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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흔 May 05. 2024

<뻐꾸기 날리다>를 읽고

김우남의 단편 소설집을 읽었다.

글이 잘 써지지 않기에 잠시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소설책을 읽기 시작했다. 장편과 단편을 각 한 권씩 대출했는데, 장편은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인 <모던 하트>이고, 단편은 김우남 작가의 <뻐꾸기 날리다>이다. 두 권 중 단편집을 먼저 읽기 시작했다.


김우남 작가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실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현진건 문학상 본심에 오르기도 하고, 직지 소설 문학상 우수상을, 그리고 함안군 중편 소설 공모전에서 대상 없는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하는 등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뻐꾸기 날리다>에는 표제작을 비롯하여 총 일곱 편의 단편과 중편 소설이 수록되었는데, 각각 소설이 주는 인상은 미묘하게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빨래하는 여자>에서 자연빌라 302호 사내는 아내와 둘이 살고 있다. 그냥 평범한 집안처럼 보이지만, 트라우마와 강박이 묘하게 결합한 정신세계를 헤매고 있는 아내를 볼 때마다 사내는 가슴이 아프다. 어떻게 보면 독자의 바로 이웃에서도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그저 담담한 마음으로 그리고 있다. 아내가 혼자 있는 시간, 젊은 냉장고 수리 기사가 집안에 들어왔다. 사실 이 정도는 사건이 발생할 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일상적이지 않은가? 낮에 가전제품을 수리하러 방문하는 사람을 포함해서 검침원이나 뭐 그런 사람들이 집에 방문할 수도 있다. 그런 설정이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뜻이다. 물론 이야기의 전개도 그 현실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모르는 사람에 의한 성폭행이라든지, 아니면 그저 엉겁결이 자행된 성추행이라든지 얼마든지 현실에서 가능하다고 말하는 이 사회를 작가는 한편으로 증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 그런 행위들을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치부해야 하는가? 피해자는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하고, 트라우마를 걷어내기 위한 행위는 특정한 행동에 대한 강박으로 나타나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회다. 아내에 대한 사랑도 그런 트라우마와 강박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렇게 사내는 아내를 위해서 요양기관을 알아보는 장면에서 소설은 끝난다.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는 점에서 작가도 독자를 그런 결말로 이끌기까지는 긴 시간을 고민했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입춘>의 주인공은 명목상의 화자인 ‘나’이지만 실상은 복잡한 가족 관계로 얽힌 삶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 예로부터 생모를 여의고 배다른 형제들과 자란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고뇌를 끌어안고 살아야 했다. 소설에서는 자식이 장성할 때까지, 그리고 그 새어머니가 세상을 뜰 때까지 혼자 간직하고 있던 서러움이 진심인지 가식인지도 모를 장례 행사를 통해서 얽히고설킨 갈등을 결국 표면 위로 떠올리고 만다. 이 소설 또한 흔하지 않은 소재처럼 보이면서도,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근대에 이르면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보여주고 있다. 겉으로는 드러내지 못했던 알 수 없는 분노가 역설적으로 성대하게 장례식을 치르는 효심의 탈을 쓰고 분출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읽는 사람은 알 수 없는 묘한 씁쓸함을 넘어선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렇게 분노였는지도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온 인생에서 비로소 벗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새로운 인생을 갈구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제목인 입춘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이, 그것도 두 번씩이나 있는 쌍춘년에 화자의 할머니를 보낸 사건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평범한 듯 보이는 ‘쌍춘년’ 한 단어에서 이처럼 가슴 절절한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있었다.  

    

그 이외의 <뻐꾸기 날리다>나 <묵언>, <아줌마>와 같은 소설도 역시 누구든지 겪을 것만 같은 일상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물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나 <서리 내린 들에 홀로 핀 꽃, 노아>는 앞의 이야기들과는 약간 다른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그래도 작가가 자기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화법은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혀 어려울 필요가 없는 표현과 상황 설정 덕분에 읽는 사람을 손쉽게 작가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만든다. 이런 간단한 사실 만으로도 작가 소설이 갖는 몰입감은 다른 소설에 비해서 탁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에 실린 작품을 모두 소개하지는 못하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김우남이라는 작가의 소설에 흥미를 느끼게 하기에는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요즘 보기 힘든 작품을 접하게 되어 즐거운 마음이었다.      


2018년 ㈜문예출판사에서 1판이 인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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