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노킹 온 헤븐즈 도어> 잡담 글
짧은 영화 잡담글_<노킹 온 헤븐즈 도어>
문득 오래전에 큰 감명을 주었던 영화 <노킹 온 헤븐즈 도어>가 생각났다.
시한부인 마틴과 루디, 병원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두 남자는 둘의 공통된 마지막 소원인 '바다'를 보고자 무작정 일탈을 한다.
'바다'는 그들의 인생 마지막 경주의 목표였고 이 영화는 두 경주마들의 아름다운 단말마다.
마틴과 루디의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유쾌하고 슬픈 레이스가 영화 끝에서 바닷가란 종착지에 도달했을 때, 벅차오르던 형언할 수 없는 차가움과 뜨거움을 잊을 수 없다.
죽음을 목전에 둔 청년들이 우여곡절 끝에 그들이 꿈꾸는 낙원에 당도하여 바다의 고요함에 취하던 모습.
그들은 단어 그대로 그들의 천국문에 노크할 수 있었고 도망침의 끝에서 낙원을 찾았다.
사는 과정은 죽어가는 과정과 같기에 모두가 살아가지만 동시에 죽어가고 있다.
죽음을 향해 시시각각 달려가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죽음에 다가가고 있을까
유튜브를 보면 요즘 길을 가는 시민들과 인터뷰를 하는 콘텐츠가 많이 눈에 띈다.
그것들을 볼 때마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어쩜 한 명 한 명 각자의 대단한 역사를 가진 사람들인가~ 참 멋지다'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나에겐 결핍된 부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겐 참 경외감이 든다.
그들은 각자 어떻게 죽어가고 있을까?
그들이 가려는 낙원은 어디인지, 어디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사람들인지, 혹은 반대로 무언가를 쫓고 있는 건지 한번 물어보고 싶다.
그들의 생기 있는 눈에서 느껴지는 것과 다르게 나의 본질은 종이컵의 안쪽 면처럼 사회와 잘 섞이지 않는 재질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런저런 내용물들을 채워 넣다 보니 어느새 기름칠은 다 씻겨지고 푹 젖어서 뭉개진 컵이 되었다.
다시 말려도 제 기능을 할 순 있을까?
그렇다고 성질이 바뀐 대로 살기엔 내가 추구하던 낙원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것 같아 적잖이 씁쓸하다.
철새는 죽지 않는다. 멀리 날아갈 뿐이다.
날아간 철새는 돌아오지 않는다. 죽었기 때문에.
삶은 그저 아이러니 그 자체이다. 모 노래가사처럼 공부하느라 책 볼 시간이 없고, 재밌게 살려고 힘들게 일을 하는 세상이다.
마틴과 루디도 멋진 죽음을 위해 누구보다 한시적인 삶에 집착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인다.
호그와트는 존재하지 않고 시계토끼도 없으며, 낡은 벽장 속 그 너머에도 나니아는 없다.
이미 다 깨달아버린 우리는 어떤 낙원을 꿈꿔야 할까.
나는 그저 잔인한 현실에 도망치며 사는 바보 같은 이상주의자지만 그래도 그렇기 때문에 사람다운 것 같다.
모두가 마찬가지, 세상 모든 바보 같은 사람들이 여러 방향으로 도망치는 곳곳마다 낙원이 있기를 바란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좇는 사람도, 무언가에 끊임없이 도망치는 사람도 다들 기운 내길.
마틴과 루디처럼 낙원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짧을 수도 있으니.
영화 속에서 마침내 드디어 꿈꾸던 바다 앞에 선 루디는 말했다.
"두려울 것 하나도 없어"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도 분명 낙원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