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안아주려 노력하는 나

감정을 참던 아이에서 다정한 어른까지

by 정은쌤

나는 감정표현이 풍부하지 못하다.

기분이 좋으면 좋은 표현,

기분이 나쁘면 나쁜 표현,

그저 그렇다면 그저 그렇다는 표현,


수십가지의 감정들의 모양을 표현해본 적이 없다.


우리 아이처럼 엉엉 울어보지도 못했고,

기분 좋으면 방방 뛰며 즐거움을 표현해보지도 못했고,

행복함을 온 몸으로 표현하지도 못했다.


오히려 나는 감정을 참는 법만 익혔고,

그저 칭찬에 목마른 사람처럼 인정받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무언가 내가 잘해야만 인정받는다는 걸

그래야만 한다고 가르쳐주지 않아도 나는 이미 체득하고 있었다.


그 어린아이가 왜 그리도 감정 표현이 서투르고 심지어 참아가며 지냈을까?


나는 울면 더 혼이 났다.

그래서 눈물이 새어나오면 혼나기 싫어 문을 닫고 혼자 소리내지 않고 꺼억꺼억 울었다.


나는 소리치며 좋아하면 혼이 났다.

아이돌이 나오는 음악프로그램을 보면서 그들을 좋아하는 친구처럼 소리지르며 방방 뛰었다.

그 모습을 본 아빠께 "방정맞다"고 하며 쓴소리를 들었다.


나는 중학생이 되면서 공부를 해야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빠의 기준에 공부와 거리가 먼 활동들은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나중에' 내가 커서 해야만 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내 마음에 감정이 올라와도 공부에 방해되지 않게 절제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야했다.

그래서 늘 짜증이 나고 화가났다.

공부가 방해되는 요인이 조금만 생겨도 예민해졌다.


중학교 종합학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빠가 지하철 역으로 마중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아빠에게 내가 오늘 잘한 것들을 쫑알쫑알 늘어놓았다.

아빠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어쩌면 다정다감한 아빠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나에게 공부만 하라고 하는게 아니라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 같이 귀 기울여주고,

공부하느라고 애썼다고 한마디 해주고, 오늘 힘든건 없었냐고 물어봐주고,

요즘 친구들은 뭘 좋아하느냐고 같이 재밋게 놀으라고 격려해주고,

공부만 하지 말고, 평생 친구 만드는게 더 중요하다고 귀뜸해주고,

내가 무얼 하든 나를 믿으니 뭐든지 도전해보라고 응원해주는 그런 아빠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나의 아빠는 그런 아빠가 아닌

때론 무심하고 무뚝뚝하면서도 무서운 아빠였다.


나는 감정표현에 있어 늘 긴장하고 꽁꽁 어디론가 묻어두는게 익숙했다.

어릴 땐 그런 것이 터져나오지 않아 잘 몰랐지만,

성인이 되어 감정으로 힘들어지는 순간을 마주할 때 너무나 괴로웠다.


감정은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흘러갈 수 있게 두어야 내 마음 주머니가 건강해질 수 있다는 걸

어린 정은이가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아이로 인해 내 감정이 흘러 나오고, 급기야 폭발할 때가 있었다.

그런 나도 괴롭지만, 아이에게 내가 보이는 모습 또한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다.


나는 이제라도 내 안의 여러 감정친구들을 들여다본다.

오늘도 잘 지냈느냐고 물어본다.

힘든 감정 구슬들은 털어내기도 비워내기도 한다.


그렇게 내 감정 주머니를 깨끗하고 예쁘게 가꾸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내가 나에게 먼저 다정해지려고 노력한다.


어린 내가 다정한 어른이 필요했다면,

지금 내가 다정한 어른으로 내면 아이의 손을 잡아주고 토닥여주려고 한다.


그렇게 하나씩하나씩 마주하고 토닥여주고 안아주다보면

어느새 나도 한걸음 성숙한 어른이 되어있겠지


내 아이는 아이의 마음 주머니를 예쁘게 가꾸어가는걸 지금부터 알아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알려주고 싶어 더 노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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