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에 눕다 #2

卒들 / 신해욱 詩 :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불려야만 한다

by Soopsum숲섬

卒들

신해욱



제비를 뽑았다.


우리는 손이 떨린다. 우리는 두리번거린다. 우리는 머릿수를 센다. 우리에게는 빠진 것이 있다. 우리의 순서는 하필 빠진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제 어쩐다?


우리는 어깨를 모은다. 우리는 목소리를 죽인다. 우리는 자기소개를 한다.


사복을 입고 있는데도 우리는 모두 이름이 같다. 이름이 밝혀질 때마다 우리는 벌거벗기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숨고 싶다.


빠지고 싶다.


그러나 우리는 명찰을 달기로 한다. 명찰을 단 가슴에 손을 얹기로 한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우리는 줄을 서야 한다. 우리는 결번으로 시작되는 수열을 완성해야 한다. 끝에서 끝까지


우리의 이름이 빠짐없이 들어찬 사전을 만들어야 한다.



- <syzygy> 신해욱 시집, 문학과지성 시인선 446 (2014)






어제 10.29 참사의 희생자 이름이 공개되었다. 주변 어디서나 평범하게 볼 수 있는 그 이름을 하나씩 불러보며 이 참사가 특정한 이들만의 비극이 아님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여당은 참사 희생자의 명단 공개를 '패륜'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희생자들의 분향소에는 영정도 없고 위패도 없다. 그들의 사연은 감춰지고 이야기되지 않는다. 한국의 언론들은 정부의 뜻에 따라 그저 희생자 158명으로 희생자를 부르며 아무런 비판 없는 태도로 기사를 작성한다. 오직 BBC, WP 등의 외신만이 생존자와 희생자들의 유가족을 만나고 그들의 사진, 이름, 나이, 이력 등을 밝히며 그들의 사연을 전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세월호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등의 대부분의 참사에 대해 당연하게 언론을 통해 공개된 희생자들의 명단과 사연을 보아왔다. 그들의 이름과 사연을 알아야 유가족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다. 이 참사가 한이 되지 않도록 국가는 남은 이들을 최선을 다해 도울 의무가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국민들 역시 진심으로 애도가 가능하다. 전 국민에게 이러한 자연스러운 애도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행위야말로 정치적인 패륜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상황을 제대로 전하지 않고 있는 언론들에게 분노한다.


내 이름을 대고, 내 목소리로 이야기하려는 시도에는 늘 두려움이 따를 수 있다. 나를 드러낸다는 것은 스스로를 부정당할 가능성, 공격당하거나 심지어 조롱당하는 상황에까지 놓이게 될 가능성을 언제나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느끼면서도 기어이 나를 소개한다. 내 모습을 드러내고 광장으로 나간다. 나에게 가해진 부당한 일을 이야기한다. 내 생각에 힘을 실어 내 목소리로 내 이름으로 글을 쓴다. 나는 너와 결코 다르지 않기에. 비록 평범한 한 인간의 말에 불과할 지라도,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이야기가 그토록 진실할 수 있는 이유이다.


국가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해 떠난, 우리의 이웃이던 158명의 고인에게 진정한 애도의 마음을 보낸다. 그들의 외침에 국가는 응답하지 않았지만, 고인이 된 그들의 이름 앞에, 우리는 약속해야 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돕겠다고. 당신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고. 당신들 뿐만 아니라 나를 위해서, 지금 막 서로의 이름을 알게 된 우리들을 위해서.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조속히 이뤄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