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연재 중 습작소 04화

이번 화는 쉽니다

이야기

by 정민쓰





끝까지 읽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종종 글을 쓰는 평범한 작가입니다. 이번 주의 연재글은 쉬어가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독자의 입장에선 작가의 휴재글이 배은망덕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 글은 꼭 끝까지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휴재를 하는 합당한 이유가 있거든요.




전 마음껏 내 솔직한 글을 써보고자 글쟁이를 시작했거든요?

근데 언젠가부터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요. 근래는 세상 만물을 극도로 민감하게 받아들이면서 작위적으로 영감을 캐려 하고 있어요. 영감은 그런다고 뿅 하고 나타나는 게 아닌데 말이죠.

글을 가지고 마음껏 재주 부리고 싶었는데, 이렇듯 지금은 오히려 제가 글에게 쫓기는 신세입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전 정말로 글에게 쫓기고 있어요. 글들이 저를 쫓아온다니까요. 꿈속에서요.




어찌 되었든, 지금 이 글을 다 쓰면 우선 잠이나 자야겠습니다.








음... 전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이 지극히 평범한 작가예요.

감사하게도 제가 쓴 여러 글들 중에 최근에 쓴 글이 대박이 났어요.




제 꿈속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었는데, 사실 그게 조금 이상합니다.

분명히 전 꿈속에서 글을 썼거든요? 근데 그 꿈속에서 쓴 글조차도 꿈속에서 겪은 일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꿈에서 깨보니 인터넷에서도 집 밖에서도 어딜 가나 제가 쓴 그 글이야기인 거예요.

문제는 제가 그 글이 무슨 글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가 않아요. 그래도 사람들이 열광하니까 지금도 글을 쓰고는 있고요.

그래서 요즘은 문득 이 모든 게 다 꿈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전 직면하기 어려운 아프고 무서운 감정들을 글로 써 내려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날의 과오들과 부끄러운 실수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작품이라는 쓰레기봉투에 잔뜩 제 기억배설물을 모아, 보이지 않는 곳에 박아두는 것이죠. 이 쓰레기장을 저는 의식적으로 떠올리지 않고 있는데요. 꿈을 꾸면 떠올라요. 따라서 제 꿈을 글로 옮기는 것은 그야말로 저의 치부를 써 내려가는 일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전 이제 꿈을 꾸지 않으면 글을 쓸 수가 없단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저에 대해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서 몇 가지 첨언을 하자면요. 물론 꼭 그런 것만은 아닐 수도 있는 게요. 제가 그동안 쓴 글은 하나같이 사람이 죽고, 몸이 조각나고, 주인공의 지저분하고 끔찍한 성도착증이 공통적으로 등장합니다. 그 음습한 것들이 제 기억쓰레기장에서 꺼낸 이야기일리가 없잖아요?








살바도르 달리라는 예술가를 아시나요? 그는 영감을 얻고자 금속스푼을 한 손으로 살짝 잡은 채 졸았다고 하네요. 그러다가 선잠에 빠지면 자연스레 스푼을 놓치고 스푼이 '땡그랑!' 떨어지는 소리에 잠에서 깨며 영감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지난번에 꾼 꿈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분명히 잊어버리기 전에 기록해 두었었습니다.

잔뜩 기록해 두었는데 대체 어디 갔는지 모르겠네요? 꿈속에서 제가 분명히 글을 썼었는데.

어쨌든 전 지금도 잊어버리기 전에 이 글을 써두고 있습니다. 언제 제가 꿈에서 깨어날지 모르니까요. 지지난번 꿈에서는 옆집에 혼자 사는 남자를 죽이는 이야기를 썼다는 건 확실히 기억합니다! 그를 죽였던 건, 매일 같이 그가 보는 포르노영상의 소리가 벽을 넘어오는 것이 제 영감을 너무나도 흩트려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방금 저는 계속해서 제 집 문을 누군가가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어요. 분명히 살바도르 달리가 저를 위해 스푼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잠에서 깨며 동시에 지난번에 꿈 내용을 써두었다는 저의 작품, 그것을 둔 위치가 떠올랐거든요.



찾았습니다. 지난번 꿈에서 쓴 작품. 저어기 있는 쓰레기봉투네요. 바로 지난번에 써 내려갔던 작품이라 아직은 묘한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삐져나와있는 머리카락도 아직은 푸석푸석해지지 않았어요.


제 기억배설물이 가득 쌓여있는 제 방은 쓰레기장과 같습니다. 이곳에 쌓여있는 수많은 영감의 쓰레기봉투들은요, 저의 꿈을 기록해 둔 저의 작품들입니다.








여전히 제 현관문을 두드리는 이 소리는 너무 거슬립니다. 살바도르 달리의 스푼이라기엔 너무 과한데요? 아까 시끄럽다고 소리 한 번 질렀더니 밖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꿈 속이라서 어렴풋이 들린 정도지만 경찰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너무 짜증이 나네요. 안 그래도 글도 안 써지는데 요즘.

어쨌든 현관문을 열지 않으면 저들이 계속 제 꿈을 방해할 것 같아요. 문을 열어보긴 해야겠네요.




그러니까 휴재공지글은 여기까지 할게요.

이번 화는 쉽니다.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03화나를 찾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