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파도
해질녘, 모래사장에 앉아 있는 한쌍의 남녀.
잔잔한 파도가 발끝을 스치고, 붉은빛이 수평선을 물들였다.
“뭘 보고 있어?”
남자가 물었다.
“파도…”
여자가 대답했다.
그들은 한동안 말없이 파도를 바라보았다.
밀려왔다 사라지는 물결, 그 반복 속에서
시간조차 느릿하게 흐르는 듯했다.
“그런 것 같지 않아?”
여자가 말했다.
“우리가 모래성이고, 인생은 파도야.
쌓아 올리면 무너뜨리고,
쌓아 올리면 무너뜨리고…
쟤는 지치지도 않나 봐.
지치는 건 우리 몫이야.”
남자는 여자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여자는 여전히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언제까지일까… 언제까지 이런 걸까?”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다시 파도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런 뒤 바로 옆 모래를 움켜쥐어
조심스레 여자의 손 위에 흘렸다.
바람이 모래를 낚아채듯,
손에 닿기도 전에 흩날렸다.
“파도가 없으면,
모래성을 쌓을 수조차 없잖아.”
남자가 조용히 말했다.
여자가 천천히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미소 지었다.
그 미소에, 여자는 이내 따라 미소 지었다.
그 순간, 해질녘 빛과 파도, 바람, 모래, 그리고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이
모두 한 장면처럼 마음속에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