지 못했냐는 자책을 하지 않았다. 어른이 되고 많은 것에 책임을 져야 하지만, 모든 도전에 책임을 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대신 계속되는 야근이 끝나고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설레면서 운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설렌다는 것은 다음 도전에서 주저할 때 등을 밀어줄 수 있는 좋은 무기이기 때문이다. 


"끝까지 못해내도 어때! 지금 설레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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