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그래도 시작
대학을 막 졸업한 사회 초년병이었던 우리는 딱히 모아둔 돈도 없이 불같은 연애의 종착역인 결혼에 다다랐다.
그렇게 경제적 여력 없이 열정만을 토대 삼아 시작한 결혼에서 처음부터 우리만의 아늑한 둥지를 틀 수 있는 방법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자연스럽게 시집으로 들어가 사는 길을 택했던 우리.
처음과 다르게 서서히 시집살이와 며느리살이가 혼재된 신혼은 점차 밝고 생기 넘쳤던 기운을 잃어가며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어려운 시간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때의 경험으로 ‘공간의 독립이 없이 한 가정으로서 진정한 독립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라는 교훈을 얻었지만, 다시 그 시절로 되돌아간다 한들 우리만의 힘으로 독립해서 출발할 수 있는 나만의 둥지를 마련할 수 있는 뾰족한 수는 없어 보인다.
타인이 만나 생활방식을 맞추고 서로를 이해하며 시작하는 둘만의 결혼 생활이 이인삼각 달리기 같다면 시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사는 것은 한층 업그레이드된 삼인 사각 달리기를 하게 된 것과 비슷했다.
결혼 후 시어머니를 모시고 2년 계약이 종료되는 전셋집 이사를 몇 번이나 거치고 나니 이삿짐 싸고 풀기에도 지친 우리는 자연스럽게 내 집 마련이란 목표에 매달리게 되었다.
그때 내 집 마련을 우선에 두고 결혼을 결심했다면 우리의 결혼 시기는 한참 늦어지거나 어쩌면 아예 결혼이라는 지점에 이르지 못했을지 모른다. 충돌과 미흡함의 연속을 안고 살아갈지언정 어머니의 둥지라는 시작마저 없었더라면 말이다. 하지만 지금 누구에게 어쨌거나 결혼부터 하고 보세요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알아서 그런 미친(?) 결정을 쉽게 하지도 않는 세상이다.
시집살이와 내 집 마련의 과업에 몰두하던 그 시기 결혼하면 아이 하나쯤은 낳자던 막연한 계획은 그렇게 점점 밀리고 밀려 작아져 가고 있었다.
글 · 그림 반디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