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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숲섬 Jul 17. 2024

결코 거절할 수 없는 너라는 우주

{숲섬타로} 모두를 위한 열 번째 편지



 장맛비가 계속된 토요일 아침, 반려인 N과 반려견 BB는 평소처럼 산책을 나갔다가 생후 1개월이 갓 넘었을까 말까 한 앙상한 새끼고양이 한 마리를 안고 돌아왔다. 난 마냥 좋아할 수가 없었다. 무작정 데려오면 어쩌냐고 지금 당장 제자리에 갖다 놓으라고 몇 번이고 얘기했으나 새끼고양이가 비를 맞으며 길가의 담장 위에서 울고 있었고, 귀 한쪽이 다친 상태였으며, 주변엔 어미도 다른 새끼도 없고, 무엇보다 배가 무척 배고파 보여 도저히 그냥 올 수가 없었다는 변명만 듣게 되었다. 아담한 집에 인간 둘, 개 한 마리, 고양이 두 마리가 함께 사는 우리 집에 다른 동물이 들어올 자리는 더 없었다. 3년 전에도 버려진 새끼고양이를 집안으로 데려와 키우며 원래 있던 세 마리 모두 차례대로 췌장염을 앓고 스트레스로 발작이 오는 등 생각지 못한 힘든 시간을 보낸 기억이 있다. 특히 막내였던 모모의 질투는 끝까지 유난했다. 본인도 유기묘로 집에 들어와 우리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어린 시절은 기억하지 못하고 새끼고양이를 틈만 나면 두들겨 패고 째려보고 싸움을 걸었다. 엄마에게 사랑받고자 큰 새를 잡아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마음은 어쩔 수 없이 귀여운 짓을 도맡아 하는 새끼고양이에게 쏠렸다. 새로 온 아이는 그렇게 엄청난 사랑을 받다가 10개월쯤 되었을 때 로드킬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배 아파 내가 낳은 새끼인 것처럼 사랑을 쏟은 터라 얼마나 속상하고 안타깝던지...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다른 고양이는 쳐다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일요일 새벽 다섯 시쯤 구슬프게 우는 소리에 밖으로 나가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연약하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체, 새끼 고양이. 남아로 보였고 짙은 줄무늬가 다리 끝까지 나있었다. 한 손바닥에 올려도 무게가 없다 싶게 가볍고 연약했다. 너무 약해 어미가 버린 것처럼 보였고, 먹을 것을 줘도 아직 제대로 먹지 못했다. 뒤뜰에 있는 작은 정자에 상자들로 집을 마련해 주었으나 겁이 너무 많아 그곳에 있지 못하고 옆쪽에 쌓인 높은 돌담의 틈새로 자꾸만 숨어들었다. 혼자 있으며 나름대로 터득한 생존방식으로 보였다. 그러나 넓고도 좁은 돌담 틈은 꽤나 위험해 보였고, 아이가 빠져나오지 못한다거나 좁은 틈으로 빠져 다칠까 봐 걱정이 되었다. 난 보자마자 배고프다고 날카롭게 울고 있는 녀석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우린 녀석에게 질기게 오래 살라는 의미로 '고사리'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신생아처럼 두세 시간 간격으로 식사를 했다. 부드러운 천을 꺼내 의자 위에 올려주니 꾹꾹이를 하다가 잠이 든다. 오후 네시 반. 잠든 모습을 확인하고서 집안 청소를 시작했다.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을 닦는 내내 새끼고양이는 잠을 자는 것 같았다. 그러다 의자에서 보이지 않길래 정리만 해놓고 나가봐야겠다 했는데, 10여분 후 나가보니 고사리가 사라지고 없었다. 거짓말처럼 아무 데도 없었다.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쯧쯧 소릴 내고 찾아봐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담장 위로 올라갔나 싶어 옆집 귤밭으로 넘어가 살펴보고 뒷집으로 건너가 살펴보아도 없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난 괜히 아이를 바깥에서 키우자고 했나 싶어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어졌다. 근처를 세 바퀴나 둘러보았으나 흔적조차 없었다. 정자에 이것저것 가져다 지어준 집과 물그릇만 덩그마니 남아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제발 집까지 무사히 찾아와라 누가 데려갔다면 부디 사랑받으며 살기만 해라 싶은 생각만 간절해졌다.



 그 순간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 타로카드를 펼쳤다.



 고사리는 살아있나요? 네. (너무나 명백한 Yes 싸인이었다)
 아이는 지금 어떤 상황인가요? 아이는 초연한 상태이거나 휴식하는 상태입니다.
 아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돌탑에 있어요.(원래 타워 카드는 생각지 못한 사건 사고를 뜻하지만 이 카드는 돌탑이라는 장소를 보여주고 있다)
 무사할까요? 네. (곰 한 마리가 펜타클을 갖고 놀고 있는 카드였다)



 그러나 너무나 이상할 정도로 고사리가 원래 드나들던 돌탑 주변엔 어떤 생명의 에너지도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아이를 찾을 순 없었지만, 타로의 결과를 보고 마음이 많이 차분해지고 있었다.


 "네가 고사리에게 종일 신경 쓰는 모습 보면서 괜히 데려왔나 싶었어. 어차피 밖에서 키우면 우리가 완전히 책임질 순 없어. 이러다 어느 날 사라진다 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담담하게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을 줘야 할 것 같아. 욕심 내려놓고 기다려보자."라고 N이 말했다.



고사리가 숨기 좋아하는 뒤뜰의 돌담. 고사리는 오늘도 저 안의 동굴 같은 공간을 제 맘대로 돌아다니고 잠도 잔다.



 늦은 저녁을 먹고 어둑해질 무렵 거의 마지막으로 고사리를 불러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N이 "어, 지금! 고사리 소리가 들려!"라고 하는 게 아닌가. 돌담 쪽으로 올라가 보니 담장 너머 나무 밑 덤불에서 우는 소리가 들렸다. 세 시간 만이었다. N은 낫을 들고 옆집을 통해 귤밭으로 들어갔다. 덤불을 낫으로 헤치며 계속 찾는 동안 우는 소리는 계속 이동하며 가까워지더니 불쑥 내 발밑에 모습을 드러낸 작은 고사리. 아, 살았다! 그제야 숨이 쉬어지는 듯했다. 아이는 다친 곳은 없어 보였고, 비도 맞지 않고 보송보송했다. 잠이 깊이 들었던 걸까, 아니면 담 위에서 아래로 떨어져 잠시 기절했던 걸까. 중요한 사실은 옆집의 큰 나무 아래서 이곳까지 돌담 사이를 지나 저 혼자 여기까지 찾아왔단 사실이다. 놀라웠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하루가 더 지났다. 고사리는 볼 때마다 무럭무럭 자란다. 이름을 잘 지은 것 같다고 우린 웃었다. 놀라운 생명력을 가진 이미 그 자체로 완전하고 강인한 고양이였다. 이제 우릴 기다린다기보단 밥을 더 기다리는 것 같고, 먹고 나면 혼자서도 잘 놀았다. 처음엔 한쪽 다리 들어 가려운 곳을 긁으려면 벌렁 나뒹굴더니 이젠 제법 잘 긁는다. 경사진 곳도 잘 타고 오르내리고 발톱을 세워 긁으며 다듬고 땅을 파고 오줌을 누고(아직 덮어야 되는 줄은 모르나 보다) 서툰 점프도 하고 고양이가 하는 모든 짓을 잘 해내고 있다. 모모가 혹시 고사리를 미워하면 어쩌나 걱정했으나, 첫날엔 낯선 고양이를 데려왔다고 N과 나에게 화를 내고 심지어 만지면 팔을 물고 뒤돌아 앉아있던 모모는 아이가 바깥에만 있고 집안엔 오지 못하며 여전히 자신이 사랑받는단 사실을 확인하면서부턴 평소처럼 차분해지고 있었다. 그 또한 감사한 일이었다.



  짤막한 소동이었으나 정말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 내가 그앨 책임져야 하는 더 큰 존재라는 생각부터 버렸다. 우린 그저 서로를 돕는 동등한 존재일 뿐인 것 같아, 그렇지? 오늘도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밥을 챙겨 나간다. 내가 엄마 고양이라면 아이한테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지를 자주 생각해 본다. 체력도 키워야 하고 사냥도 배워야 하고 위험을 느끼면 피하는 법도 배워야겠지. 나도 우리 가족들도 고사리도 우리 주변의 다른 동물들과 이웃들도 모두가 편안할 수 있는 방법은 나라는 인간 위주로 사고방식을 버리는데서 찾을 수 있는 일 같다. 고사리는 벌써 내게 많은 울림과 감동을 준다. 고마워! 우리에게 와줘서! 일상을 기적으로 만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생명 있는 존재는 사랑을 받으면 예뻐진다. 이 아일 바라보는 내 표정도 이 아이처럼 누가 보기에도 흐뭇할 것이다.


집에 온지 둘째날, 못 먹어서 등이 굽어있었는데 삼일째부터 곧게 펴졌다. 밥고 잘 먹고 다쳤던 귀도 거의 나았다. 건강하기만 하여라 고살아!




* 숲섬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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