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되고 싶은 것
“우리가 지금까지 두 번밖에 만나지 않았는데, 제 어떤 점 때문에 호감이 간다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
“아, 저는 OO 씨한테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좋아요.”
몇 해 전 나는, 소개팅을 하고 두 번째 만남에서 대뜸 그에게 물어봤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에너지가 좋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당시에는 그 대답이 그리 기분이 좋게 들리지 않았다. ‘에너지가 좋다’는 말이 딱히 호감으로 표현할만한 어떤 구체적인 이유가 없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 만남을 끝으로 나는 그에게서 만나야 할 이유보다는 만나지 않아야 할 이유를 더 많이 발견했기 때문에 이쯤에서 서로 마무리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의 에너지를 호감이라 말해주었던 그와의 관계는 그렇게 마침표를 찍었다.
그리고 얼마 뒤, 연말을 맞이하였고 몇 년간 서로의 안부도 모른 채 지내던 지인으로부터 새해인사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십니까? 무소식이 희소식인 거 맞죠? 함께 있으면 늘 좋은 기운으로 주변 사람들이 밝고 신나 보여서 그 사람들이 참 부러웠는데, 지금은 어떤 사람들이랑 같이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들은 좋겠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길 바랍니다!
‘좋은 기운’
나는 이 문자메시지를 받고서야 지난 소개팅남이 말한 그 호감의 이유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지난 어떤 시절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것이 ‘좋은 기운’ 그리고 ‘좋게 느껴지는 에너지’였구나.
지금의 나는 어떤 에너지를 뿜어 내는 사람일까? 여전히 ‘좋은 기운’, ‘좋은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사람일까? 사실 잘 모르겠다.
2024년 한 해를 돌아보자면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누군가에게 자주 하소연하였고 때로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잘 되어가는 듯, 아닌 듯한 아리송한 과정 가운데서 늘 노심초사하고 불안해하였다. 그런 모습을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던 순간들도 있었겠지만 불안감이란 꼭 닫아놓은 문틈 사이로 새어나가고 들어오는 찬기운과 같으니 누군가는 나에게서 그 찬기운을 말없이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2024년의 나의 모습을 돌아보면 그저 아쉽기만 하다. 어떤 일이든, 어떤 상황이든, 어떤 문제 앞에서든 의연하게 맞닥뜨리지 못했다. 크고 작은 문제들 속 고군분투 하느라 내가 가지고 있는 ‘좋은 에너지’를 다른 방향으로 소모했던 한 해로 남은 것만 같다.
왜 그랬을까?
나는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돌아보면 그 의연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에게는 나의 ‘간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꼭 붙잡아두고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들,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 대해서 나는 의연하지 못했다. 그리고 돌아보면 그 간절한 어떤 것은 놓쳤고, 또 어떤 것은 여전히 놓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갈 수 없는 좁은 길을 봤어요. 쉼 없이 갈망하던 끝에 또 무던히 받아들여진대도 가난한 맘 몫이겠어요. 난 멋진 사람이 되어 큰 등불을 켜고 나선 발길 없는 저 큰 나무 아래로 피어오른 아집들이 내려앉길 기다리다 움츠린 손에 다 덜어낼게요.
-카더가든 ‘의연한 악수’ 中-
간절하다고 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얻는 것도, 또 잃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배웠던 2024년이었다. 이런 나에게 들려온 카더가든의 노랫말이 더 가슴 깊숙이 와닿는다.
‘저 큰 나무 아래로 피어오른 아집들이 내려앉길 기다리다 움츠린 손에 다 덜어낼게요.’
간절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니겠지만, 그 간절함으로 인해 내가 가진 긍정적인 마음,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다 잘되고 있다는 믿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신념을 잃어서는 안 되겠다. 그러한 것들을 잃게 하는 ‘간절한 것’이라면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오히려 나의 ‘아집’이 되어버린 탓이겠지.
2025년에는 카더가든의 노랫말처럼 나의 ‘피어오른 아집들이 내려앉길 기다리다 움츠린 손에 다 덜어’ 내야겠다. 그리고 어떤 상황, 어떤 문제, 어떤 간절한 것들 가운데서도 좋은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이를 먹을수록, 인생의 깊이가 더해질수록 좋은 에너지가 가득한 사람이고 싶다. 지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긍정의 기운을 잃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지나간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전해준 그 말처럼 언제나 ‘좋은 에너지가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카더가든의 '의연한 악수'라는 노래를 알게 되고 또 그 노랫말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들이 찾아왔다. 그러다 카더가든은 왜 이런 노랫말을 적게 되었을까 궁금해 찾아보니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서. 주변에 있는 좋은 어른처럼 되고 싶지만 잘 안되어 스스로 답답해하다 그런 기분을 담은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나도 이런 글들을 쓰면서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분명 내 안에 있는 좋은 것들이 있을 텐데 어떤 날은 그런 것들이 잘 발휘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못마땅하기도 하다. 못마땅한 어느 날의 내가, 내일의 시간 속에의 나는 부디 더 나은 사람이고 싶어 오늘도 작은 다짐을 해본다.
"언제나 좋은 에너지가 가득한 사람이 되어보자."
□ 마지막 버킷리스트
어떤 일이든, 어떤 상황이든, 어떤 문제 앞에서든 내가 가진 긍정적인 마음,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다 잘되고 있다는 믿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신념을 잃지 말자. 그렇게 좋은 에너지를 가득 채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