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함과 자유로움
사실 숙이는 주미가 부러웠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편안하게 대학을 졸업하고, 부모님이 골라준 무던한 남편과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아파트 평수를 넓혀야 할 때도 양가에서 모두 도왔고, 남편은 성실하며 아이들도 모두 똑 부러지게 공부해 취업까지 마쳤다. 뭐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친구였다. 모임에서도 주미는 늘 조용히 얘기를 듣는 쪽이었고, 자신의 의견을 잘 드러내지 않는 아이였다. 그런데 산티아고 순례길 이후의 주미는 더 이상 예전의 주미가 아니었다.
주미와 수연이 산티아고를 다녀온 후 처음으로 만난 모임에서, 숙이는 주미 옆에 앉았다.
주미는 밝게 웃으며 숙이의 손을 잡고 조용히 말했다.
"숙이야, 잘 지냈어? 셋째는 어때? 요즘은 괜찮지? 내가 철망에 십자가 꽂고 사진 찍어 보냈었잖아. 그때 네 딸 건강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 아직도 고3이니 네 맘이 얼마나 바쁘겠니."
주미의 말에 수연이 곁에서 말을 보탰다.
"맞아, 맞아. 그때 주미가 네 딸 위해 기도한다고 해서 나도 십자가 하나 더 철망에 걸었어. 우리 잘했지?"
숙이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고마워, 친구들. 친구밖에 없다. 걷느라 너희들도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그 긴 길을 걸었니? 정말 대단해."
주미가 담담하게 말했다.
"나중에 기회 되면 우리 다 같이 걷자. 산티아고 말고도 우리나라에도 좋은 길 많아. 맛난 것도 많이 먹고. 떠나야 보이는 게 있더라. 제자리에선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게 있거든."
"맞아, 맞아! 너 말 참 잘했다."
수연이 생긋 웃으며 주미의 말을 받았다. 주미는 마시던 차를 내려놓으며 수연을 보며 말을 이었다.
"뭘~. 난 너 아니었으면 식당에서 주문도 못 해서 굶어 죽었을 거야."
"굶어 죽긴. 20일 지나서는 네가 주문도 하고 내 것도 사다 줬잖아."
그날 숙이는 친구들이 있어 좋았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서 말이다.
모두들 만나면 변한 듯 변하지 않았다. 말투는 변하지 않았지만 삶의 방식은 변해가고 있었다. 오직 숙이만이 여전히 삶의 굴레에 틀어박혀 헤어나오지 못하는 듯 느껴졌다.
산티아고를 다녀온 주미는 한층 자유로워졌고, 수연도 더 단단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