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에 눕다 #4

별로 / 임솔아 詩 : 새로 만난 세계

by Soopsum숲섬


벚꽃이 벚꽃으로부터 꽃잎을 풀어주고 있다.

그늘이 그늘로부터 그림자의 윤곽을 풀어주고 있다.



- 임솔아 시인의 시 <별로>의 부분,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문학과지성 시인선495 (2017)






N과 그의 친구 SS님과 함께 수영장에 갔다.

SS님은 젊은 시절 큰 물에 휩쓸려 빠질 뻔한 기억이 있어 물이 무섭다고 몇 번 거절하였다. 그러다가 선뜻 그래, 가자고 하셨기에 재밌게 해드리고 싶어 나도 따라갔다. 전날 이미 수영을 다녀왔는데 조금 무리했다.


물속은 지금까지 살던 세상과 다른 완전히 새로운 세계이다. 물속에서는 보이는 것도, 걷거나 뛰는 움직임도 모두 낯설고 무겁다. 그 물속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시도, 난 그것이 삶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안에 강력하게 새겨진 두려움과 공포를 물리치고('풀어주고') 자유롭게 떠다니고 머물 수 있는 세계를 물속으로까지 확장하는 일 같다. 물이 두려운 이들의 특징은 빠질까 봐 미리 겁먹기, 잔뜩 힘주고 뻣뻣하게 긴장하기, 두려움을 생명줄인 양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붙들고 있기, 자주 눈감기 등이다. 겁먹고 있는 모습은 무엇에 겁먹고 있는가와 상관없이 비슷하게 안타깝고 불안하다.


이렇게 여유 있는 듯 말하지만 이것은 불과 얼마 전까지의 내 모습이다. 줄넘기는 정말 효과가 있었다. 지난주 오랜만에 간 수영장에서 갑자기 개구리헤엄을 치며 몇 바퀴를 돌 수가 있었고, 배영도 오래 할 수가 있었다. 이제 정말 수영을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안경을 쓰고 물속에 고개를 넣고 눈을 뜨는 것조차 무서워서 못하는 SS님을 보며 얼마 전까지의 나를 떠올렸다. 물속에서는 우리 몸속에 다닥다닥 붙은 사실이라 믿는 의식과 의지조차 모두 벗어버리고 엄마에게 몸을 맡기는 아이 같은 믿음이 필요한데, 그게 그토록 어렵다(그러나 일단 해보기만 하면 그 일은 세상 어느 일보다 쉽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것도 어쩌면 삶의 비밀일까).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면, 그날 두 분 있던 다른 분들이 수영장을 나가고 우리만 남게 되자, 우린 잡기 놀이를 하고, 달리기 시합을 하고 트램펄린을 탄 것처럼 뛰어오르기를 하며 파도를 만들고 노래를 부르고 소리를 지르고 깔깔거리며 최선을 다해 놀았다. 스티로폼 막대처럼 길게 생긴 핼퍼를 놓지 않고 부지런히 걷고 뛰던 SS님은 뽀얗고 볼그스름해진 환한 얼굴로 물놀이가 이렇게 재미난 건지 난생처음 알았다 하신다. 또 와야겠다고 하신다. 야호! 이것으로 충분하다.


어제 종일 온몸이 쑤셨다. 역시 이틀 연속은 무리지만 이상하게 수영은 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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