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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흔 Jul 04. 2023

사랑이 참 우습다는 여자

엄윤정 시인의 [사랑 참 우습죠]를 읽었다.

사랑이 참 우습다는 이 여자는 내가 잘 아는 엄윤정 시인이다. 


비록 알게 된 지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어떤 인생을 살아왔으며, 그런 삶 속에서 하필 왜 시를 쓸 마음을 먹게 되었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힘든 투병 생활을 끝낸 어느 날, 이렇게 살다가는 세상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정신없이 살아온 길을 글로 쓴 것이 작년에 출간된 첫 번째 시집과 수필집이다. 그러고 나서 글 쓰는 일을 그만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한 추진력으로 시 창작에 몰두해서 이번에 두 번째 시집인 [사랑 참 우습죠]를 출간했다. 


엄 시인이 이렇게 창작에 몰두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시인이 처한 현실이었으리라. 지난 슬픔과 아쉬운, 그리고 여기저기 어긋났던 삶의 회한을 원망할 틈이 없었다. 그 틈에서 자신이 느낀 세계를 그려냄과 동시에, 앞으로 펼쳐질 시인의 삶을 자신의 힘으로 개척하기에도 바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어떤 시는 안타까움을 그리고 있지만, 어떤 시는 시인 자신이 자기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바로 이런 까닭이다. 동시에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글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시집의 곳곳에서 눈에 보인다.


 

얼어붙은 마음들 녹아 흐르면

이별이 추억되고 만남이 이별 되는

어느 계절의 사이에서 보내고 맞이할 이야기들

          [모두가 떠나간 길목에서] 중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인연은 마치 계절이 바뀌는 것과 마찬가지이리라. 엄 시인은 외로움을 견디는 것에 익숙한 여인이다. 인연을 맞이하고, 또 보내는 것에 익숙한 여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시인은 많은 그리움을 보냈고, 새로운 그리움을 기다리며 살아왔다. 그래서 모두가 떠난 길목에 서 있어도 그저 무덤덤하다. 시가 흘러나온다. 시인에게 시는 화려한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문학적 가치를 높인 그런 글이 아니라, 그냥 시인의 삶 그 자체이다. 



시린 입술 활짝 피워 내진 못해도

입꼬리 닿는 만큼 웃으며 살자

너와 나의 가을은 충분히 슬펐으니

너와 나의 겨울은 행복하게 지내자

          [가을 애(愛)] 중에서 


시인의 삶에는 슬프고 힘든 일만 있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엄 시인은 그 끄트머리 어디엔가 존재하는 희망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욕망은 말이 욕망이지, 허황한 욕심은 결코 아니다. 그저 소박한 바람일 뿐이다. 시인의 시에는 이처럼 앞으로의 희망도 그려지고 있다. 


모든 시인이 그러하듯이 자기의 시상이나 창작욕을 그려낼 때, 여러 가지 고민을 하기 마련이다. 어떻게 그려야 자기의 마음을 읽는 사람에게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은 시인의 의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 시인은 그다지 고민을 오래 하지 않는다. 떠올리는 생애 자체가 한편의 긴 연작시이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그 시의 일부를 드러내기만 해도 훌륭한 시가 되었다. 첫 번째 시집부터 엄 시인의 시는 그랬다. 내가 엄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절망에 포식당하지 않으려, 잠식되지 않으려

나는 일어서야만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

          [절망에 잠식당하지 않기] 중에서 


시인의 시는 시인의 생애라고 했다. 그래서 엄 시인은 항상 시를 통하여 지나온 생을 돌아본다. 그러면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사랑이 우습다]는 말에서의 사랑은 일반적인 남녀 간의 사랑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엄 시인에게 사랑의 대상은 자신의 삶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시인에게 있어서 사랑하는 행위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지난 삶이 안타까움이 있었다면, 앞으로의 삶을 더욱 사랑하면 된다. 


엄 시인은 지금 한창 공부에 푹 빠져 지낸다. 시집을 두 권이나 출간하고도 창작에 대한 갈망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무작정 시를 지었다고 하면, 앞으로는 좀 더 자기의 시상을 더 잘 그려낼 수 있게 되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 중이다. 아마도 그런 공부의 길은 오래 지속될 것이다. 하루 이틀 안에 끝나는 공부는 아니리라. 그래도 시인은 중도에 그만두지 않고 그 길을 걸어서, 언젠가는 그 끝에 도달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엄윤정 시인의 앞길에 행복이 가득하기를 빌면서, 짧게나마 시인의 소개를 끝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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