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에 필요했던 것이 과연 비싼 신발일까?

신데렐라의 언니도 이해는 간다.

by 단팥


합리적인 척!


명품 구두에 발을 들인 사람이라면 신발 하나에 70-80만 원은 기본이고 품질과 디자인에 따라 100만 원도 훨씬 웃도는 신발이 많다는 것을 알 것이다. 하지만 이미 가방에 집착하고 있던 나의 경제 상황에는 이런 비싼 신발까지 사들이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일단 손에는 가방을 들어 힘을 빡 주었으니 신발은 조금 포기해도 좋겠다는 나름의 합리적인(?) 결론을 내렸다.

내가 찾은 명품 구두의 대안은 수제 화였다. 백화점이나 개인 제화 브랜드에서 내 발의 치수를 재고 내가 원하는 피혁 원단, 굽의 높이로 나는 신발을 맞춰 신기 시작했다. 하나에 20만 원에서 30만 원 정도면 수제 화를 맞출 수 있으니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돈이 다 얼마냐 싶지만) 백화점과 개인 제화 브랜드의 맞춤형 서비스나 디자인도 훌륭했고 만족스러웠다. 맞춤 신발들은 예쁘지만 가볍고도 편했다. 금보다 은을 선택한 것이랄까. 아니면 질보다 양으로 승부한 것일까. 그래서 철철이 신발을 맞춰 신었다.

봄이면 상큼한 컬러의 플랫슈즈를 맞춰 신었고 여름이면 편하게 신는 스트랩 샌들을, 가을에는 브라운 계열의 가죽을 골라 클래식한 로퍼와 앵클부츠를 맞췄다. 겨울이면 종아리 기장, 무릎 기장 등의 길이별 부츠도 샀다. 한때 유행하던 호주산 양털 부츠도 내가 사는 지역에선 1등으로 사서 신었다고 친구들에게 큰소리쳤다(에이 설마).

그러다 보니 신발장은 항상 만원이었다. 우리 가족의 신발 중 내 것이 가장 많았고 아빠는 딸의 신발 아래에 깔개처럼 자기 신발을 두어야 했다. 쇼핑에 지출을 줄이자고 다짐했던 첫날, 내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신발을 '솎아 버리는 것'이었는데 그 양이 실로 어마어마했다. 주저앉아 산더미 같은 신발을 정리하는 나를 보며, 보다 못한 아빠가 한마디를 던지고 가셨다.


네가 지네냐? 발이 몇 개여, 도대체!



하지만 아빠의 말보다도 더 슬픈 건, 그리고 그 많은 신발을 버리면서 내가 가슴뼈를 때리게 느꼈던 것 중 하나는 그 많은 신발 중 단 한 켤레도 굽이나 바닥이 닳은 것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나는 여러 개의 신발을 가지고 있었고 단 한 켤레도 밑창이 닳아 없어질 만큼 자주 신지도 않았던 것이다.



터질듯한 신발장


신발장 앞에 웅크리고 앉아 비닐봉지에 신발을 담으며 복잡하고도 수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좋은 가죽으로 맞춰 신은 신발이지만 유행이 지나면 신지를 않았으니 신발장 안에서 쪼그라들어 다시 신을 수도 없었다. 좋은 가죽일수록 관리도 잘해야 했지만 나는 새것을 사는 데만 급급했던 인간이라 지나간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탓이기도 했다.

그동안 신발에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부으며 과연 나의 발은 행복했을까? 아니지, 발은 가볍고 질 좋은 신발로 호강을 누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머리가 고생이었다. 그 발을 내려다볼 때마다 솔직히 아직 끝나지 않은 카드 할부금이 떠올랐다. 또한, 이 신발 할부 다 끝나면 다음엔 그걸 사야지. 어리석게도 이런 생각도 했다. 현실과 욕망이라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느라 머리는 터질 지경이었다.



그 많은 신발을 두고도 만 얼마 짜리만 신고 다녔다.


신발을 버리기 위해 다 쌓아놓고 보니 그중 가장 많이 신고 닳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1만 원 대의 인터넷 공동구매 신발이었다. 그 신발을 사게 된 계기는 그저 겨울에 집 앞 편의점이나 마트에 갈 때, 아껴 신지 않아도 되는, 구겨 신어도 될 만한 '가장 만만한 신발'을 찾아 샀던 것인데 신다 보니 너무나 편해 겨우 내내 나는 그 신발만 신었다. 2만 원이 채 되지 않는 신발이었지만 따뜻하고 가벼워서 더 자주 발을 집어넣었다.

사실 비싼 신발이 많이 있다고 해서 그것들을 모두 자주 신을 수는 없다. 비싼 신발일수록 비싼 옷과 가방에 어울리고 특별한 날이나 약속, 행사가 있지 않은 한 그런 신발들을 신을 일은 그리 많지도 않다.

그런데 도대체 나는 그 많은 신발은 왜 그렇게 비싸게 주고 샀던 거지? 신발을 버리며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묻고 또 물었지만 특별한 변명도 대답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냥 나는 예쁜 신발을 좋아했을 뿐이고, 특별한 날의 외출에 예쁜 신발이 어울렸던 것뿐이었다.


한겨울, 맨발에 신어도 엄청난 보온력을 자랑했던 저렴이 신발

운동화라고 싼 줄 알았다면


비싼 신발을 정리하고 내 발에 편안하면서도 저렴한 신발을 신기겠다는 일념으로 호기롭게 운동화를 샀다. 처음에 샀던 운동화는 포털에 ‘여자 여름 운동화 추천’을 검색하며 시작했고 유행하는 하얀색의 운동화,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10만 원대 안팎의 신발을 신었다. 하지만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운동화를 신다 보니 또 예쁜 운동화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그때, 나 같이 발이 편하고도 예쁜 걸 좋아하는 여자들의 욕구에 딱 들어맞는 새로운 유형의 명품 운동화들의 유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50만 원이 훌쩍 넘는, 때가 탄 별이 달린 빈티지 운동화를 신는 사람들이 거리에 많아졌고 명품 브랜드에서는 어글리 슈즈라는 새로운 운동화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다행하게도(?) 그때까지 나의 우선순위는 운동화가 아닌 가방이었다. 운동화를 150만 원 주고 사느니, 좀 더 참으면 가방을 살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런 새카만 속셈으로 운동화의 대열에는 끼지 않았다. (사실 끼지도 못한 거지만.)



처음으로 신발 뒤꿈치가 닳아버렸다


모든 것을 더 아끼면 언젠가 가방을 살 수도 있노라는 흑심을 품은 채로(실은 아주 작은 미련이지만 이때까지도 남아있긴 했으므로 솔직하게 고백함) 지출을 줄이고자 노력한 이후, 신기하게도 나의 신발장에 숨을 쉴 공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겨울에 신을 운동화 한 켤레, 집 앞에 나갈 때 신을 쌈지 막 한 털신, 눈이 오는 날 신을 방수 부츠 한 켤레. 세 켤레로 첫겨울을 보내고 난 후 나는 발꿈치 아래에 닳아있는 운동화의 형태를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신발을 그렇게나 사서 신었는데 처음으로 뒷 창이 닳아버린 운동화라. 기쁘고도 씁쓸했다. 신발장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것을 보고 있노라니 조금이라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해 나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래, 빨리 닳아라, 닳아서 얼른 새 신발 살 날이 오면 좋겠다, 흐흐.


라고 생각하는 철없는 쇼핑 중독자의, 아직 완벽히 떨쳐내지 못한. 그러나 꽤 작고 소심해져 버린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참고문헌/ 20세기 신발 디자인 연구 (2001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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