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평 / 월세 / 34만 원 / 원룸
결혼한 지 9개월째 되던 2016년 3월, 우리 부부에게 소중한 아이가 찾아왔다. 더블린에서 어학공부를 하던 우리는 결국 한국으로 돌아왔다.
결혼하고 집을 장만하지 않은 상태에서 해외로 나갔기 때문에 우리 둘이 거취 할 곳은 따로 없었다. 한국에 돌아온 우리는 2층짜리 전원주택에 사시는 시부모님 댁에 방 한 칸을 차지했다. 1층과 2층엔 각각 방이 두 개 있는데 어머님, 아버님, 도련님이 1층 방을 쓰고 아가씨와 우리 부부가 2층을 사용했다.
그렇게 201호 세입자가 된 우리 부부의 앞날은 참 어둡고 막막했다. 우선 유학을 꿈꾸던 남편의 계획이 자꾸 좌절됐다. 제출해야 하는 영어 성적 점수가 징글맞게도 나오지 않았다. 남편은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그 해에 학교를 입학하지 못하면 학교 지원을 다시 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지만 결국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대신 남편은 경기도 안산의 미술관에 취업을 했고, 우리는 곧바로 남편의 직장과 가까운 곳에 집을 알아봤다. 임신 6개월에 접어들었을 때, 우리는 안산의 한 원룸을 구해 살기 시작했다.
평수로 따지자면 세탁실과 화장실을 모두 포함해 8평 남짓 되는 작은 단칸방이었다. 샤워를 할 수 있는 작은 화장실이 붙어 있었고, 붙박이 장과 세탁기가 마련돼 있었다. 미닫이 문을 경계로 방과 주방이 구분됐는데, 현관문을 열면 바로 작은 주방이 있고 미닫이 문을 열면 방이 나오는 식이다.
집주인 분은 참 친절하셨다. 서글서글하신 주인아주머니와 아저씨께서 건물 4층에 거주하고 계셨다. 알고 보니 이 분들은 세계 최고의 배구 선수, 김연경 선수의 부모님이셨다. 우리는 종종 김연경 선수의 언니 분과 마주했는데, 그분 역시 키가 굉장히 컸다.
아무튼 우리의 단칸방 신혼생활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16년 10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살았으니, 거의 1년 반을 세 발자국만 걸으면 끝에서 끝이 닿는 이 작은 단칸방에서 살았다.
방에 누워 남편과 나는 점점 불러오는 배를 구경했다. 뱃속에서 아기가 발로 뻥 차는 장면을 카메라 동영상으로 순간 포착했다. 아이가 돌아가 있다는 말에 남편과 거꾸리 운동을 하기도 했다.
남편은 작은 독서실 책상을 중고로 구입해 공부를 이어나갔다. 남편이 회사에 가면 나도 이 책상에 앉아 이것저것 나름의 공부를 했다.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흘러갔다. 어느덧 출산이 눈앞에 다가왔고 아이는 예상보다 2주나 빨리 태어났다. 나는 시댁이 있는 평택의 한 병원에서 출산했고 몸조리 후 친정인 부산에 한 달 정도 머물렀다.
그 사이 남편은 혼자 이 원룸에서 먹고 자고 일해야 했다. 남편은 혼자 자는 걸 너무 싫어하는데, 내가 없는 원룸이 너무 쓸쓸하고 싫었다고 말하곤 한다.
아이가 50일 되던 날, 부산에서 다시 평택으로 올라와 가족들을 만나고 남편과 함께 안산으로 돌아갔다.
우리 식구는 둘에서 셋이 됐지만 다행히 아이는 작디작아서 원룸이 좁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가만히 누워 있고 먹고 자기만 하는 신생아였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때때로 늦은 밤 아기가 큰 소리로 울면 옆 집에 방해가 될까 봐 마음 졸이기도 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될 때까지 붙박이 장 안에 들어가 아이를 달래기도 했다.
사실 우리가 살던 원룸은 보통의 경우엔 성인 혼자 사는 방이다. 우리가 집을 구할 때 주인아주머니께서는 한 명이 아니고 두 명이니까 물세를 월 1만 원씩 더 달라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조건이었기에 우리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때 내가 임신한 상태라는 말이 차마 입에 떨어지지 않아 말하지 못했다. 혼자 사는 방에 둘이 와서 살겠다고 하는데, 곧 아이까지 태어난다고 하면 퇴자를 먹을까 봐 겁이 났다.
내가 출산과 몸조리로 두 달 여간 집을 비웠을 때 남편은 주인집을 찾아가 이 소식을 전했다. 다행히도 주인 내외분께서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셨고 축하해주셨다.
그렇게 이 작은 원룸에서 남편과 나는 아이를 열심히 키웠다. 다이소에서 파는 흰색 큰 대야를 사 와 아이를 목욕시켰다. 지금은 앉지도 못할 만큼 아이가 컸지만 당시엔 그 대야가 수영장처럼 넓어 보였다.
원룸에 살고 있는 엄마 아빠를 배려하듯, 아이는 기는 것도, 걷는 것도 늦었다. 아이가 조금씩 대각선으로 걷기 시작할 즈음, 우리는 나름대로 정이 든 이 단칸방을 떠나 좀 더 넓은 집으로 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