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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치명 Mar 23. 2021

성스럽지 못한

결혼1

 아, 물론 결혼이 아니라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편협한 시선이 성스럽지 못하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유독 내 주변에는 결혼 생활로 힘들어 하는 친구들이 많기 때문이다.


 S는 이혼을 했다. 지금 혼자 일을 하면서 아이 둘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전 남편과 시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S의 하소연을 들으러 S네 집에 종종 갔다. 물론 둘이 이야기를 하는 시간보다 아이들과 놀아 주는 시간이 대부분을 차지 지만. 지난 설에는 아이들이 미스 트롯 데스 매치를 하자고 해서 진이 빠졌다. 나는 열 번 넘게 노래를 불렀고 심사를 받았다. 결과는 매번 똑같았다. 그래, 이모가 희생해서 네가  웃을 수 있다면!


 그런데 S는 양육비를 단 한 번도 받지 못했다. 전 남편은 S에게 무작정 이해를 바랐다. 노력하고 있다면서. S는 오롯이 자기 힘으로 아이들을 키울 생각이며 아이들이 원한다면 자신의 성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사실 S는 지독한 가정 폭력에 시달렸다. 아이들을 위해서 가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S는 가끔 나에게 한탄을 했다.

 "지금 내가 너라면 무슨 일이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결혼 하지마."


 맞벌이를 하는 또 다른 친구 H도 만날 때마다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연애만 하고 혼자 살아. 나는 직장에서 퇴근하면 집으로 또 출근하는 것 같아. 집안일이랑 애들 씻기고 재우는 거 다 내 몫이야. 나는 내 딸이 결혼 안 했으면 좋겠어."


 사실 나는 결혼보다 출산에 대한 욕구가 컸다. 하지만 나를 돌아보며 깨닫게 되었다. 나도 내가 감당이 안 되는데 내가 누구를 키우고 가르쳐.  


 서른 중반이 되면서 결혼에 대한 압박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만난 지도 교수가 결혼도 못하는 제자라고 나를 구박했다. 나는 결혼 안 해요, 라고 말했다. 지도 교수가 핀잔을 줬다. "너는 못하는 거야." 나는 지도 교수한테 따졌다. "G 언니한테도 결혼 못했다고 하세요?" 지도 교수는 아주 침착했다. "야, G는 돈이 많으니까 결혼을 안 하는 거야. 너는 돈이 없으니까 결혼 못 한거고." 툭하면 부인과 별거하고 바람 피우는 너를 보니까 결혼 안 하는 게 낫게더라, 고 말하고 싶었지만 예의는 끝까지 차렸다.


 나는 언니가 독신주의자인 줄 알았다. 대학생 때 결혼은 합법적으로 섹스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제도야, 라고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자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마다 얘 왜 이러지, 라고 생각을 했다.


 언니는 고향에 내려갔고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친분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언니를 보고 가서는 선을 제안했다. 언니는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짧은 연애 후 결혼을 했다. 그리고 십 년 째 행복하면서도 안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언니는 명절 연휴 시작 전에 시댁에 가서 연휴 마지막 날에 돌아 온다. 그러고는 나한테 전화를 해서 시댁과 형부 욕을 퍼부어 대고는 한다. SBR! "나보고 첫째가 아들 아니었으면 둘째, 셋째도 낳아야 됐을 거래!"


 나는 얼마 전 선을 봤다. 주선자는 계속 상대의 집안 이야기를 강조했다. "부모님이 약사고 작은 아버지가 치과의사래. 이런 집안에 시집 가야 돼." 나는 의아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상대가 더 중요하지. 그런데 주선자는 나에게 상대의 정보를 전혀 알려 주지 않았다.

 "일단 나와!"


 나는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레스토랑에서 상대의 나이와 직업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주선자가 밑도 끝도 없이 나에게 웬만하면 시집을 가라고 했다. 내가... 왜? 결혼이 그렇게 쉬운 것이었으면 벌써 했겠지.


 주선자는 자리를 세 번 정도 더 마련했다. 나는 완곡하게 거절했지만 일방적인 통보라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이번이 마지막이다! 나는 식사 값을 계산하고 주선자한테 이야기했다.

 "언니 그분이랑 인연이 아닌 것 같아요."

 "나이 더 들기 전에 결혼해야지."

 "그분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같이 있으면 재미가 너무 없어요."

"다 갖춘 사람은 없어. 따지면 안 돼."

 도대체 내가 뭘 따진 거지? 그리고 나는 따지면 안 되냐.

 "얼마 전에 가게 폐업하셨다면서요. 저보다는 상황이 좋은 분을 만나셔야 할 것 같아요."

 "힘든 사람끼리 의지해야지."

 "둘 다 골로 가요."

 "너는 왜 좋아해 보려고 노력도 안해? 여자는 30대일 때 무조건 결혼해야 돼."

 좋아하려고 노력씩이나 해야 되나. 나는 짜증이 났다.

 "여튼 저는아니에요."

 주선자는 그날 밤 나한테 장문의 톡을 보냈다. 결과가 너무 실망스러워. 나는 결심했다. 다시는 선을 보지 않으리.


 물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인생의 반을 혼자 지낸 나는 누구와 살 자신이 없다. 물론 상황이 바뀌면 생각도 바뀌겠지, 생각이 바뀌상황도 바뀌거나. 그런데 누가 됐던 결혼을 하든 안하든 간섭은 제발 안 했으면 좋겠다. 나의 인생이고 나의 선택이니까. 결혼을 못해도 내가 알아서 살 게요.


 오늘 오랜만에 남사친 L과 통화를 했다. 나는 남사친에게 제안을 했다.

 "50살이 되었을 때도 미혼이면 같이 살래?"

 남사친이 잠깐 고민을 하더니 대답했다.

 "50은 좀 그렇고 70은 어때?"

 나는 깔깔, 대며 웃었다.

 "새꺄, 차라리 싫다고 해. 우리 둘 다 살아있을 거라는 보장이 어디 있어."

 그래, 나는 이렇게 실없이 혼자 살아도 좋을 것 같다. 나는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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