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부부싸움

경찰관과 새해 인사를 나누던 날

by 짠맛토커

2019년 12월 31일.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 아침부터 몸이 너무 좋지 않았다. 나는 주로 1년에 1번 내지는 2번 크게 아픈지라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촉이 본능적으로 감지됐다. 8월 말 영국에 온 뒤로 애 키우랴 일 구하랴 적응하랴 아플 틈이 없었다. 몸과 정신이 계속 긴장 상태에 놓여있다가 연말이 되니 밀렸던 병이 한꺼번에 찾아온 걸까.

우선 열이 39.5도까지 올랐다. 온몸이 두드려 맞은 듯 아팠고 침 삼키기가 어려웠다. 하루 종일 춥고 몸이 떨리는 오한이 지속돼 두꺼운 패딩을 계속 입고 있었다. 처음엔 감기 몸살인 줄 알았다가 이것저것 검색해보니 편도염 증상과 내 상태가 정확히 일치했다. 다행히 한국에서 챙겨 온 몇 가지 약들이 있었다. 약을 먹고 버티는데 열이 떨어졌다가 올랐다가를 계속 반복했다.


'연말에 아주 제대로 아프네.'


4시면 어두워지는 영국 겨울 날씨 속에 몸까지 아프니 더 심란했다. 하지만 내 곁에는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 두 남자가 있었으니. 남자 1호는 남편이요 남자 2호는 아들이라. 보통 한국에선 새해로 넘어가는 날 밤 교회를 찾아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는데, 한인교회를 다니고 있는 우리는 송구영신 예배에 갈 지를 두고 고민했다. 약을 먹어서일까. 낮잠을 거의 자지 않는 편인 내가 저녁 8시쯤 약을 먹고 잠이 들었고 자고 일어나니 열이 좀 떨어졌다. 갑자기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몸이 다 회복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밤 12시에 시작되는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11시 반 쯤 택시를 불렀다.



이미 단잠에 빠진 아이는 두꺼운 패딩을 단단히 입히고 귀가 덮이는 털모자를 씌웠다. 택시를 기다리기 위해 도로 옆에 서 있는데 갑자기 집 바로 옆에 있는 공원에서 엄청난 소리로 펑- 하며 폭죽이 터졌다. 동네 공원에서 터뜨리는 폭죽의 스케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크고 아름답고 시끄러웠다. 남편과 나는 갑자기 펑하고 폭죽 터진 게 웃겨 죽겠다는 듯 깔깔대고 웃었다.

"아니, 무슨 폭죽이, 흐흐흐 이렇게 큰 폭죽이 흐흐 바로 옆에서 터지냐 흐흐"


남편은 말 그대로 '빵' 터졌다. 남편이 너무 웃겨하니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나왔다. 왜 그럴 때 있지 않은가. 옆 사람이 미친 듯 웃을 때 나도 그 웃음에 전염되는. 우리는 택시를 기다리며 그렇게 자꾸 펑 펑 터지는 폭죽을 보며 웃었다.


그러나 우리의 얼굴에서 웃음기를 앗아가는 소식이 있었으니, 갑자기 잘 오던 택시가 노선을 바꾸더니 서비스가 불가하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말 그대로 정말 황당했다.

"그럼 버스를 타자."


다시 유모차를 끌고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새해를 축하하려는 시민들을 위해서인지 야간에도 버스가 운행 중이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교회에 도착한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근처 사는 다른 분의 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정말 신기한 게, 다시 집에 오니 몸이 슬슬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두꺼운 옷을 입은 채 잠을 청했다. 끙끙 앓다가 잠에 빠졌다.



2020년 1월 1일.

해가 바뀌었다. 어머님이 보내주신 가래떡으로 떡국을 끓여 먹고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비록 영상통화이긴 해도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새배를 드리며 애교를 부렸다.


사건은 그날 오후 7시경 저녁을 먹은 뒤 벌어졌다. 우리는 후식으로 에어프라이기 계란빵을 해 먹기로 했다. 반죽을 해서 계란을 톡 깨어 넣고 버튼을 눌렀다. 무슨 맛일까 궁금해하면서 에어프라이기가 해주는 요리를 기다렸다. 남편이 무심코 벗어놓은 안경이 식탁 위에 있었고 나는 약간 멍 상태로 식탁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오한이 계속되어 긴 바지와 패딩을 입고 양말까지 신고 있었다. 아이는 늘 엄마를 찾는다. 몸이 아플 땐 아이와 놀아주기가 참 힘들다. 아이는 내 무릎에 앉아 있었고 뭔가를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빠직"


아이가 갖고 놀던 것은 다름 아닌 남편의 안경이었고, 아이의 손에서 남편의 안경다리는 부러지고 말았다.


"여보.. 내가 좀 잘 봐달라고 했잖아."


곧이어 짜증 섞인 남편의 목소리가 따라왔다.


"당신 물건이잖아. 왜 나한테 뭐라고 해. 아이가 손에 닿지 않게 제자리에 두던지. 왜 아무 데나 벗어놓고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거야?"


나는 매섭게 되받아쳤다. 본인의 물건을 본인이 잘 간수하지 못해 생긴 일을 왜 나에게 책임 전가하는가.

유독 나는 이렇게 원망 섞인 비난을 듣게 되거나 책망하는 듯한 말을 들으면 감정 조절을 못한다. 지나치게 책임감이 강한 탓에 "네 탓이야. 너 때문이야."라고 말하는 걸 잘 못 견뎌하는 편이다. 특히 그 비난이 남편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몸도 안 좋았지만 그냥 너무 화가 났다.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았고 아이 앞에서 나쁜 말을 쏟아내고 싶지 않았다. 순간 나는 내가 외투까지 완벽하게 입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내 핸드폰은 주방에 놓여 있었다.

나는 집 열쇠만 챙겨서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의도적으로 핸드폰은 챙기지 않은 채.




답답했다. 시원한 바람을 쐬고 싶었다. 나는 내가 답답하거나 감정 컨트롤이 어려우면 일단 신선한 공기를 좀 마셔야 안정이 된다. 오후 7시. 밖은 이미 칠흑같이 어두워진 상태. 꽤 쌀쌀한 겨울 날씨였지만 두꺼운 패딩을 입고 있던 터라 춥진 않았다.


어젯밤 폭죽이 펑펑 터져서 우리를 웃게 만들었던 그 공원을 걸었다. 걸어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아주 조그만 공원이다. 공원은 더 어둡고 조용하다. 가끔 10대 청소년들이 구석 밴치에서 대마초를 피곤한다. 오늘은 다행히 아무도 없는 것 같다. 나는 겁이 없는 편이라 어둡다고 크게 무서운 건 없다.

하지만 나는 남편의 치명적 단점을 알고 있다. 왜? 부부니까.


한번은 남편과 시골 할머니 댁을 찾았다. 1박을 하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는데 밤에 잠을 자다가 남편이 나를 깨운다. 집 밖에 있는 제례식 화장실을 무서워서 못가기 때문이다. 겁이 나보다 500배 정도 많은 것 같다. 그 새벽에 화장실 가고 싶다고 모기만큼 작은 목소리로 윙윙거린다.

"여보. 화장실 같이 가줘."

정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난다. 사람이 이렇게 다르구나.

"어이구 정말 뭐가 무섭다고. 징글맞네 아주. 추워. 빨리 싸."

나는 화장실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잔소리를 해댄다.


아무튼 남편은 겁이 무진장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절대로 이 어두컴컴한 공원에 오지 못할 것이란 걸 난 알고 있다. 핸드폰도 두고 나왔으니 내가 어디 있는지도 못 찾겠지.


'왜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거야! 왜!. 내가 뭘 잘못했다고.'


분을 식히는 데는 차가운 공기가 제격이다. 혼자 걷다가 구석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 때였다. 공원 입구 밖에서 유모차를 끌고 황급히 지나다니는 한 남성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온다. 남편이다.


'내가 여기 있는 줄 모르겠지. 지금 안 들어갈 거다. 흥!'


그런데 이게 왠 일. 나의 예상을 깨고 남편이 공원 입구로 진입한다.

'아니, 겁도 많은 사람이 여길 들어온다고? 앞도 안 보이는 이 컴컴한 공원에?'


남편은 핸드폰 후레시를 켜고 전방을 비추며 빛의 속도로 유모차를 끈다. 무서운 것이 틀림없다. 그의 무서움이 유모차 바퀴가 굴러가는 속도에서 느껴진다. 나는 조금 뒤편에 위치한 벤치에 조용히 앉아 있었는데 남편은 나를 찾지 못하고 바로 지나친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이 정말 빠른 속도로 앞만 보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나는 그 모습이 갑자기 웃기면서도 웃음을 참고 숨을 죽였다.


'지금 들키면 안 돼. 1시간 정도 있다가 들어가야지.'


결국 남편은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공원 밖으로 나갔다. '덜덜 덜덜' 엄청난 속도로 굴러가는 유모차 바퀴 소리와 함께 내 시야에서도 사라진다. 10여분 흘렀을까. 이내 남편은 다시 공원 입구 쪽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엔 어딘가로 전화를 하고 있다.


'흥. 어디다가 저렇게 전화를 하는 거야?'


아이가 걱정됐지만, 잠시 남편과도 아이와도 떨어져서 혼자만 있고 싶었다. 남편은 자꾸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며 집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다. 남편이 집 맞은편 건물을 끼고 코너를 돌아가자 나는 이 때다 싶어서 집으로 잽싸게 들어왔다. 싸늘히 식어버린 계란빵이 꺼내져 있었다.


남편은 내가 휙 나가버리자 아이에게 옷을 입혀 곧장 나를 찾으러 나선 모양이다. 좀 미안해졌다. 추운데 밖에서 아이와 나를 찾아 헤매고 있는 남편이 갑자기 안쓰러웠다. 아이가 감기는 걸리지 않을까 걱정됐다.


역시 정신이 번쩍 드는 찬 공기를 쐬고 와야 따뜻한 집의 소중함을, 옆에 늘 있는 사람들의 고마움을 깨닫는다. 휴대폰을 가져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전화를 받자마자 내가 집에 돌아왔다는 걸 알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깊은 잠에 빠져있었고 남편은 수십 가지 표정을 한꺼번에 구겨 넣은 얼굴을 한 채 나를 바라봤다.


"어디 있었어. 없어진 줄 알고 방금 경찰에 신고까지 했단 말이야."

"뭐라고? 그럼 어떻게 해. 빨리 전화해봐."


남편은 내가 실종(?)된 지 정확히 한 시간이 지나도 나를 찾지 못하자 112에 신고를 했다는 황당한 말을 전해왔다. 내 입장에선 황당했지만 남편 입장에선 오죽 애가 탔을까 싶은 마음이 들어 미안해졌다.

발코니로 나가 전화를 하던 남편은 경찰이 이미 신고가 접수됐기 때문에 반드시 집에 와봐야 한다고 했다.

"여보 그냥 나 씻는다고 하면 안 돼? 그냥 잘 왔다고 돌아가라고 해봐."


여기 경찰들은 정말 신속하다. 내가 이런 말을 하고 있는데 이미 발코니 밖으로 건물 현관에서 벨을 누르는 경찰 두 명이 보인다. 남편이 일단 현관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두 명의 경찰들과 함께 집에 들어왔다.

전화로 접수가 되면 무조건 집을 확인하는 게 수사의 원칙이란다.


우선 그들은 프로페셔널하게 플래시를 비추며 싱크대와 화장실, 방바닥 주변에 혈흔이 있는지, 이상 징후가 포착되는지를 살폈다. 그들의 플래시에 포착된 것은 부러진 안경과 싸늘히 식은 계란빵 두 개, 널브러진 아이의 장난감들이었다.


부부싸움의 문제이기 때문에 경찰은 2인 1조로 조사한다. 한 명은 남편을, 또 다른 한 명은 나를 맡았다.

나와의 조사를 진행하려는 경찰은 내가 증언하는데 불편할 수도 있으니 남편과 분리해 안방에서 진행한다고 했다. 남편은 거실로 불려 갔다. 우리는 서로 너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면서도 경찰 앞에서 장난치면 안 되니까 진지하게 조사에 임했다.


우리는 각자의 장소에서 약 10여 분간 10장이 넘는 종이의 항목들에 대해 진술해야 했다. 항목은 왜 이렇게 많은지. 평소 남편이 너를 성적으로 학대했니? 평소 남편이 너에게 종교적 신념을 강요했니? 평소 남편이 너에게 신체적 학대를 가했니? 끝도 없는 '평소 남편이..... 했니?' 질문이 이어졌다.

나는 계속 노, 노, 노, 노, 노라고 대답했다.

마지막엔 인적 사항까지 적어야 했다. 생일도 적어야 해서 불러주자 경찰관이 '너 나랑 생일 같다'라며 웃었다. 근데 본인은 85년생이 아니고 89년생이라나 뭐라나. 그러더니 왜 싸움이 일어났는지 물어보길래 "남편이 안경을 식탁에 놔뒀는데 아이가 그걸 부러뜨렸어. 근데 나한테 뭐라고 하잖아. 그래서 열 받아서 잠깐 공원에 가있었어."라고 대답해줬다.

아무튼 남편과 나의 질의응답은 모두 '노'로 끝이 났고 나와 상담을 진행했던 경찰관이 본부에 전화를 걸었다.

"아주 아주 평범한 가정이고 남편 안경을 아이가 부러뜨렸는데 그것 때문에 화가 나서 잠깐 집을 나갔던 거래."


전화를 마친, 나와 생일이 같은 그 경찰이 질의 응답지 마지막 장에 서명을 하면서 수사는 일단락됐다. 연예인도 아닌 사람한테 서명을 받고 기뻐보긴 또 처음이다.



남편과 나, 경찰관 두 명 모두 웃었다. 살짝 어이가 없다는 표정과 함께.


"어쨌든 너희들 피곤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그래도 새해 복 많이 받아."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경찰관들도 웃으며 화답했다.

"그래 너희들도 새해 복 많이 받아. 이건 기념이니까 평생 간직해."


남편과 수사를 진행한 경찰관이 서명이 적힌 종이를 벽에 걸린 가족사진 옆에 끼워 넣었다.


"그래. 고마워. 잘 가!"

"안녕"


우리 부부는 이 사건을 '2020 안경의 난'으로 부르기로 했다.

참 훈훈한 경찰관들이었다. 영국 경찰들은 이렇게 다 친절한 걸까. 아니면 이 경찰들이 피투성이의 험악한 수사에 지쳐있다가 우리 집에 와서 장난감과 계란빵을 보고 힐링을 한 것일까.


아무튼 무사히 경찰관들은 돌아갔고 남편과 나는 서로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전화기도 없이 사라지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남편은 자기의 물건을 잘 치우고 정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는 쿨하게 단잠에 빠졌다. 찬 바람을 오래 쐬다가 따뜻한 집에 들어오니 잠이 솔솔 온 탓이다.


많고 많은 특별한 새해 맞이가 있겠지만 2020년 1월 1일 '안경의 난' 은 아마도 새해가 될 때마다 떠오르는 특별하고 소중한(?) 추억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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