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을 태우며

시간을 태우며 가을 불멍

by 정루시아

가을이다. 싸늘하다. 아침에 일어나 이층 안방에서 일층 정원을 내려다보면 아침 서리가 반짝인다. 노란 잔디밭에 살포시 내려앉은 서리는 어느 하늘을 떠다니다 마당에 내려왔을까? 밤새 살포시 앉아 휴식을 취하곤 오늘 하루 어느 하늘로 다시 날아오를까? 아침 햇볕과 함께 잠시 얼굴을 보이고 사라지는 서리. 반갑지만 차다.


서리와 함께 옆집 붉은 단풍잎은 날마다 우리 집 노란 잔디 위로 떨어진다. 옆집 이층 집 높이 단풍나무. 2년 전 자리를 틀고는 해를 넘겨 씨와 낙엽을 사방에 뿌리고 있는 중이다. 단풍잎은 봄엔 아기 손 같은 연초록 잎으로 자라느라 정신없고, 한여름엔 소낙비를 견디느라 초록 초록하고, 가을엔 새색시의 연지처럼 치장하느라 바쁘다. 사람들은 이래서 단풍나무를 좋아하는가 보다. 늦가을 입김 같은 바람에도 호로록 낙엽이 지고 지나가던 참새 날갯짓에도 잎사귀가 스르르 날리니 내 눈이 호강이다. 잎뿐인가? 바람 따라 바람개비 같은 단풍나무 씨앗들은 사방으로 날린다. 빙글 뱅글 날다 떨어지는 씨앗은 봄이면 사방에 새순을 보여 봄, 여름 내내 뽑아도 어딘가에 살아있다. 참 야무지다. 단풍나무 낙엽을 보며 이제 겨울이 오겠구나 싶다. 색으로 느끼는 계절은 마음속에 긴 여운을 남긴다.


작년 가을 옆집 단풍나무 나뭇잎이 처음 우리 집 마당에 소복이 떨어졌을 때 옆집 부부는 "이걸 어쩌죠? 너무 낙엽이 많이 져서 저희가 담을 넘어 주울 수도 없고..." 하며 멋쩍어했었다. 우리 부부가 웃으며 "아니 뭘요. 내버려 두세요. 저희 집 배롱나무 나뭇잎도 그 집 마당에 수북이 떨어지는걸요. 괜찮습니다.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했더랬다. 낙엽엔 경계가 없다. 잎은 바람 부는 대로 날려질 뿐이다. 나무의 자리가 잎의 경계를 규정할 수 없다. 뱉어진 말처럼 말이다.


정말 소복이 낙엽이 쌓인다. 처음 떨어진 낙엽은 아기 손바닥 같이 윤기 있고 모양도 반듯하다. 그러나 일주일 지나면 잎은 돌돌 말려 밟기라도 하면 스르르 부서진다. 노란 잔디 위에 떨어진 나뭇잎은 그 잎이 어떤 형태이던 시간이 흐르면 정신 사납다. 원래 떨어진 것은 질서가 없다. 질서가 없으니 작은 바람에도 날리고 온갖 귀퉁이마다 소복이 쌓여 좋을 수가 없다. 옆집 부부는 자주 단풍잎을 줍는다. 아기자기한 마당에 두 분이 쪼그려 앉아 나뭇잎을 줍는다. 정작 남편은 즐겁게 인사하지만 나뭇잎을 줍지 않는다. 남편의 지론은 낙엽은 밟으면 알아서 부서지고 이리저리 바람에 쓸려 다니니 굳이 거둬들이지 않아도 우리 눈앞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남편의 낙엽 지론은 맞는 말이고 성질 급한 사람 마음을 쉬이 넘고 이기는 말이다.


일주일 전 플라스틱 낙엽 긁게를 샀다. 남편 친구들이 놀러 온다기에 낙엽을 긁어 마당을 정리하면 어떨까 하니 남편은 그냥 웃는다. 남편이 내 눈을 피했다. 뭐 어려울까 싶어 내가 새로 산 도구를 번쩍 들어 낙엽을 모았다. 성질 급한 사람 마음에 손이 고생이다. 느긋한 남편의 마음을 난 못 넘어선다. 낙엽이 내게 알려준 사실이다.


잔디를 플라스틱 갈퀴로 벅벅 긁으니 가려운 머리를 긁듯 내 기분이 좋다. 네댓 번 긁으니 갈퀴 안에 낙엽들이 조롱조롱 모여 재미가 쏠쏠하다. 마당 반을 긁으니 팔뚝이 뻐근하다. 초록색 플라스틱 긁게가 생각보다 좋았다. 갈퀴 안에 낙엽들이 수북이 쌓이니 마치 밥솥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밥을 가득해놓고 뚜껑을 열었을 때처럼 맘이 좋다. 태워버릴 낙엽을 긁으며 모락모락 김이나는 흰밥을 생각하다니 참 어이없다. 무엇에 쓰는 것도 아닌 낙엽을 긁고 달달한 밥을 생각하다니.....


낙엽을 긁어 마당 한편에 있던 불멍 화로대에 쌓아놓고 불을 지폈다. 처음 집을 짓고 화로대를 사자 하니 남편이 그런 걸 왜 사냐며 쓸데없어했다. 내가 불멍을 하면 좋겠다 하니 남편이 한 이주 인터넷에서 찾아 널찍한 원형 화로대를 샀다. 남편은 "대체 얼마나 태울 것이며, 무얼 태울 수 있냐"며 구시렁 대더니 봄, 가을 선선한 저녁 불멍을 하곤 참 좋다 한다. 백날 말해도 한번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불멍이 그렇다. 뭘 얼마나 하겠어 하지만 한번 해보면 또 하고 싶고 하다 보면 그냥 좋아 멍하니 하게 되는 게 불멍이다. 불을 보며 멍하게 있고 싶은 인간의 마음이 나이, 직업, 성별을 가리겠는가? 긁어모은 나뭇잎을 태우자 하니 남편이 장작 네댓 개를 가져왔다. 낙엽 양이 너무 작아 불 피우는 수고도 안 나올 참이라나!


"여보 잠시 기다려봐. 퇴고한 원고를 태우자. 여기서 오늘 반만 태우자. 어때?"

"그냥 장작만 태우고 들어가지. 뭘 오래 태워?"

"아니 원고 양이 많아서 두세 번 나눠 태워야지. 한 번은 안돼 기다려요. 내 가져올게"

"그러던지. 그럼."


이층 서재에 수북이 쌓아놓았던 원고[나는 내 딸이 이기적으로 살기 바란다]를 부리나케 가져왔다. 묵직한 무게만큼 긴 시간이 숨어 있지만 한 줌의 재로, 불꽃으로 보내고 싶었다. 아침에 내리는 서리처럼 내 시간과 마음이 어느 집 안마당에 사뿐히 내려앉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원고를 낙엽과 태웠다. 작은 글씨들이, 빨간 볼펜으로 이곳저곳 수정하고 체크한 표시들이, 한 단락을 통으로 날린다는 표시들이, 가끔 마음이 아파 흘렸던 눈물자국들이 낙엽과 함께 타올랐다. 한 장씩 구겨 넣던 종이들을 열두어 장씩 뭉쳐 돌돌 말아 비틀어 넣었더니 남편이 잘 타지 않는다며 구박을 했다. 종이인데 안탈 리가 없지 않은가? 가끔 외면하고 싶은 상황과 말, 기억들을 냅다 던지듯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을 때 머리를 흔들듯 원고 오십여 장을 불속에 던지니 남편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날 바라봤다.


"여보 불 다 꺼져. 왜 그래? 연기 나는 것 봐. 불도 숨을 쉬어야지. 그냥 던지면 어떻게?"

"안 꺼져. 미리 넣어놓은 장작이 있잖아. 장작은 천천히 타잖아. 걱정 마. 불씨가 있다는 걸 알고 던진 거야. 십여 장 구겨 넣는 것도 손이 아프네. 당신이야 그냥 종이지만 난 이걸 죽도록 보고 또 봤던 원고라서 그냥 빨리 타버리게 하고 싶네. 그런 맘에 그냥 던졌어."

"그래? 그래도 그렇게 뭉터기로 넣으면 불 꺼져. 봐 연기 나는 것 봐."


남편은 두꺼운 장갑을 끼고 부지깽이로 뭉터기 종이를 사선으로 들어 올리며 종이에 불을 붙였다. 장작의 불꽃이 아래쪽에서 올라오며 연기를 삼켰다. 불이 다시 피어올랐다. 한참 불꽃을 보며 올 한 해의 시간이 불꽃처럼 잘 타들어 갔구나 했다. 한여름 땀을 뚝뚝 흘리며 원고를 부여잡고 있던 시간이, 한여름 영양분을 한껏 빨아들이며 자랐던 단풍잎의 추억과 함께 타들어갔다.


지나간 것은 경계 없이 떨어지는 낙엽처럼 속절없다. 뜨겁게 타오르는 낙엽과 원고의 불꽃도 속절없고 나와 남편의 늦가을 불멍도 속절없다. 찬 서리처럼, 뜨거운 불꽃처럼 잡을 수 없는 시간들을, 사건들을, 말들을 작은 마당에 앉아 떠나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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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를 태우며, 시간을 태우며..... 참 잘 탄다


#나는 내 딸이 이기적으로 살기 바란다 #불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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