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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습작소 03화

나를 찾아줘

이야기

by 정민쓰







여기서 누가 죽었단다. 누군가가 사람을 죽였단다.

사이코패스? 분노조절장애?




지랄들을 하고 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들을 하고 있어.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래. 뭐. 들 말마따나 눈앞에 펼쳐진 광경과 사람들의 웅성임을 듣고 분노를 제어하기가들긴 했다.




사이렌 소리. 둘러진 노란 폴리스라인. 인파의 쑥덕거림. 필사적으로 그들에게 물러나라 외치는 경찰들.

그 틈바구니로 언뜻 보이는 고가 밑 수풀 사이, 얼핏 보이는 덩어리들.













난 인파를 빙 돌아, 폴리스라인의 반대편으로 가보았다. 시신이 더 잘 보였다. 그것들은 햄덩어리들 마냥 현실감이 없어 보였다.

현장에 가까이 간 덕분에 수사관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머리를 못 찾았단다.

흉기 또한 못 찾았으며 상흔에 따라 흉기는 도끼로 추정되고, 범인의 범행처리는 너무 미숙하단다. 그러면서 그들은 농담 따먹듯이 '나를 찾아달라'는 수준으로 흔적을 남겼다고 했다. 아마추어 같다나.


아마추어라. 근데 이 새끼들이 키득거려? 웃기나 보네? 분노를 참기가 힘들었다. 죽여버고 싶을 정도로.




내 격한 속내가 들린 건지, 수사관들이 갑자기 나를 향해 휙 고개를 돌리고 당장 여기서 나가라고 소리 질렀다.




깜짝이야. 들켰다고? 그럴 리가.




아.... 내 뒤에 나처럼 몰래 숨어 들어온 푼수 떼기 같은 동네꼬마들 때문이었다.

수사관들은 갑자기 경각심이라도 생겼는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덩달아 나도 수사관들의 대화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꼬마 놈들. 뭐가 좋다고 실실 웃으면서 도망가는지. 죽여버릴까 진짜.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왔다.

마음속 울화통이 팽팽히 당겨진 고무줄처럼 조금만 힘을 풀면 튕겨져 나갈 것만 같았다.












병원 정신과에는 와야 할 사람들은 안 오고, 그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애꿎은 사람들이 온다고들 한다.




난 원래 마음속에 화가 가득한 사람이다.

화를 더욱 돋우는 사실은, 이 이야기를 할 때면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이 무슨 화가 많은 거냐고 내 말을 묵살한다는 것이었다.


지들이 뭘 안다고. 씨팔새끼들.


도대체 왜 내가 허허실실 웃어주는 것이 다 본인들 좋으라고 웃어주는 거라고는 생각을 못할까. 그들의 눈에 나는 마냥 함부로 굴어도 화 한번 못 내는 소심쟁이에 배까지 나온 독신중년일 뿐일 게 분명했다.




회사직원들은 나를 노골적으로 무시했었다.

그들은 한데 모여있다가도 내가 나타나면 뿔뿔이 흩어졌다. 시끄럽던 사무실도 내가 나타나면 찬물을 끼얹은 듯 갑자기 뚝 조용해지곤 했다.

그들끼리 눈빛을 주고받으며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는 것도, 그리고 그 직후 '오늘도 머리 안 감았나 봐. 들어오자마자 냄새나.'라는 메시지가 나에게 잘 못 보내졌을 때도 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다 죽여버리고 싶었음에도.


난 그저 조용히 사무실을 나가 비상계단에서 줄담배를 피웠을 뿐이다. 그리고 담배를 피우며 비상계단의 한 구석, 투명한 비상용 케이스에 든 소방용 도끼를 한참 응시했었을 뿐이다.

만약 내가 화를 내면 저 좆같은 것들은 나를 더욱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 할 게 분명하니까. 날 더 우스꽝스럽게 생각할게 분명하니까. 참기 힘든 무안한 분위기 속에 내 숨만 더 막혀 올게 분명하니까.




그저 그래서 나는 항상 미친놈 같은 직장 상사에게 서류로 얼굴을 맞으면서도 가만히 있던 것이다.


그래서 한참 어린 부하직원이 나에게 슬쩍 말을 놓을 때도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부하직원의 업무미비로 인해 새벽까지 야근하던 날, 나를 빤히 보며 먼저 퇴근하던 그 부하직원을 보면서도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수년간 세상 무서울 것 없이 본인 기분에 따라 좆대로 굴던 상사에게도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새끼들을 다 난도질하여 죽여버리고 싶은데도 참고 있던 것이다.












내 평생에 걸쳐 쌓여온 이 분노를 조만간 폭발시켜야겠다고 다짐할 때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즈음 시기적절하게 입사했던 말도 똑바로 못 하는 어수룩한 뚱땡이 신입사원에게는, 지금 와서야 내심 아주아주 미세하게 미안한 마음이 들긴 한다.




난 그 뚱땡이 놈을 틈만 나면 비상계단으로 불러서 생트집을 잡았었다. 일부러 틀린 업무를 지시했을 때, 괜히 윽박지르며 조용한 사무실에서 망신을 줄 때, 나는 그나마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야 진짜 나를 찾았다고나 할까? 다른 직원 놈들도 내가 화를 내면 무서운 사람이란 걸 그제야 알았을 것이다.




그래도 난 나름대로 이 뚱땡이 녀석에게 두 번 (심지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다) 커피를 사주기도 했었고, 이 녀석의 생일을 사무실 사람들이 십시일반 하여 준비할 때 나도 돈을 냈었다.

종합적으로 난 이 녀석에게 엄할지언정 때론 잘해주는 착한 멘토이며, 상사였다고 생각한다.




감히 그 뚱땡이가 조금씩 나에게 말대답을 하던 시점부턴 이 놈도 다른 놈들과 똑같이 죽이고 싶은 놈이 되었다.

아니지. 제일 죽이고 싶은 놈이었지. 보이지도 않을 놈이 까부니까. 난 잘해줬는데 날 배신했으니까.












지금도 그 뚱땡이 놈을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어 오르며 또 머리가 아파온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병원 정신과에는 정작 와야 할 사람들은 안 오고, 그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애꿎은 사람들이 온다고들 한다.




내가 그 애꿎은 사람이 아닐까 싶다. 직장 사람들을 다 통째로 병동에 처박아야 하는 거 아닌지.

그 놈들을 생각하니 또 머리가 아파온다.




어쨌든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회사건물에서 나오면 바로 앞에 고가도로가 있고 그 밑으로는 산책로가 구성되어 있다. 산책로를 따라가면 내가 사는 집이 나온다. 물론 지금은 그 길로 사람들이 통행할 수가 없다. 아직도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기 때문이다.




내가 폴리스라인 앞에 다가가니 또 수사관이 통화하는 게 보인다. 뭐 그렇게 수사가 오래 걸리는지.

가까이 가서 대화내용을 들어봤다. 대놓고 가까이 다가가도 그는 날 무시하고 휴대폰 너머로 수사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그래. 네 놈 역시 내가 보이지도 않겠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무시받는 건 익숙하다.




수사관의 말은 지난번 들었을 때와 똑같은 내용이다.




'머리를 못 찾았다.'


'흉기라도 찾으면 수사에 진전에 있을 텐데'




경찰들보다 내가 더 궁금해서 미칠 것 같다.

나도 사실 기억이 잘 안나거든.

내 머리통이 어딨는지. 머리를 맞아서 그런가.




비상계단에서 뚱땡이 놈을 갈굴 때, 언젠가부터 비상용 소방도끼함 안에 도끼가 없어졌다는 걸 난 왜 못 깨달았을까.


새벽퇴근길 다리 밑에서 그 커다란 뚱땡이의 따라오는 발소리를 왜 난 못 알아챘을까.




흉기라도 찾으면 수사에 진전이 있을 것 같다고? 병신들. 그러니까 지금.

도끼는 지금 내 머리에 꽂혀있다고.




제발 빨리 나를 찾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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