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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옹 Oct 26. 2020

더블린 신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랑하겠습니다

비바람과 강풍에 맞서는 신혼부부의 자세

이솝우화 [해와 바람]에서 한 남자가 걸어가는 걸 본 해와 바람이 내기를 한다. 바람이 먼저 나선다. 강한 바람이 불어오자 남자는 외투를 단단히 여민다. 더 거센 바람이 불어올수록 팔짱을 단단히 끼고 몸을 움츠린다. 이번엔 해 차례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자 남자는 ‘거, 오늘 날씨 참 이상하네’하면서 꽁꽁 싸매고 있던 외투를 벗는다.



더블린으로 날아간 우리는 1년이 조금 못 되는 기간 동안 신혼 생활을 보냈다.

어렵사리 살 집을 구했고, 남편은 계속 어학 시험을 위한 공부를 했다. 나도 학원에 다니며 오전엔 영어 공부를, 오후엔 초밥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더블린에 도착한 건 8월 중순이었는데 9월까진 날씨가 좋았다. 낮게 뜨는 구름에 파란 하늘이 참 예뻤다.



하지만 10월에 접어들면서 같은 나라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날씨가 나빠졌다. 거의 매일 비가 왔고 해가 나다가도 비가 왔고 미스트를 뿌리는 것 같은 미세한 비가 왔다. 비만 오면 양반이지, 바람은 또 왜 그렇게 부는지. 섬나라의 위상에 걸맞게 엄청난 강풍이 심심찮게 불어왔다.

우산이 뒤집어지는 건 늘 있는 일이었고, 거리의 큰 쓰레기통이 쓰러지거나 길을 걷는 할머니가 직진으로 가지 못하고 바람이 밀어주는 방향대로 떠밀려가는 모습을 종종 목격했다.

2015년 당시, 매일매일 샤워



우리가 구한 집은 무려 월세 1000유로에 달하는 무시무시한 가격의 집이었지만, (대부분 월세 가격이 이렇다. 더 비싼 집도 수두룩하지만 이게 우리 형편이 허락하는 최대치였다.) 문제는 이 집이 거의 백 년은 되어가는 아일랜드 전통 집이었다는 점이다.

저 커튼 뒤로 얇은 나무 창문 하나가 숨어 있다


거실 가운데에 있는 얇은 여닫이 창문은 아일랜드 더블린의 몰아치는 강풍을 막아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위이 이이이 잉 휘휘휭 휘이이잉” 하는 무시무시한 바람 소리가 창문을 타고 들어왔다.



본격적인 겨울에 돌입하자 집 안은 더욱 추워졌다. 난방을 하려면 라디에이터를 켜야 하는데, 아일랜드가 전기를 수입하는 나라다 보니 전기세가 상당히 비쌌다. 나와 남편은 비싼 전기세가 무서워 라디에이터를 틀지 않았다. 대신 수면 내복과 수면 양말로 무장하고 때때로 너무 추울 때는 패딩을 입고 있기도 했다.



진짜 추운 날은 집 안에서 입김이 나왔고 앉아있으면 발에 동상이 걸릴 듯 얼얼했다. 나와 남편은 고무 보틀을 사서 뜨거운 물을 끓여 붓고는 그 보틀을 수시로 끌어안고 있었다. 자려고 침대로 들어가면 이불이 너무 차가워서 이불 안으로 드라이기를 5분 정도 틀어 훈훈하게 만들었다.

동화 해와 바람에서 바람이 몰아치면 더욱 옷을 여몄던 그 남자처럼, 더블린에서 강풍이 몰아칠수록 우리 부부는 더욱더 서로를 끌어안았다. 집이 너무 추우니까 서로의 체온이 절실했다.




잔인하게도 더블린의 겨울은 4월, 5월까지 이어졌다. 좀 따뜻해졌다보다 하고 봄 옷을 꺼내 입으려 하면 다시 또 추워진다. 겨울철 내내 입던 검은색 패딩만 질리도록 입었다. 추위 앞에 패션이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때이기도 하다.


혼자라면 너무 추웠을 더블린의 1년. 둘이라서 덜 추웠고 덜 외로웠다. 남편은 시험 스트레스를 참 많이 받았던 터라, 더블린 이야기를 하면 힘들었던 기억들을 주로 꺼내 놓는다. 하지만 나는? 나름 좋았다. 첫 해외 생활이었기에 모든 게 낯설고 새로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곳 더블린에서 지금의 사랑하는 아들이 우리 부부를 찾아와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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