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는 것
대략 6개월마다 한 번씩, 그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대학에서 만났고, 그는 재미없는 돌진형 스타일이다. 재미없는 유머를 구사하지만, 유머속 순순함을 느껴 대학시절 같이 어울려 놀았던 친구다. 그는 딱 해보고 안 되면 말고 식으로 살아가는 성격이다.
대학 시절 그 친구는 알바를 많이 했다. 고등학교때 부터 알바를 시작했는데 그래서 또래 친구들보다 세상을 읽는 눈이 더 넓었다. 군 시절을 겪고 졸업을 앞둔 우리는 각자 졸업을 위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들 졸업작품에 1년을 쏟아붓는 동안, 그는 학교 근처 유원지에 지인과 동업으로 커피숍을 준비하고 있었다. 수업 시간 대부분을 거기서 공사 감리를 보며 보냈고, 중요한 시험 때나 와서 시험을 치르고 작품을 만들어 겨우겨우 졸업했다.
졸업과 함께 동기들은 취업과 개인 목표를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종종 들리던 그 친구의 근황은 커피숍에서 손을 떼고 셀프 사진관과 인테리어 사업을 시작했다. 인테리어는 쉬운 분야가 아니다. 종합예술로까지 불리우는 인테리어는 공간과 소품, 신경 써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 분야에 이 터프한 친구가 뛰어들었다. 인테리어 트렌드를 위해 종종 서울에 올라온다며 가끔 전화를 준다. 그러면서 각자 근황을 공유하는데 나도 지금 직장과 육아로 바쁘고, 그 친구 역시 육아는 그의 아내가 전담하지만 그만큼 생계를 전담하느라 바쁘긴 마찬가지다.
그렇게 시간을 하루하루 흘러보내다 최근에 또 연락이 왔다.
"미국 다녀왔어."
자기 사업 확장을 위한 목적으로 다녀왔고, 장기적으로 이민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통화는 짧게 끝나지 않았다. 왜 미국인지부터 시작해서 살인적인 물가까지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눈치껏 빨리 인정하고 "너 정말 멋지다"라는 멘트를 날려야 하는 순간임을 직감했다. 그렇게 통화를 적당히 마무리하고 기약 없는 밥 약속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비슷한 환경에서 배우고 자라면서 어느 시점이 되면 삶의 방향이 많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이 친구를 보면 이 말이 전적으로 체감이 된다. 지금과 같은 불황에 사업을 꾸려나가고 있고, 나름 애로사항이 많겠지만, 평범한 월급쟁이 주변 사람들과 달리 꿈을 정해놓고 미국이며 사업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 친구를 보고 있노라면 결국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언젠간 끝날 것을 알지만 그러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직장생활, 가족들, 건강 문제들. 나름 보란 듯이 잘 살고 있다고 믿고 살아가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닥치면 이런 믿음이 바다 위 부표처럼 흔들려 버린다.
어릴 적 부모님이 문득 생각난다. 돌이켜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부모의 불안은 비슷한 것 같다. 생존을 우선으로 자식을 사람답게 키워 스스로 독립할 수 있게 하고, 동시에 본인들의 노후도 생각해야 하는 빠듯한 삶.
분명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인간을 사람답게 만드는 데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고 살아왔다. 하지만 이 믿음이 아이들에게 대입되면 문제가 달라진다. 배우고 싶고 하고 싶은게 많은 아이들을 보면 또 이 생각이 흔들린다. 만족이란 끝없는 우물 속에 물을 퍼다 붓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가능하면 가득 그리고 많이 채워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내 삶의 풍요로움도 중요하지만, 그 풍요로움의 조건 중 하나가 자식의 건강한 성장이다. 개인주의 시대, 핵가족화 시대라고는 하지만, 어려워하는 자식을 놓고 풍요롭게 사는 부모는 어느 시대나 불편한 가족의 모습이다.
이렇게 친구의 전화를 받고 흔들린다. 시간이 흐르면 잦아들겠지만, 훗날 이런 흔들림을 변화의 신호로 인지하지 못하고 흘려보냈다가 후회할까 두려움도 있다. 탄탄대로 다가올 인생이 꽃길만 가득하면 좋겠지만, 사람들은 크고 작은 시련을 겪고 나름 이겨내면서 살아가고 있다. 나와 내 가족들 역시 서로 의지하며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고, 그럴 만한 힘이 있다. 지금은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느끼지 못했던 기운이 있다. 부모님의 좋은 기운과는 조금 다르다. 가족이 있어 어떠한 흔들림 속에서도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믿음이 있다.
친구의 전화는 늘 나를 흔들어 놓는다. 하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 오히려 내가 딛고 선 땅의 단단함을 확인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
6개월 후, 그 친구에게서 또 전화가 올 것이다. 그때는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그리고 나는 또 어떤 흔들림을 겪게 될까. 하지만 괜찮다. 흔들리는 것이야말로 아직 마음이 굳어버리지 않았다는 증거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