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밝은밤
최근 참석한 어떤 시인의 특강에서 이런 이야길 들었다. 시, 그리고 문학의 수요층은 대다수 여성들이라고. 40대, 50대, 30대 여성순이었던 것 같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정말 왜 그럴까라며 골똘히 고민했던 것 같다.
독립서점에서 일한지도 벌써 1년이 훨씬 지났다.
책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나는 사실 책을 잘 읽지 못한다. 한권 읽는데 집중하기까지 오랜시간이 걸리고 육아를 시작하고 나서는 육아서적과 동화책 이후에 에세이 몇권 읽었을 뿐이다.
서점에서 일하기 시작하니 책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직원 할인가를 이용해 처음에 아이 책을, 그 다음엔 개발서를 그 다음에는 문학책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문학책에게 순서가 돌아간 건 상대적으로 뒤였다. 바쁜 세상사에 내 시간과 마음을 누가 만들어낸 이야기에 줄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거쳐온 인생 자체가 이미 커다란 파도에 휩쓸려 살아남은 판대기 하나 붙잡고 무사히 살아남은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생존이 중요한 사람에게 남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오기나 할까.
그러다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을 만난다.
책에 관심이 생긴 시점에 지인과 둘이 책모임을 만들어 한달에 한권씩 읽어나가던 중에 그녀가 나에게 추천해주었다. 구매는 해놓고 책꽂이에 그대로 자리만 잡고 있던 어느날 책을 붙잡고 그대로 읽어내려갔다. 잠든 아이 옆에서 책을 읽으며 눈물이 흘렸다.
아, 마음이 저리다.
나와 우리 가족과 맞닿은 삶이 그 책 안에 담겨 있었다.
책 속에 들어가 하염없이 바다를 지켜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밝은밤을 시작으로 나는 문학책을 온전히 한권, 두권 읽고 있다.
왜 우리는 문학을 읽을까
왜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문학을 많이 읽을까
시인의 그 물음으로 다시 되돌아가본다.
여성의 삶을 기술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매체이기 때문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감성이 더 풍부한 것도 있겠다. 원래 문화 예술분야엔 여성 비율이 더 높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금도 많은 제약이 있지만서도, 과거엔 훨씬 커다란 고통 속에 묵묵하게 버텨내던 여성들의 삶을 제대로 표현하기엔 글이 그나마 자유로운 표현 수단인 것 같다(상대적으로 그나마이다.) 활자는 그녀들의 삶을, 마음을, 한글자 한글자 정성을 다해 담아내고 묘사했기에 그것을 읽은 다른 여성들, 즉 우리들은 공감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감성 가득한 에세이와 재미 위주의 이야기를 읽던 20대, 육아서와 개발서외엔 안 읽던 30대를 지나 이제 30대 끝자락에서 문학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릴때는 이해 못한 이야기들을 이젠 깊게 공감하게 되었다.
나의 이야기도 언젠가 담을 수 있을까.
스스로를 마주할 자신도 없고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도 아직 부족하다. 현재는 삶의 앞만 보고 갈뿐이지만 대신 문학을 읽으며 내가 미처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 속에서 위로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