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되고 싶은 것
내가 써왔던 짧은 글들을 통해 밝혀왔듯, 나는 현재 무직이며 전공을 바꿔 새로운 분야의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 마지막 관문인 시험을 앞두고 있다. 어느 날은 불현듯 '내가 이 나이에 이토록 오랜 시간 꾸준히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니' 신기할 지경이다.
[멋지게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어요]라는 글을 통해서 내가 학부를 졸업하고 선택한 분야에서 10여 년을 일한 뒤, 과감하게 전공을 바꾸고 새로운 길로 들어선, 나의 ‘멈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면, 내가 새로이 ‘출발’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어쩌면 정말 단순했다. 10여 년 간 직장생활을 하며 만난 사람 중, 가장 멘토라고 여겨왔던 직장 선배가 내가 지금 선택한 일을 이야기하며 “이 일, 너의 적성에 잘 맞을 것 같다.”라는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물론 그 설명 뒤에는 나의 무엇이든 명확한 것을 좋아하는 특성이라던가, 하나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지나치게 몰입해 버리는 특성, 사람들에게 적당히 신뢰를 줄 수 있는 모습 등등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주기는 했으나, 그 당시 나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 이유들이 그리 납득이 되거나 솔깃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내가 10여 년을 몸담았던 분야에서 나는 더 이상 어떠한 희망을 발견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왔다. 어쩌면 그 일들을 해내면서 늘 비좁은 골목과 골목사이를 억지로 헤쳐나가며 우연히 만나는 장애물들을 꾸역꾸역 넘어가는 듯 그 시간들을 보내왔고, 어쩌다 높은 층계를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기회들도 생겼으나, 결국 그 높은 층계에 어느 정도 수준에 다다랐을 때 아래를 내려다보니 오히려 까만 암흑천지만 가득해 보이는 느낌이었다. 이것만이 나의 길이라 생각하고 달려왔으나 더 이상의 좁은 문도, 안전하게 내려갈 사다리도 보이지는 않았다. 한마디로 그 세계에서는 더 이상 내게 주는 희망이 없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는데, 그 순간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 떠오르는 말 한마디는 그저 "이 일, 너의 적성에 잘 맞을 것 같다."라는 그 말, 그 한마디 말 뿐이었다. 어쩌면 10년보다 더 길게 바라보고 해야 하는 일인데, 이렇게 쉽게 결정해도 되는 건지 불안하기도 했지만 딱히 다른 방법이 있거나, 다른 흥미 있는 일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지금 선택한 이 분야 외에 다른 분야를 생각해 볼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대학원에 원서를 넣었다. 그제야 나는 그 새로운 분야에 대한 개론책 한 권과 최신 논문 몇 편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런 자료들을 통해 그 분야에 대한 내 흥미를 이끌어내기에는 부족했다. 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유튜브를 찾아 몇 가지를 보았다. 그 직업 역시 분명 재미있고 흥미로운 직업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그 사이 대학원에서는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면접에 합격해야 좋은 건지, 떨어져야 좋은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으나 이 모든 것의 합격과 불합격이라는 운명에 맡겨보기로 하였다. 재미는 없지만 합격했기 때문에 앞으로 내가 해야 하는 일로 받아들이거나, 재미가 없기 때문에 불합격하면 나는 다른 재밌는 일을 찾아야 하는 상황을 운명으로 맞닥뜨리기로 했다. 그런 마음으로 면접을 보았고, 결국 ‘재미는 없지만 합격했기 때문에 앞으로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운명의 수레바퀴 위로 올라타게 되었다.
새로운 공부는 그리 쉽지는 않았다. 나의 학부 전공과는 비슷한 부분도 일부 있었으나 대부분은 새로운 영역의 공부를 해야 했다. 전체 5학기의 시간 중 3학기는 실습을 하며 배운 것을 써먹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어야 했다. 또한 제대로 배우고 있는 게 맞나 싶은 마음이 들 때쯤에는 그것을 활용하여 논문을 써야 하는 시간도 찾아왔다. 모든 것이 쉽지는 않았어도 제 속도에 맞춰 어떻게든 비슷한 모양을 갖춰 흘러갔다.
실습을 하는 과정은 나의 부족함을 만나는 부분이기도 했지만, 이 분야에서 실제로 내가 일했을 때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지 미리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어떤 부분은 내가 해왔던 일이랑 매우 달랐기 때문에 각오가 필요했고, 또 어떤 부분은 내가 해왔던 일과 비슷한 구석이 있어 좀 더 유능함을 발휘해 볼 수도 있었다.
논문을 쓰는 과정은 실험설계부터 시작해서 대상자를 구하는 일까지 보통 일은 아니었으나, 하나하나 단계를 헤쳐나가다 보니 어느덧 꽤나 그럴싸하게 완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논문을 완성하고 나니 나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나의 생각까지도 완성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해내야 하는 새로운 공부 중에서도 내 심장을 뛰게 하는 분야가 생겼다. 특별히 다른 과목들에 비해 내 흥미와 적성에 더 도드라지게 맞는 옷 같은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이 부분은 좀 더 잘 해낼 수 있겠다 싶은 것들도 찾아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것은 또 새로운 계기를 통해 나를 자극해 왔다.
‘재미없음’으로 출발한 일이기 때문에 나는 이 지난한 시간을 보내며 매우 고통스럽고 스트레스가 가득해야 정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보다 즐거웠다. 매 순간 고비라 느껴지는 순간들과 함께 생소한 학문이 어려워서 이 분야를 잘 알고 있는 누군가 붙잡고 상의하고 싶었던 순간들도 찾아왔지만, 그 과정들을 겪어가며 조금씩 나아지고 달라지는 나를 발견하면서 나는 나 자신의 성능이 업그레이드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재미없어도 해야 하는 일이라, 그저 돈벌이라 생각하고 하며 살아야지 했던 출발이었는데, 나름 나의 크고 작은 성장들을 발견하며 새로운 일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희망을 발견하는 것이 꽤나 즐거웠다.
현재 나는 국시라는 최종 관문을 마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학위를 받고도 그 학위만으로는 여전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왠지 내년에 나는 무언가 달라져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왠지 새로운 일을 익혀가면서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과 마주하는 순간이 오겠지만 재미있게 헤쳐나가고 있을 내 모습이 그려진다. 그렇게 결국 또 하나를 배우고 느끼고 경험하면서 적응이라는 것을 하고 있을 나를 그려본다.
지금 이 순간들이 또다시 내 인생에서 새로운 희망의 싹을 틔우기 위한 튼튼한 씨앗을 만드는 순간이리라. 그렇게 믿고 있는 지금의 시간이 조금 맘에 든다. 그래, 나에게 어쩌면 커다란 터닝포인트가 인생에 찾아왔고, 나는 그것을 실패라 여기지 않고 기회로 삼아 새로운 출발선에 서서 이제는 희망을 바라보는 사람이고 싶다. 앞으로의 내 삶에서 어떠한 크고 작은 문제 앞에서 무릎 꿇지 않도록 그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배움을 발견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내년 이맘때쯤 나는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 여전히 희망을 품고 나의 새로운 이 선택에 대해 만족감을 느끼며 뿌듯해하고 있을까? 요즘 나는 인생은 확신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쉽게 확신하거나 쉽게 마음을 놓고 안주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 여유롭지만은 않았던 시간들 투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대부분의 일들은 내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가느냐가 나 스스로의 만족감과 희망을 유지하며 살아가는데 약간의 이유는 되어준다는 것이다. 나는 곧 시험을 치를 것이고, 내년의 어느 날부터는 그 일을 마주하며 고군분투하는 사람이 되어있겠지. 그리고 또 현실 앞에서 기쁨과 슬픔, 만족감과 불안감을, 희망과 한계를 동시에 마주하며 일희일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의 이 다짐을 찾아 다시 꺼내 보아야겠다.
그래도 나는 희망을 간직하며 살아가겠노라고 다짐한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열한 번째 버킷리스트
매일 저녁 오늘의 삶에서 내가 발견한 희망을 기억해 보는 사람이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