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형제의 ’ 신데렐라‘에는 발에 맞지 않는 유리구두를 신기 위해 발가락을 자른 언니들이 등장한다. 계모는 사이즈가 작은 신데렐라의 구두를 자기 딸들에게 맞추기 위해 과감히 발가락을 잘라버렸다. 잔혹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왕자에게 딸을 시집보내기 위한 비정한 부모의 무모하고도 과감한 결정이었다.
어쩌면 그리 잔인할 수 있는지, 엄마의 탐욕에 진저리를 칠 수 있겠지만, 그녀들이 살던 세상은 여자에게 경제활동과 직업이 금지되던 시대였다. 때문에, 왕자에게 시집을 가야만 모든 걸 누리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 낸 여자들의 일그러진 욕망이 결혼 한 가지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뜨악하지도 않을 일이다.
산산이 부서지는 발가락들이여
처음 하이힐을 신었던 날 나는 발가락이 산산이 부서지는 고통을 경험했다. 무릇 아무리 편한 신발이라 하더라도 며칠은 길을 들여야 하는데 7센티의 하이힐을 처음으로 신고 나가 버스를 타고 번화가를 돌아다니며 쇼핑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그 긴 여정을 치러 냈다니.
집에 돌아와 하이힐을 벗는데 마치 뜨거운 용암에서 발을 꺼내는듯했다. 앞 발가락의 마디마디는 다 물집이 잡히고 발뒤꿈치는 모조리 빨갛게 까져 피가 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나는 하이힐을 포기하지 않았다. 예뻐지고자 하는 욕망이 고통과 불편을 감지하는 이성을 앞질러버린 것이다.
주인의 무모한 결정에 불쌍한 나의 발은 하이힐에 완전히 적응할 수밖에 없었고 엄지발가락은 어느새 좁은 구두 앞코에서 검지 발가락 위를 덮어 살기 시작했으며 새끼발가락은 발톱이 다 빠지고 흔적만을 남겼다.
하이힐은 키를 커 보이게 해서 신는 게 아니다.
하이힐을 신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 신발을 신는 순간, 가슴은 앞으로 내밀어지고 등은 쭉 펴진다. 키가 올라가는 것은 물론이고 가슴확대의 효과까지 덤으로 얻는 것이다. 무게의 중심이 자연스럽게 발끝으로 쏠리다 보니 허벅지와 종아리에 힘이 들어가고, 이 때문에 다리는 가늘어 보이는 효과가 생긴다.
하지만 한 연구에서는 하이힐의 착용이 발목관절이 발바닥 굽힘 증가로 인한 장딴지근(종아리 위쪽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두 갈래의 근육)과 가자미근(발꿈치를 들어 올리는 근육)의 수축을 우려한다. 하이힐을 신으면 발목을 오래 굽힌 상태로 서 있게 되므로 체중의 지지는 발의 앞쪽 면으로 이동하게 되고 그로 인해 다리를 지탱하는 다른 근육도 무리한 수축을 하는 것이다.
하이힐이 이렇게 다리 건강, 나아가 몸 전체의 건강까지 위협하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꾸준하게도 잘 팔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름다움을 소유하고자 하는 여성들의 욕망과 사회적 통념에 무게를 실어 이야기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녀의 탓만이 아닌 것 같다.
날씬하고 예쁜 여자 연예인이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고 낮은 신발이나 운동화를 신고 나타났다고 가정해 보자. 누구라도 그 여자 연예인의 신발에 찬사를 보낼 수 있을 것인가. 일단 나부터도 와, 발이 편해서 좋겠네! 보다는 왜 그러지?라는 생각부터 할 것 같으니.
하이힐을 사랑하기로 유명한 세계적인 축구 스타의 부인 빅토리아 베컴도 떠오른다. 그녀는 킬힐을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 이유는 남편 베컴이 킬힐을 신은 자신의 모습을 좋아해서라는 말도 있다. 그녀는 임신 중에도 15센티 하이힐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은 심각한 허리 디스크를 앓게 되었다. 이후 디스크의 증상이 호전되기 전까진 잠시 플랫 슈즈를 신기도 했으나 회복 이후 다시 명품 킬힐을 신고 나타났다. 당연히 킬힐을 신는 것은 그녀 자신이 원하고 추구하는 미의 기준에 따른 것이겠지만, 패셔니스타로서 사람들이 자신에게 가지는 외적인 기대감과 아름다운 아내를 원하는 남편의 기대는 그녀가 쉽게 하이힐에서 내려오지 못하도록 만들지 않았을까?
(덧. 요즘 빅토리아 베컴의 파파라치 컷을 보면 편한 신발도 자주 신는 것을 보니 그녀도 힘이 들기는 하나보다.)
참고문헌/ 하이힐이 항공관광학과 여학생들의 발의 통증과 자세 불균형에 미치는 영향 2016 박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