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같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by 최정식

대학교 1학년 때 일이다. 미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서울대를 그만두고 외대 인도어과에 진학한 한 살 위 형이 있었다. 그 형은 늘 무게가 있어서 철학자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어느 날 그 형과 나는 긴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주로 말을 했고 형은 사색을 하며 내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 형은 내 불우한(?) 가정환경 이야기를 다 듣고 나더니 "씨는 좋은데 밭이 안 좋았네, 좋은 밭이었면 훨씬 더 큰 일을 했을 텐데..."라고 말했다. 무슨 도사가 할 법한 이야기였는데, 어쨌든 내가 잘났다는 이야기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씨는 좋은데 밭이 안 좋다"는 말을 3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는 걸 보면 그 말이 그 이후로도 내 생각에 오래 머물렀던 것 같다. 이 말은 때때로 내게 위로를 주었을 것이다. 내가 소위 잘 나가지 못하는 이유가 밭에 있다고 하면서 자책을 면한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 말을 옮기며 '나는 환경이 좋았다면 더 잘 나갔을 거야!'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그것에 동의했던 것 같다.

신학대학원을 다닐 때 한 선배가 자신이 사역하는 교회의 장로님 딸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그 교회는 강남에 있는, 우리 교단에서는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큰 교회였다. 그 선배는 그러면서 "너도 이제 고생 그만해라. 네가 그 자매랑 결혼하면 유학도 갈 수 있을 거야"라고 덧붙였다. 그 선배는 참 가난하게 살아왔고, 신대원생으로 여전히 점심 끼니 걱정을 하는 내 모습이 보기 안쓰러웠는지, 나를 개천에서 벗어나게 해 줄 자매를 소개해주려고 한 것이다. 나는 출세해야겠다거나, 지금의 가난한 상황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서는 아니지만 그 선배의 호의를 받아들여 소개팅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소개팅 날짜가 다가올수록 지금의 내 아내에 대한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그래서 결국 그 약속을 삼 일 전에 취소하고 바로 다음날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약속을 취소하겠다고 하자 그 선배는 내가 나중에 후회할 거라고 엄포 아닌 엄포를 놨다. 하지만 난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물론 그 선배가 걱정했던 것처럼 가난한 두 사람이 만나 가난한 가정을 이뤘고, 둘째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참 가난하게 살았다. 지금도 우리 부부의 수입은 5인 가족의 최저생계비 정도지만, 우리는 우리가 가난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삼 남매를 둔 자식 부자이니 남부러울 것이 없이 살아간다.

인도 선교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 세 가정과 함께 소금교회라는 작은 교회를 시작했다. 5년이 다 되는 지금 우리 가정을 포함해서 여섯 가정이고 아이들을 포함해서 스무 명 정도의 성도수다. 친한 동기 목사님이 괜찮은 목회자 청빙 공고가 나왔는데 지원 안 하냐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종종 묻는다. 그때마다 나는 소금교회가 있으니 관심 없다고 웃으며 대답한다. 농담반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정말 그렇게 하라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고, 진담반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 목사님이 목회자로서 내 능력을 높게 평가한다는 것이 느껴지지 때문이다. 얼마 전에 나는 문득 생각해 보았다. 내가 조금은 여유 있는 가정환경에서 자랐다면 나는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까? 혹 아버지가 목사였다면, 우리 교단 교회에서 자랐다면 나는 지금 다른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었을까? 답을 얻는 데는 단 일초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혹 그런 환경에 태어나고 자랐더라도 여전히 외대 인도어과를 선택하고, 지금의 아내를 선택하고, 인도에 갔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소금교회에서 사역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 비싼 음식은 좀 더 자주 먹었을 수 있고, 사는 집이나 타는 차는 바뀌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여전히 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 동안 내가 결정을 내릴 때마다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밭이 씨앗을 결코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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