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마늘 까기

육아에서 탈출하는 그만의 방법

by 짠맛토커


금요일인 오늘은 나도 주말 근무 때문에 off 하는 날이고 남편 역시 어제 아침 논문을 제출하고 잠시나마 자유인이 되었다. 아이는 우리 둘이 평균적으로 가장 바쁜 날인 화, 수, 목 3일 어린이집을 다닌다. 오늘은 금요일이니까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날.


딱히 많은 걸 하지 않아도 세 식구가 오랜만의 여유를 즐기니 좋았다. 저녁엔 남편이 좋아하는 제육볶음을 해주려고 전에 회사 출근하는 날 한인마트에서 사 온 고기를 꺼냈다. 시간은 오후 4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미리 후추, 미림 넣고 밑간을 해 두고 양념장을 만들었다. 간 마늘을 넣어야 하는데 소분해 얼려둔 게 다 먹고 없다. 마늘을 까려고 칼을 들었다.


그때였다. 한국에 있는 친한 형이 전화가 와서 에어 팟을 귀에 꽂은 채 전화를 시작한 남편이 말했다.


마늘 내가 깔게.”

아니야 괜찮아”

아니야 내가 전화하면서 깔게!”


남편은 아이랑 놀아주지 않고 전화를 해서 미안했는지 갑자기 마늘 까기를 자청했다. 나는 재빨리 마늘을 까기 좋게 물에 담아 잘 벗겨지는 겉껍질을 다듬어주고 칼과 깐 마늘을 담을 접시를 주었다.


여보 여기 마늘 꼭지 살 너무 많이 파지 말고 요렇게(하나 샘플을 보여주며) 알았지??”

응응 알았어.”


남편은 발코니로 나가 전화로 수다를 떨며 마늘을 까기 시작했다. 남편과 전화를 하는 형은 나도 예전부터 알고 지내는 준영 씨였다. 남편에게 준영 씨가 연락해 오면 내가 “애인이지?” 할 정도로 자주 연락이 온다.


나와 아이는 소파에 앉아 단어카드 맞히기 놀이와 평소 자주 하는 역할 놀이(누나-동생 놀이 / 엄마 강아지-아기 강아지 놀이)를 하고 있었다.


남편은 발코니에 앉아 귀에 아이팟을 꽂고 뭐가 그리 재밌는지 낄낄대고 있었다.

저렇게 즐거워하는 걸 보니 애인이 틀림없어.. ‘

남편을 놀려줄 생각을 하면서 사진을 몰래 찍는다. 입은 귀에 걸려있고 얼굴은 좋아 죽겠다는 표정이다. 광대도 승천, 어깨도 승천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에어 팟 덕에 자유로운 그의 두 손은 마늘을 까느라 분주하다.


자세히 보면 그의 광대는 승천 중



외국에 살면서 아이를 우리 둘이서 나눠 돌봐야 하는데, 정말 남편의 적극적 육아 참여가 없다면 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 내가 출근을 하는 주말,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지 않는 월요일과 금요일, 많은 시간 남편의 손길이 필요하다.


쉽게 말하면 남편은 학업+육아를 하고 있고 나는 일+육아를 하고 있는데, 힘들긴 해도 ‘다시 못 올 시간이다’ 생각하면 또 버틸만 하다.

내가 일해야 하고 남편이 수업해야 하고 아이가 집에 있는 날은 육아에 있어 난이도 최상의 날이다. 이런 날은 반드시 사전에 조율을 하고 전략을 세우는데, 대체로 우리는 30분 내지 1시간 단위로 교대하며 맡은 일을 처내고 아이를 돌본다. 이것도 재택근무니까 가능한 일이지, 코로나가 터지기 전엔 남편이 아이를 학교에 몇차례 데려가야 하는 날도 있었다.



아무튼 오늘 남편은 오래간만에 맞이한 자유의 시간을 학업과 육아에서 잠시 벗어나 즐기고 싶은 모양이다. 그래도 오프인 날도 어김없이 밥 하고 애보는 나에게 미안했는지(?) 저렇게 마늘을 까고 있다.


발코니에서 한 시간 가량 긴 전화를 마치고 거실로 들어온 남편은 예쁘게 깐 마늘을 씻어 접시에 담았다.


이게 도 닦는 기분이네”

응?”

아까 까다가 중간에 너무 잘 안 까져서 고비가 왔는데 도 닦는 기분으로 하니까 다 깠어.”


그 흔한 마늘 까기에서도 도 닦은 깨닳음을 얻었다는 내 남편이 자랑스럽다. 학업과 육아, 그리고 가끔 마늘 까기까지 잘해주는 남편에게, 오늘 저녁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요리로 보답한다.


여보. 맛나게 먹어!”


남편이 까준 마늘 넣은 매콤한 제육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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