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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옹 Oct 27. 2020

더블린 신혼: 신비로운 남편 탐구

남편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우리 부부는 연애 기간이 3개월 남짓으로 정말 짧았기 때문에, 결혼 후의 신혼 생활이 오히려 더 연애 같기도 했다. 특히 우리 둘은 결혼과 동시에 바로 아일랜드 더블린이라는 낯선 땅으로 날아왔으니, 모든 순간이 더 새로웠다. 연애 때 몰랐던 남편의 특징을 많이 알게 된 것도 이때다.




신혼을 보내며 알게  남편의 특징 7

1 남편은 축구를 좋아해
남편이 나 다음으로 가장 좋아하는 게 있다면 그것은 단연코 축구일 것이다. 혼자서 하는 개인 스포츠를 좋아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함께 뛰고 호흡을 맞추는 축구를 너무 좋아한다. 더블린에서도 어떻게 하면 사람들과 만나서 축구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남편. 한인들이 모여 일주일에 1번 축구 경기를 하는 모임을 찾아 나가기도 했다. 나도 몇 번 따라 나가기도 했다.


하루는 남편이 혼자 축구를 하겠다고 옷을 챙겨 입고 나섰다. 오후 3시까지 돌아온다던 남편이 5시가 되도록 전화도 없다. 슬슬 걱정이 되려던 차에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 늦어서 미안해! 경기가 너무 늦게 끝나서 지금 전화했어!. 근데 우리 팀이 경기에 졌는데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내가 져서 유니폼 빨아오는 거 당첨됐어! 상대편 팀 것도 같이 빨아야 된대. 헤헤"


사이다처럼 청량한 목소리의 남편은 신나게 축구를 해서 그런지 잔뜩 신이 나 있으면서도 유니폼까지 빨아와야 해서 미안해하는 눈치였다. 뭐, 빨래야 세탁기가 하는 거고,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할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감사하기로 했다.


2 남편은 건조기를 좋아해
빨래가 잘 마르지 않고 꿉꿉한 걸 유독 싫어하는 남편은 더블린의 습한 날씨를 너무 싫어했다. 유럽의 겨울은 한국처럼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서 추운 게 아니라, 축축하고 으슬으슬하게 뼈마디가 시린 추위가 찾아온다. 우리는 빨래를 널어놨다가 이틀이 지나도 축축한 상태인 것을 몇 차례 경험한 뒤, 무조건 빨래를 돌린 직후 건조기까지 사용하기로 했다. 다행히 우리가 구한 집의 세탁기에는 건조 기능이 포함돼 있었다.


남편은 그때부터 건조기 애호가가 됐다. 빨래 건조가 다 되고 나면 남편이 꼭 하는 의식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 마른 빨랫감의 냄새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의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킁킁 킁킁"

"왜 그렇게 냄새를 맡아?"

"난 이 냄새가 좋더라?"


빨래 박사 남편은 섬유 유연제 또한 까다롭게 골랐다. 이 향 저 향 맡아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걸 신중하게 골랐다. 나는 사실 군인일 땐 섬유 유연제도 잘 안 넣고 빨래를 돌렸던 사람이라, 빨래에 관해선 모든 것이 내 우위에 있는 남편에게 권한을 위임했다.


하루는 남편이 비가 자주 오는 날씨 탓에 더러워진 운동화를 보며 말했다.


"내가 여보 운동화 깨끗이 빨아줄게."


난 빨래 박사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했고 내가 가진 운동화 3켤레 모두를 그에게 맡겼다. 몇 시간 뒤, 나는 바짝 오그라들어 발이 들어가지 않는 운동화들과 다시 만났다. 남편이 운동화를 빤 후 건조기에 돌린 탓에 고무 성분이 들어있는 밑창이 모조리 줄어든 것.


일단 돌리고 보는 건조기 왕자님 덕분에 내 소중한 운동화 세 켤레는 모두 미니미 신발이 돼 버렸다. 내 발이 유독 커서 255 또는 260의 운동화를 신는데, 아마도 240 정도의 사이즈를 신는 분의 발에는 꼭 맞지 싶었다. 그렇게 내 운동화들은 몽땅 의류 재활용 통으로 들어가 제2의 주인을 기다려야 했다.



3 남편은 영화를 좋아해

집에 텔레비전이 없었던 우리. 주로 남편은 공부를 했고 나도 책을 보거나 일기를 쓰거나 했기 때문에 텔레비전이 그렇게 절실하진 않았다. 하지만 가끔씩 우리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노트북으로 보는 영화였다.

나는 영화를 4~5번쯤 봐야 정확히 내용을 기억하기 때문에 봤던 영화를 또 봐도 내가 본 건지 잘 모를 때가 많다. 영화를 찾아서 보지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남편은 영화를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다. 본 영화도 상당히 많고, 장르도 다양하다. 남편은 주말이 되면 영화 한 편씩 선정해 나에게 보여주곤 했다. 함께 따뜻한 침대 안에 들어가 이불을 덮고 영화를 봤다. 때로는 영화를 보고 슬퍼서 울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남편은 사진을 찍어서 나를 놀리곤 했다.

남편이 사진에 글씨를 넣고 편집해 만들어 줬다

때로는 진지한 예술 영화를 보기도 했고, 애니메이션을 보기도 했다. 남편 덕분에 영화보기를 조금씩 좋아하게 됐다. 극장이 아닌 집에서 남편과 단 둘이 손잡고 보는 영화라 좋았고, 영화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는 게 재미있었다.



4 남편은 필카를 좋아해
남편은 사진 찍히는 것 말고 찍는 걸 좋아하는데, 특히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어디를 가더라도 남편의 손엔 항상 작은 필름 카메라가 손에 들려 있었다.

나는 사진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필름 카메라가 주는 특별함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남편은 꼭 남기고 싶은 장면들은 필름 카메라로 찍기를 원했다. 남편 앞에서 다양한 포즈를 취하는 건 주로 나였는데, 필름 카메라는 바로 사진을 확인할 수 없어, 내 주관적인 관점에서는 좀 답답했다. 20장? 정도 정해진 필름의 장수에 맞게 사진을 다 찍어야 하고, 그걸 또 사진관으로 가지고 가 인화를 맡겨야 하니. '필름 카메라 = 기다림'이랄까? 하지만 남편은 그 기다림을 즐기는 사람처럼, 어떤 사진이 나왔을까 궁금해하며 한 장, 한 장, 소중한 사진들을 담아갔다.



5 남편은 음악을 좋아해

남편은 직접 작사 작곡한 곡으로 결혼식 축가를 불러준 사람이다. 그것도 기타까지 치면서 말이다. 물론 작곡을 전문으로 하시는 지인 분의 도움을 받은 건 맞지만, 어쨌든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큰 사람이다. 더블린에 살면서도 나에게 아일랜드 출신 음악가들의 노래를 많이 들려주곤 했다. 또 더블린에서 음악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 로맨스 영화 'once'에 등장하는 기타 판매점을 같이 가보기도 했고, 거기서 직접 기타를 연주해주기도 했다.

남편의 이런 음악 사랑 덕분에 우리는 크리스마스 때 버스킹 하는 더블린 출신 뮤지션, 글랜 핸사드의 라이브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남편은 이때 정말 기뻐했고 감격스러워했다. 그토록 애정 해오던 뮤지션을 코앞에서 만났으니, 얼마나 떨리고 좋았을까. 나는 음악을 잘 모르지만, 로맨틱한 크리스마스이브에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사랑하는 남편과 들을 수 있음에 행복했다. 남편은 음악을, 특히 영국 록 밴드 오아시스의 노래를 참 좋아한다.



6 남편은 여행을 좋아해

남편은 여기저기 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물론 집에서 쉬거나 영화를 보거나 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새로운 곳이 있다면 가보는 걸 좋아한다. 우리가 신혼생활을 한 아일 랜든 더블린은 그야말로 미지의 세계였기 때문에 밟는 곳마다 다 새로운 곳이었다. 가보지 않은 골목을 걸어보기도 하고, 새로운 음식점을 찾아가 보기도 했다.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아일랜드 북쪽 벨파스트 여행도 남편이 가보자고 해서 갔다. 새벽에 버스에 탑승해 2시간 반 정도를 달리면 벨파스트에 도착하게 된다. 새벽 일찍 일어나 요구르트를 먹고 버스에 올랐는데, 버스에서 배가 너무 아파서 정말 큰 변(?)을 당할 뻔했다. 다행히 가는 길에 정차하는 곳이 한 군데 더 있어서, 그곳에서 장을 깨끗이 비운 뒤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내가 또 여길 언제 와보겠어, 하는 마음에 더 열심히,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결정한 뒤에도 다른 부부와 함께 차를 빌려 아일랜드를 한 바퀴 돌며 여행하기도 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 덕분에, 나도 더 새로운 모험을 추구하게 되는 것 같다.


7 남편은 곰팡이를 싫어해

겨울철이 되니, 하루만 지나도 화장실에 검은색 곰팡이가 생겼다. 그야말로 습기와의 전쟁, 곰팡이와의 전쟁이었다. 남편은 습한 날씨 때문에 자꾸 곰팡이가 끼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남편과 나는 주기적으로 이 곰팡이를 제거하는 화장실 청소를 해야 했는데, 우리는 이를 '곰팡이 소탕작전'으로 불렀다. 남편은 작업 반장, 나는 행동 대장이 돼  2인 1조로 호흡을 맞추는 곰팡이 소탕 작전! 남편이 가장 효과적으로 곰팡이를 제거해줄 세제를 사 오면, 나는 곰팡이가 서식하고 있는 곳에 세제를 뿌린 뒤 휴지를 덮어 놓았다. 이후 우리는 눈에 물이 튀지 않도록 선글라스를 낀 뒤 신나는  물청소를 했다. 욕실 곰팡이 청소, 어떻게 보면 짜증 나는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우리 부부는 항상 즐겁게, 성공적으로 곰팡이를 소탕했다.


결혼을 하고 서로 부부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상대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비록 신혼 1년 차엔 이 정도밖에 못 알아냈지만, 결혼 10년 차, 20년 차가 되면 상대를 그 누구보다도 가장 잘하는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을 상상하며, 오늘도 나는 까도 까도 새로운 양파처럼 신비로운 내 남편을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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