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2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라디오 듣는 것을 좋아했다. 학창 시절과 교사가 되고 난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는 밤 10시, 12시에 시작하는 라디오를 많이 들었는데 그 시절 꾸준히 들었던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는 '잘 자요'로 유명한 "성시경의 푸른 밤"과 "스윗소로우의 텐텐클럽" 등이 있다. 고요한 밤에 라디오 DJ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좋은 노래도 듣고 여러 가지 사연에 공감하면서 웃고 우는 시간, 그 시간에 같이 라디오를 듣고 있는 사람들과 마치 한 공간에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던 시간들...
늦은 시간에 내가 애정하던 DJ들이 라디오 방송을 그만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밤에 라디오를 듣지 않게 되었다가 영케이 매력에 빠져서 영케이가 진행하는 "데이식스의 키스 더 라디오"를 작년부터 올해 여름까지 열심히 들었다. 데이식스 노래들이 역주행하고, 그들이 월드 투어를 준비하며 이런저런 활동이 많아지면서 영케이가 매일 라디오 DJ를 하는 게 어려워져 올해 여름 하차하면서 이렇게 또 나의 밤 시간 라디오 듣기도 끝이 났다.
첫 고3 담임을 하게 되면서 운전을 시작하게 되고 난 후부터는 출퇴근시간에 차에서 라디오를 많이 들었는데 출근길에는 꾸준히 "굿모닝 FM"을 들었다. 전현무, 김제동, 장성규, 지금의 DJ 테이까지. 아침에 출근길에서 듣는 라디오는 밤에 집에서 조용히 듣는 라디오와는 완전 다른 느낌이다. 날씨, 교통 정보뿐만 아니라 유용한 정보도 많이 나오고, 아침에 피곤한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 활기찬 느낌이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라디오를 들을 때 문자를 보내거나 각 방송사 라디오 앱 게시판에 글을 올리거나 신청곡을 보내거나 하는 등의 참여를 종종 한다. 내가 보낸 신청곡이 소개되어 멘트와 함께 노래가 흘러나올 때, 내가 쓴 글이 내가 좋아하는 DJ 목소리로 소개될 때의 짜릿함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통화를 하면 종종 전화 목소리가 예쁘다는 이야기를 제법 들었던 나는 노래 부르기도 좋아하고, 글을 읽고 손편지도 좋아하던 여학생이었으므로 라디오 DJ를 꿈꾼 적도 있다. 그런데 신규 발령을 받은 첫 해 업무가 방송 업무라니… 방송 업무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스트레스받을 때면 라디오 부스처럼 보이는 방송실에 몰래 들어가 노래를 듣기도 하고, 각종 공지사항을 알릴 때나 아이들이 음악 방송을 진행할 때 나도 종종 마이크를 통해 내 목소리를 전교에 울려 퍼지게 하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24살이었으니 내 목소리가 나갈 때면 남학생 몇 명이 "이 예쁜 목소리 여학생 누구야?"라고 방송반 아이들에게 물어봤고, 정생물 선생님이라는 걸 알게 된 후 실망하기도 했었지ㅋㅋㅋ
교사 생활을 하게 되면서 목을 많이 써서 목소리도 변하고, 이제 노래방에 가도 고음이 잘 되지 않아 슬프지만 아직까지 내 마음 한 구석에 라디오 DJ의 꿈이 꿈틀거리고 있다. 작년 말 우리 학교는 겨울방학 학교 공사로 인해 12월 말에 졸업식을 하게 되었고, 졸업식날 아침 출근길에 "굿모닝 FM, 테이입니다."를 듣다가 우리 반 아이들 졸업을 축하해 달라고 문자를 보냈는데 소개가 안 되어 아쉬웠다. 그런데 한 2주쯤 후에 굿모닝 FM 작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요즘 트렌드를 알아보는 유행본부라는 코너에 졸업 트렌드를 다룰 예정인데 전에 보낸 고3 담임 문자를 보고 연락드렸다며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셨다. 그러더니 코너 진행 상황에 따라 전화 연결을 할 수도 있는데 가능하겠냐고 하셔서 테이랑 한번 대화를 해보고 싶은 마음에 좋다고 대답을 했다. 작가에게서 전화 연결을 하겠다고 다시 연락이 왔고, 드디어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아침 라디오 전화 연결이 되었는데...
하필 그 주 테이는 방송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뮤지컬 배우 손준호 님이 일일 DJ를 했고, 유행본부라는 코너는 전민기 유행사무총장님이 같이 진행하는 코너라 두 분과 함께 떨리는 마음으로 5분 동안 전화 통화를 했다. 5분 동안 내 목소리가 전국 라디오 방송을 타고 나간 것이다. 내가 아는 선생님들 중에 출근길에 굿모닝 FM을 듣는 분들이 많았는데 방학이라 그런지 많은 분들이 듣지는 못했지만 몇몇 분들이 실시간으로 들었다며 알려주셨고, 못 들은 친한 친구들에겐 휴대폰 앱으로 녹음한 파일을 전송해서 들려주었다. 이 글을 쓰면서 음성 메모 들어가서 다시 한번 들어봤는데 그때의 설렘과 떨림이 떠오르면서 흐뭇하게 듣고 있다가 마지막 멘트에 또 빵 터져버렸다. 마지막에 "안녕" 하면서 해맑은 목소리로 인사하고 전화 연결이 종료되었는데 손준호 DJ가 나에게 홍삼 선물 세트를 보내준다는 멘트를 하자마자 전민기 아나운서가 “홍삼보다 케이크 좋아하실 것 같은데" 하셔서 거기 라디오 부스에 계신 분들이 크게 웃는 웃음소리가 방송에 나오는데 그 부분이 진짜 웃긴다. 그래도 뭔가 목소리는 어려 보이는 느낌을 받았기에 홍삼보다는 케이크 좋아하실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신 게 아닐까 하면서 혼자 좋아했다. 정생물의 생애 첫 라디오 방송 목소리 출연이 궁금한 분들은 연락 주시면 파일 보내드립니다ㅋㅋㅋ
나는 주파수가 제대로 안 맞을 때 지지직 거리는 라디오 방송도 들었지만 그 후 컴퓨터랑 휴대폰 앱으로 라디오 방송을 더 많이 들은 세대이다. 예전에는 라디오 방송에 편지와 엽서로 사연을 신청했지만 요즘은 문자를 보내거나 게시판에 글을 쓰고, 이제는 보이는 라디오 방송도 많이 한다. 라디오 방송은 여러 형태로 진화해 왔지만 지금도 라디오만의 감성은 아직도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모르는 사람들과 라디오를 들으면서 실시간으로 1~2시간을 같이 공유하면서 함께 만들어가는 시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위로를 받기도 하고, 정보를 습득하기도 하고, 내 마음에 쏙 드는 몰랐던 노래를 알게 되어 즐겁기도 하며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누구보다 기뻐하면서 따라 부르기도 하는 시간들.
아무튼 라디오, 수많은 다른 콘텐츠들이 날 유혹하지만 라디오만의 감성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쭉 라디오와 함께 할 것이다. 오늘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수 김동률의 신곡 “산책”이 오후 6시에 나온다. 오늘 밤에는 라디오를 들으면서 산책을 신청곡으로 보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