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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고 싶은] 시대를 똑바로 보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여섯 번째 되고 싶은 것

by 정말로 Jung told

당연하다 생각했던 오늘이, 당연하기만 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된 2024년 12월 3일의 밤이었다.


친구와 경주에 놀러 갈 생각에 들떠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던 그 순간에 뉴스속보라는 단어 뒤에 ‘계엄령’이라는 세 글자가 내 눈에 들어왔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세 글자였기 때문에 이 시대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넘기려던 찰나였다.


몇 분이 지나자 나의 카카오톡 단톡방들이 난리가 났다. 내가 근현대사 교과서에서나 배웠던 그 계엄령이 지금의 계엄령이란다. 국회의원들이 담을 타 넘고 국회로 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있는 여러 뉴스 채널에서 나는 그것을 즉시 확인했다. 또다시 몇 분이 지나자 말도 안 되는 포고령이 발표되었다. ‘처단’하겠다는 그 마지막 단어가 섬뜩하게 다가왔다.


그때부터 나 역시도 긴장되기 시작했다. 내가 틀어둔 뉴스 채널에서도, 친구들이 실시간으로 보내오는 서울의 모습이라는 사진 속에서 탱크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군인도 경찰도 국회의원과 대치하는 모습이,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그 추위에 국회 앞을 지키던 시민들과 대치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내가 태어나 자란 이 시대에서 민주주의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리고 숨죽여 그 역사의 순간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유리창을 깨고 국회에 들어가는 군인들, 바리케이드를 치며 국회를 지켜내려던 사람들이 뿌려대던 소화기의 분말가루, 국회 앞을 지키며 온몸으로 군인들과 대치하던 그 시민들의 모습, 국회의원 190명이 모여 회의가 진행되고 표결이 마무리되기를, 정말이지 두근거리며 지켜보았다.


비상계엄이 해제되었다는 국회의장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안심이 되지 않았다. 내 두 눈으로 총을 든 군인이, 탱크가 서울의 도심을 누비는 모습이, 헬기가 국회로 내려앉는 모습을 보았던 장면이 너무나 생생했기 때문이다. 쉽게 잠들 수 없는 밤이었다. 그리고 새벽 4시가 지나 ‘대통령이었던 자’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의 비상계엄 해제 선언이 있었다.


그리고 그날의 아침이 밝아오자 온통 뉴스는 비상계엄에 대한 이야기로 장식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의 시민들의 이야기들이 더욱 생생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지방에 사는 나는, 이 뉴스를 보며 이토록 분노했지만, 지방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 가지 못하는 정당한 핑계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만약 서울시민이었다면 그곳에서, 그 사람들처럼 이 민주주의를 지켜낼 용기가 있었던 사람이었을까? 그들의 용기를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에, 존경스러운 마음에, 죄송스러운 마음에 눈물이 쉽게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근현대사 교과서를 통해 민주주의의 과정을 학습했던 나는, 당연히 어렵고 힘들었을 것이라 공감하며 배우긴 했지만, 사실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는 체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날 밤, 잠깐의 뜬금없던 ‘비상 계엄령’으로 인해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이 나라를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어왔던 그 시대의 시민들의 고통에 대해 조금이나마,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태어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는 이 민주적인 세상이 위협받게 되리라는 생각을 해보지는 못했다. 성인이 되면 투표하는 것, 내 의견과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 내 생각과 다른 것에 대해서는 촛불을 들고 모일 수 있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기에 ‘처단’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나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온 것이 감사했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많은 이들의 피, 땀, 눈물로 나는 너무나 편안히 세상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꿈꿨다. 내 자그마한 목표들을 실현해 나가며 즐거운 사회인이 되기를 꿈꿨다. 좋은 사람을 만나 사랑하며 존중받으며 살아가기를 꿈꿨다. 내 가족과 가정이 평안하고 늘 안녕하게 지내는 것을 꿈꿨다.


그러나 내가 꿈꿨던 이 모든 것들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세계가 안녕하고 안전했기 때문에 꿈꿀 수 있었던 것들이었음을 나는 깨달았다. 이 세상이, 이 세계가 안녕하고 안전하지 못했다면, 나는 내가 꿈꾸던 이 모든 크고 작은 것들을 꿈꾸며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여전히 정치적 이익을 계산하며 이 사태를 옹호하고 있는 내가 사는 지역의 국회의원들을 바라보며 또 다른 무력감을 느낀다. 역사의 순간에는 늘 정의로운 사람과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 뒤섞인 이름 사이로 이름 없는 자들은 또다시 변화의 희망을 품고 이름 없는 투쟁을 해나가고 있다. ‘이름 없는 나’는 어떤 힘을 보태 변화의 희망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팍팍한 삶 한가운데서 당연한 것 역시도 지켜내야겠다 다짐하는 오늘이 참 씁쓸하다. 부디 오늘의 역사는 변화의 희망을 통해 당연한 것을 지켜내는 역사로 남길 간절히 바라본다.






이 세상 돌아가는 것이 머리가 아프니 '정치' 뉴스를 보며 혀 끝을 쯧쯧 차고 "높으신 분들이 알아서 하겠지." 하며 다른 것에 관심을 두겠다는 말은 하지 않아야겠다. 누구보다 그것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며, 세상이 어떻게 변화해 나가는지, 누가 정의로운 자인지, 비겁한 자인지 내 두 눈으로 지켜보고 판단해 내 권리를 지켜나갈 수 있어야겠다.


정치 무관심자, 정치 혐오자가 되어 그 비겁한 사람들을 방조하는 시민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지금부터 더 열심히, 더 똑똑히 지켜보며 이 시대가 어떻게 다시 민주주의의 제자리를 찾아가는지 똑바로 지켜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 열세 번째 버킷리스트

민주주의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내 권리를 늘 생각하며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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