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환희, 기쁨의 자리에 존재하기
(특히 이번 글은 오글거림 주의 요망)
박티요가(Bhakti Yoga)수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깍두기를 억지로 깨워 갈 수 없어서 새벽 명상은 건너뛰지만 아침식사 이후의 일정은 나름 열심히 들어가고 있다. Anandra선생님은 만트라와 나다요가(소리/음악을 통한 요가)계에서 꽤 유명한 분인 것 같았다. 페스티벌 때에 뮤지션으로 참여한 여러 만트라 가수들과 사운드 힐링 연주자들이 학생으로 함께 참여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 아이 컨디션에 맞추어 드문드문 보였다 안보였다 하는 날라리 참가자...
오전 수업이 열리는 Sacred Sound Stage로 가는 길. 인도 소년은 잔디밭에서 일부러 우리를, 우리가 아니고 깍두기를 기다린 듯했다. 결국 우리 셋은 함께 수업에 들어갔다.
아이 둘이 잘 놀아서 잠시나마 수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소리를 이용하여 깊은 명상의 상태에 이르는 나다요가 클래스였다. 모두의 에너지가 하나로 모이는 특별한 경험. 어떤 느낌들은 말로 설명하기가 불가능하다. 그저 서로의 미소를 보며 짐작한다. 우리 같은 곳에 있군요.
40분. 늘 40분이 고비였다. 아이들의 인내심이 끝나는 시간은 40분이었고 이후에는 몸을 배배 꼬며 나가고 싶어 했다. 깍두기는 나에게 묻지도 않고 오빠와 잔디밭으로 뛰쳐나갔다. 서둘러 나가는 나를 잡는 일본 여성. 본인은 조교로 따라왔다며 잠시 아이들을 봐줄테니 나보고 수업을 마저 들으라고 했다. 우어....고마워라....
그렇게 앉아서 수업을 듣는데 마음이 꼭 편치만은 않았다. 깍두기가 불안하기도 했고 일본인 조교에게 너무 민폐인 거 같기도 했다.
30여분 흘러 밖으로 나갔다. 그녀에게 이제 들어가서 할 일 하시라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드넓은 잔디밭을 전세내고 노는, 엄마가 박티요가를 하는지 박쥐요가를 하는지 안궁금하고 마냥 해맑게 뛰어놀고 있던 둘.
인도에 온 지 열흘째, 페스티벌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듣고 싶은 수업을 맘껏 들을 수 없는 상황이 되니 자괴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가 이 먼 인도까지 와서 애둘 엄마 신세여야 한다니...
눈 앞의 풍경은 평화 그 자체이거늘 마음은 어느새자괴감과 불안감으로 출렁거렸다. 그러기를 잠시,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을 순 없다라는 생각에 미치자 다시 주어진 상황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박티요가 워크샵 참가자들 모두 함께 하븐을 보러 간다고 했다. 특별히 Anandra 선생님의 빽으로 박티요가 학생들이 하븐 주위에 뱅 둘러앉아 기도를 올린다고 했다. 특별한 경험임에 분명했지만 열흘 내리 하븐을 본 깍두기에게 한 시간 그곳에 앉아있는 일은 고역일터. 애초에 마음을 접고 먼발치에서 구경을 했다. 나를 알아본 Anandra 선생님께서 내게 손짓을 했으나 내가 깍두기를 가리키자 이해한다는 듯 윙크를 날리셨다. 잠깐 하븐을 보다가 우리는 또 소원을 빌러 강가로 걸어갔다.
빌어도 빌어도 계속 나오는 소원....ㅎㅎ
그렇게 깍두기와 저녁 산책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는 길, 딸기 장수가 보였다. 딸기 킬러인 깍두기는 오랜만에 본 딸기에 눈이 땡그래져서 먹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방으로 직행. 딸기를 씻어 맛을 보고...옷을 든든히 챙겨 입고 Kirtan(음악잔치)를 보러 나갔다. 내일이면 박티요가 워크샵이 끝나는 날. 전야제처럼 음악잔치가 예정되어 있었다. 지난번 키르탄에서 극도의 즐거움을 만끽했던 깍두기는 이번에도 신이 나서 따라나섰다.
키르탄에 갔더니 요가페스티벌이 끝나고 집에 가신 줄 알았던 Saul David Raye선생님께서 심지어 사회를 보시는 것 아닌가....사랑을 품고 있는 그의 음성, 말들.....내 가슴은 한번 더 촉촉해지고...
라마나스 가든이라는 곳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합창으로 행사가 시작되었다. 라마나스 가든은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함께 공부하고 생활하는 공간인 것 같았다.
합창이 끝나자 라마나스 가든의 아이들을 위해 기부금을 조금씩 걷는다고 했다. 물론 자율적 기부였고, 모두 기분 좋게 돈을 냈다. 나도 500루피를 모자에 넣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인도 전통음악과 만트라...일주일 내내 만트라 수업에 참여했더니 뜻은 다 몰라도 웬만한 산스크리트어가 입에서 줄줄 나왔다.
단연코 Kirtan의 여왕은 The Love Keys의 엘리야였다. The Love Keys는 엘리야와 다른 남성 음악가 두 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번에는 그녀 혼자만 인도에 온 것 같았다. David Ma라는 다른 객원 뮤지션이 그녀와 함께 연주를 했다.
노래하고
춤추고
기뻐하는 이들
존재와 존재 사이를 가득 메우는 환희심
독일에서 온 그녀, 클라우디아. 중년을 한참 넘긴 그녀의 흰머리는 볼때마다 아름다웠다. 어느새 일어나 눈을 감고 수피춤을 추는 그녀의 표정을 한참동안 넋놓고 바라보았다.
키르탄의 모든 노래가 끝나자 사람들은 엘리야에게 앵콜을 외쳤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느린 곡을 원하는지 빠르게 춤추고 싶은지 물었고 우리 모두는 빠른 곡! 하고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오 살아있으니 정말 좋구나! 라고 느낀 적이 살면서 몇 번 있었던 것 같다. 예전에 록밴드 시카고 할배들 콘서트 갔을 때 일흔도 넘은 그들의 연주를 듣고 그랬고, 내가 빨래 터는 모습을 보고 7개월 된 깍두기가 꺄르르 넘어가게 웃었을 때 그랬다. 최백호 아저씨의 바다 끝을 처음 들었을 때 그랬고 예전에 용인 어디께 카페에서 예가체프라는 이름의 커피를 한 모금 마셨을 때 그랬다. 어제 과천 별주막에서 대대포 막걸리를 처음으로 한 모금 먹고도 그랬다.
마음을 밖으로 꺼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까봐 두려워 혼자 내내 간직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그냥 슬쩍 한 번 꺼내보는 것이다.
3월의 어느 날 밤 인도에서
깍두기의 작은 손을 잡고 자박자박 숙소로 걸어 돌아오던 길에
아 살아있으니 정말 좋구나 했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