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뻔했을까
8월 초, 월요일 휴가를 낸 나는 남편과 아이와 함께 시내를 나갔다. 남편이 오랜만에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가보고 싶어 해 그리로 갔다. 맑고 화창한 날씨, 한산한 시내.. 오랜만에 맡아보는 바깥공기 냄새에 기분이 상쾌해졌다. 김밥까지 맛있게 싼 터라, 어서 앉을 곳을 찾았다. 테이트 모던 미술관 앞마당에 준비해 온 돗자리를 펼치고 앉았다.
똑같은 김밥이어도, 집에서 먹는 것보단 나와서 먹는 게 훨씬 더 맛있는 것 같다. 어린 시절 소풍 갈 때마다 엄마가 김밥을 싸줬던 기억 때문인지, 많이 걸어 배가 고픈 탓인지 잘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싸온 김밥과 과일을 야무지게 챙겨 먹었다.
배를 든든히 하고 본격적인 미술관 관람에 나섰다. 모든 것이 다 온라인 예약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았던 우리는 현장에서 바로 온라인 예약을 해서 입장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 날이 월요일이라 사람이 거의 없었고, 바로 다음 입장 시간에 맞춰 예약할 수 있었다.
미술관 안은 그 어느 때보다 고요했다.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 이렇게 조용할 수 있다니. 고요한 미술관 실내에서 아이의 뛰어다니는 소리와 웃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이도 오랜만에 세상 구경을 해서 그런지 한창 들떠 있었다. 우리는 전시를 관람하고 다시 시내로 나왔다.
영국 정부에서는 8월 한 달간 월, 화, 수요일 식당 내에서 식사를 하면 음식 값을 50%를 할인해주는 제도를 도입했다. 코로나로 위축된 소비심리를 풀고자 함이었다. 그 첫날인 3일, 우리는 저녁에 차이나타운으로 가 50% 할인을 받고 중식을 먹어보기로 했다. 저녁 먹기까진 시간이 좀 남은 시간, 우리는 이곳저곳 옷가게, 장난감 가게를 들러가며 아이쇼핑을 했다.
마침내 차이나 타운에 들어섰다. 지나가며 화려한 빨간색 등이 달린 차이나 타운 입구를 본 적은 있지만 안으로 들어와 보긴 이번이 처음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야외 테라스로 나와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도 전에 남편이 아는 형과 먹어본 적이 있다던 중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메뉴를 고르고 주문을 했다.
그런데 왠 걸. 아무리 찾아보아도 내 핸드폰이 보이지 않았다. 가방을 다 뒤지고 유모차를 다 뒤져보아도 핸드폰은 나타나지 않았다. 요즘 거의 모든 결제를 휴대폰에 등록된 애플 페이로 하는지라, 폰이 없으면 음식값도 계산할 수 없었다. 부랴부랴 종업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미안하다며 주문을 취소했다. 이때부터 나의 핸드폰 찾기가 시작됐다.
평소 나는 종종 새벽에 일어나 공원으로 달리기를 하러 간다. 이른 시간이 아니면 아이 때문에 운동하기도 어려우니까 주로 일찍 일어나 나가는 편이다. 자다가 아이가 깨서 나를 찾으면, 남편은 휴대폰 위치추적 기능을 이용해 내 위치를 찾곤 했다. 내가 공원을 뛰고 있는 게 폰에 뜨면 "엄마 운동하고 있어. 곧 올 거야."하고 아이를 안심시키곤 했다.
이 날도 남편의 위치추적 기능을 작동시켰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 폰의 위치가 뜨지 않았다.
"누가 가져가고 전화기를 꺼놨을 수도 있어."
"진짜? 어떻게 해."
나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남편은 내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전화기의 통화음은 계속 울렸다. 전화기가 꺼져있지 않은 것이다.
우선 우리는 가장 늦게 들렀던 가게부터 역순으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첫 번째 가게엔 없었다. 두 번째로 들렸던 아르켓이라는 의류 매장으로 갔다. 옷을 사진 않았지만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20분 정도 시간을 보냈던 곳이다. 그때였다. 남편의 핸드폰 위치추적 기능은 내 폰이 이 매장에 있다고 가리켰다.
"여기 있어."
남편은 직원과 매니저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폰을 같이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이 폰이 어디로 사라진 건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여보 아까 거울에 비춰봤던 옷 한번 뒤져봐."
"여보, 옷을 입어본 것도 아닌데 당연히 거긴 없지."
거울에 한번 비춰본 옷에 왜 내 폰이 있겠는가. 나는 남편의 말을 듣지 않고 계속 바닥만 뒤졌다. 얼마 뒤, 1층 여성 의류 코너로 내려간 남편이 내 폰을 들고 다시 올라왔다.
"어머!!!!! 여보 어디서 찾은 거야?"
"아까 비춰본 옷 주머니에 있잖아."
"헐!!! 미쳤나 봐!! 내가 거기 왜 넣었지????"
"(피식) 아유 정말!!"
남편은 그제야 피식 웃으며 내게 폰을 건네주었다.
"진짜 미안해. 난 진짜 기억이 하나도 안 나서 그랬어. 내가 거기 왜 폰을 넣었을까? 나 치매일까? 진짜 왜 그러지? 요즘에 더 기억이 잘 안 난다니까."
난 미안한 마음에 횡설수설 떠들어댔다.
"괜찮아. 아까 살짝 피곤했는데, 폰 잃어버렸다는 소리 듣자마자 아드레날린 확 돋았어."
"진짜? 크크. 그래도 다행이다 그렇지? 우리 다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50% 할인 되잖아~!"
결국 우리는 아까 방문했던 중식당이 아닌, 길거리 다른 식당으로 가 영국의 그 유명한 요리, 피시 앤 칩스를 먹었다. 아이도 배 고파하고 더 걷기도 힘들 만큼 많이 걸은지라, 가까운 곳을 선택했다. 피시 앤 칩스 두 개, 콜라 1개를 시켰다. 점원이 카드 계산기를 가지고 테이블로 왔고 나는 휴대폰의 애플 페이로 결재를 했다.
"여보, 근데 좀 이상하네."
남편에게 물었다.
"왜?"
"지금 결재할 때 20 몇 파운드였던 것 같은데. 이거 가격이 얼마야?"
"잉? 그러면 할인 안된 금액 같은데."
남편은 다시 카운터로 가서 계산 금액을 확인했다. 종업원이 깜빡하고 50% 할인 적용을 안 한 거였다. 종업원은 미안하다고 계속 말하며 50% 할인된 금액으로 다시 결재를 진행했다. 다해서 14파운드 안 되는 금액이 나왔다. 영국의 비싼 외식값을 생각하면, 꽤 저렴한 금액이다.
외식은 너무 비싸서 거의 사 먹지 않는데, 이렇게 50% 할인까지 받아서 먹으니 더 맛있게 느껴졌다. 게다가 폰을 다시 찾았으니..!! 뭘 먹어도 꿀맛이었을 거다. 다행히 우리가 간 집의 생선은 엄청 싱싱했고 양도 많았다. 다 못 먹고 남은 건 싸왔다.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내가 폰을 찾지 못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다. 아찔했다. ‘남편이 없었더라면’ 내 폰의 위치 추적도 못했을 거고, ‘남편이 없었더라면’ 거울에 비춰봤던 그 옷의 주머니를 뒤질 생각은 더더욱 못했을 것이다.
나의 이 덤벙거리는 성격과 건망증을 붙잡아주는 남편이 곁에 있어 참참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