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식물 키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난 식물 키우기를 '좋아하는'것뿐이지 '잘 키우는'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초록색의 식물들을 집에 들여놓고 자라나는 것을 보는 것은 참 재미있다. 요즘 우리 집 한구석 예쁨 담당인 스킨답서스는 길게 늘어지는 올망졸망한 잎이 화분을 휘감으며 자라서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가 키우지 못하는 식물이 있으니 그건 바로 앙증맞은 다육이들이다. 한때 다육이를 키우는 열풍이 불어서 나도 다육화분을 몇 개 들여놓고 작은 티스푼으로 물을 정성스럽게 주며 키워보았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키우는 다육이마다 물을 너무 많이 줘서 죽거나, 물주는 때를 맞추지 못해 말라죽어버렸다.
이후로는 다육이만 보면 이루지 못한 사랑이라도 떠오른 듯, 상실감에 젖어 시무룩해지고 만다. 나는 절대로 키워서는 안 될 식물, 나와는 함께할 수 없는 식물. 그게 바로 다육이라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육이 키우기를 포기해버리니 더 이상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어졌다. 뭐 어때. 원래 똥 손이라 그렇게 세심하게 보살펴야 하는 식물과는 맞지 않는 것을. 난 그냥 조금 시들해 보이면 물을 한 바가지 부어주고 또 금방 살아나는 그런 쉬운 식물만 키우면 되는 것이다.
최근 이전 직장에서 친했던 후배 두 명이 트러블이 생겨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직장을 퇴사하며 실은 내가 많이 했던 걱정이 현실화된 거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둘은 함께 남아 일을 해야만 했고 이직을 노리기도 힘든 코로나 시국이 아닌가.
이미 한 명에겐 연락이 와 울분을 토하는 이야기를 전해 듣기도 했다. 듣는 내내 둘 사이의 일은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기가 힘든, 그저 맞지 않는 성격 탓이 더 컸다. 둘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나는 내가 키울 수 없어 포기했던 다육이를 떠올렸다.
타인과의 관계도 조금 쉽게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공간에서 지내야 하는 사람인데 아무리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면, 잘 지내보려 노력하려 해도 잘 되지 않는다면 그냥 그 관계는 마음속으로 포기해 버리는 거다. 깨끗하게. 두 명의 후배에게 해주었던 나의 조언도 별것은 아니었다. 그냥 서로가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뿐.
당신에게 스트레스만 주고 있는 다육이 같은 사람과 잘 지내는 것은 그만두었으면 한다. 그 사람 말고도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며. 맞지 않는 사람과의 의미 없는 줄다리기는 이제 그만 해도 괜찮을 거 같다. 서로를 포기하라고 해서 그 사람을 인간적으로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저 나와는 맞지 않는 사람에게 서로를 힘들게 하는 기대를 두지 말라는 것이다. 더 이상 다육이를 키울 욕심을 부리지 않는 내가 지금 애정을 갖고 키우는 화분만으로도 참 행복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