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시작됐다. 토. 일. 월. 화. 수 5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일이 많으면 한없이 길고 휴식의 기간이면 닷새라도 짧다. 누구에게나 같은 날이지만 누구에게나 다른 날들이다. 이번 명절은 내겐 긴 명절이다. 토요일 남편과 장을 봤다. 동태전, 해물 동그랑땡, 인삼, 연근, 튀김 새우, 튀김가루, 부침가루, 계란 한 판 등 부치고 튀길 거리만 샀다. 아이들이 있을 땐 갈비에 꼬지도 하고 대구전에 새우 부침, 야채튀김, 마 튀김도 했으니 가짓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내겐 긴 명절이다. 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없어서다.
남편은 일요일에 당직을 하니 튀김이던 전이던 나 혼자 할 수밖에 없다. 집에 없는 사람이 무얼 할 수 있겠는가? 대부분 설이던 추석이던 남편은 응급실 당직을 하니 명절 음식은 아이들과 함께 했다. 딸이나 아들이나 "엄마 조금만 해요" 했지만 일 년에 두 번 하는 냉동식품 만들기를 조금만 할 수 있나? 한번 할 때 넉넉히 하는 게 노동 절약적 측면에서 탁월한 선택이다. 누가 그리 하라 요구해서가 아니다. 결혼해 냉동식품이 많지 않을 때부터 지금껏 해온 나만의 명절 전 부엌 전략이다. 냉동실에 들어간 전과 튀김들은 약 3-4개월 정도 반찬이 부실할 때 냉동실에서 꺼내 프라이팬에 데워 먹거나 전자레인지에 돌려먹었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전과 튀김을 에어 프라이기에 넣어 10분 정도 돌리니 세상 그리 맛있을 수가 없다. 기름이 쏙 빠진 바싹한 전과 튀김은 정말 맛나다.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샐러드에 넣어 먹으면 고급 요리 저리 가라다. 그러니 이번 설에 준비한 음식은 나를 위한 나의 일용할 양식일 뿐이다.
명절 음식은 언제나 아이들과 함께 했었다. 아들은 부침개 넣을 큰 그릇을 꺼내놓고 식탁에 신문지나 키친타월을 펴곤 널따란 전기 프라이팬을 세팅했다. 그리곤 의자에 떡 하니 앉아 명태포, 대구포에 밀가루를 묻혔다. 딸은 계란을 풀고 기름을 미리 꺼내놓고는 내가 계란옷을 입혀 프라이팬에 올려놓으면 전을 뒤집으며 살랑살랑 어깨 춤을 췄다. 춤도 추지 않는 딸이 서서 긴 나무젓가락을 들고 움직이는 모습은 예쁘기 그지없었다. 우리 셋이 지글거리는 기름 소리를 들으며 익어가는 전을 하나씩 먹는 맛은 기가 막히다. 별거 없는 음식 준비를 셋이 함께 하면 시간이 후딱 간다. 부침개를 끝내고 내가 튀김을 할 때 아들은 전기 프라이팬을 치우고 식탁을 정리하고 딸은 튀김 거리를 정리해줬다. 뜨거운 기름 앞에서 혼자 서서 튀김을 하면 아들과 딸이 번갈아 와서 구경하다 새우튀김을, 연근 튀김을 한입씩 먹으며 맛나다 할 땐 뒤꿈치가 아파도 행복했다.
설이던 추석이던 요리가 힘들지 않은 것은 아이들과 웃고 떠들며 함께 했기 때문이다. 가끔 남편이 집에 있던 때는 더 시끄럽고 더 요란한 웃음소리가 나니 힘은 들어도 즐거운 명절 음식 준비이다. 그런데 이번 설은 조용했다. 일요일 오전 아침 일찍 남편이 출근한 후 튀김 거리를 준비해 종일 튀김을 했다. 허리가 아팠다. 함께 웃을 아이들이 없으니 더 아팠다. 월요일 오전엔 전을 부쳤다. 동태전과 동그랑땡만 했다. 오후엔 시댁에서 먹을 저녁장을 봐서 올라가야 하니 말이다. 남편이 전 부치는 식탁에 앉아 하품을 했다. 피곤이 가시지 않은 남편과 동태전을 부쳐 한입씩 나눠 먹고 서로 배시시 웃었다. 남편이 "조금만 하지 뭘 이렇게 많이 했어?" 하기에 "딸을 줘야지. 지난 추석 전과 튀김을 엄청 맛나게 먹었다고 하더라고" 하니 남편은 "그래? 그럼 넉넉히 줘야겠네" 했다. 늘 시댁에 싸들고 갔던 전과 튀김이었는데 이젠 딸까지 챙겨야 하니... 한동안은 넉넉한 냉동식품 만들기를 할 듯하다.
가사노동은 보이는 노동이 아니다. 금전이 오가는 노동도 아니다. 그러나 그 노동의 강도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노동의 주도성을 확보하고 노동의 의미를 강화하면 노동의 강도는 달라진다. 가사노동은 특히 그렇다. 시부모님이 하라 해서, 남편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 할 때의 가사일은 강도가 강화되고 회피하고 싶은 노동이 된다. 결혼해 늘 음식을 장만해 싸가지고 갔지만 '내가 먹을 냉동식품 만들기에 조금 더 보태 한 것이다'라는 생각이 나의 노동 강도를 낮추었고 아이들과 함께 했기에 놀이 같은 노동이었다. 앞으로 나의 가사노동이 바뀌어 갈 것임을 느꼈다. 나의 부엌에서 웃으며 했던 냉동식품 만들기도 아이들이 없는 부엌환경이기에 노동강도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새우는 늘 많이 튀겨도 제일 먼저 없어지는 튀김이다
작년 추석 즈음 인삼이 싸다고 하기에 많이 튀겼는데 이번엔 더 많이 튀겼다
연근을 소금과 식초 넣고 살짝 데친 후 튀기니 아삭하고 맛나다
남편이 지나가듯 "튀김기계를 살까?" 했다. 기가차다. 더 튀기라는 말인가? 너무 맛난 새우튀김 때문에 고민해 봐야 겠지만 튀김기계는 살 수 없다. 아이들이 없어 재미없는 내동식품 만들기를 언제 그만두어야 하는지 고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