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둥지가 먼저
작년 겨울 환기를 시키려 베란다 창문을 열어보니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없던 제법 커다란 까치둥지가 에어컨 실외기 옆에 생겨났다.
에어컨 실외기 옆 좁은 앵글 한 공간이 까치들에겐 아늑한 장소로 여겨졌는지 들쑥날쑥한 길이의 나뭇가지들이 얼기설기 얽혀 실외기 높이만큼 차올라 있었다.
가끔씩 후다닥 베란다 난간에 날아 앉아 이리저리 사방을 살피던 한 녀석이 우리 집에 둥지를 튼 것이 틀림없었다.
며칠 후, 까치의 공사가 어떻게 진행되어 가고 있는지 궁금해서 다시 베란다 문을 열어보니 무슨 이유에서인지 둥지는 반쯤 지어가던 그 모습 그대로 버려진 것 같았다.
혹시나 열심히 모아둔 재료들을 재활용하거나 하지 않을까 해서 잔가지들을 그냥 놔둬봤지만 마치 사람 눈에 띄어 부정이라도 탄 취급을 받는 나뭇가지들은 그대로였고 그 후, 세일 시즌에 미리 예약한 새 에어컨이 도착하면서 둥지는 에어컨 설치기사님의 손으로 완벽하고 깔끔하게 우리 집 베란다에서 철거되었다.
새들은 둥지가 완성되기 전에 알을 낳지 않는다. 이 영특한 까치만 보아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둥지를 틀고 가정을 이루지 않는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까치는 우리 집 베란다 보다 더 안락한 곳을 택해 둥지를 틀고 그곳에서 편안히 알을 품었을 것이다. 어쩌면 어디에도 마땅한 둥지를 짓는데 실패했다면 아예 알을 품는 일은 무산되었을지도 모른다.
결혼 후 처음엔 우리도 막연하게 이런 순리대로 아이 생각을 깊게 하지 않았다.
글 · 그림 반디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