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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흔 Oct 12. 2023

벚나무도 생각이 있겠지

앙상해진 가지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뭇잎을 떨궈버린 벚나무를 보았다. 어느새 계절이 이렇게 되었나 보다. 어떤 나무 못지않게 화려한 봄을 장식했던 기억도 겨우 두 계절을 넘기지 못했다. 잠시 다르게 생각해 본다. 아마 봄 한 철 꽃을 피우기 위해 다른 나무보다는 준비 기간이 긴 것은 아니었을까? 사실 벚나무처럼 나의 인식 속에서 변화무쌍한 나무도 그리 많지 않다. 지금의 잎까지 모두 떨군 나무의 모습에서 도무지 봄날의 그 모습을 유추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이 나무가 정말 봄날의 그 나무인지 연상이 되지 않는다. 꽃잎을 다 떨구고 나뭇잎만 무성할 때의 모습은 또 어떤가? 그 모습도 역시 봄과 가을의 모습과 전혀 다르다. 어지간한 나무라면 꽃은 떨어져도, 나뭇잎은 누렇게 변하면서까지 늦가을을 장식했을 것이지만 벚나무는 다르다. 진녹색의 나뭇잎 사이로 누런 새치처럼 잠시 잎의 물이 빠지는 듯싶다 보면, 어느새 잎을 죄다 땅바닥에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는다. 아침 출근길의 벚나무가 지금까지 무심하게 지나쳤던 계절의 변화를 갑작스레 떠올리게 했다. 이제는 그나마 땅바닥을 뒹굴던 마지막 잎까지도 바람에 흩어져서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아마도 내년 봄이 되어야만 다시 눈앞에 자태를 드러낼 것이다. 우연히 바라본 벚나무가 때 이르게 내년 봄을 기다리게 했다. 




이 글은 단행본으로 출간된 <벚나무도 생각이 있겠지>의 표제작으로 실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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