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들이 인도에 들어올 때, 대체적으로 학생 비자나 비즈니스 비자를 선택한다. 이 중에도 비즈니스 비자는 사업체가 있어야 하니 초기에 쉽지 않고, 현지어도 배워야 하니 학생비자를 선택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학생비자는 초기에는 어학원 같은 곳을 통해서 받다가 좀 젊은 선교사라면 인도 대학이나 대학원 진학을 도모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영어로 진행되는 인도 대학이나 대학원 공부가 그리 쉽지 않으니 막상 그 과정에 있는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캠퍼스 사역을 할 것이 아니면 추천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내 경우는 선임 선교사가 접으려고 하는 사업체를 인수해서 처음부터 비즈니스 비자를 받았다. 대학 때 전공을 살려 대학원 진학을 시도하려다가 대학원 공부를 마친 다른 선교사의 조언을 듣고 마음을 바꿨다. 게다가 인도 오기 직전에 따놓은 태권도 4단을 어떤 형태로든 쓸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비즈니스 한다는 것은 공부를 한다는 것보다는 현지 사람들에게 좋게 인식이 된다. 세 자녀 가정에 가장이 공부를 한다고 하면, 십중팔구는 무슨 일을 하면서 먹고 사냐고 묻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비자를 위한 사업 구상을 하면서 태권도장을 차릴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 경우 외국인으로서 인도에서 작은 가게 하기도 어려운데 막상 그럴싸한 도장을 운영하려면 말 그대로 그 일에만 미친 듯이 전념해야 하고 그러면 주객이 전도될 것이 눈에 선했다. 그래서 떠오른 생각이 인도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었다. 태권도 사범 이력서를 써서 여러 학교들을 찾아다녔지만 이미 현지 지도자가 있거나 혹은 별 관심이 없었다. 이 와중에 찾은 학교는 신설된 지 2년 된 학교고 스포츠를 강조하는 학교였다. 이곳에 이력서를 내고 교장선생님과 체육과장 선생님과 면담을 해서 그 자리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주일에 이틀 가르치기로 결정이 되었다.
초기 정착기 2년 중에서 1년 넘게 그 학교에서 파트타임으로 태권도를 가르치며 누린 유익이 여러 모로 컸다. 먼저는 주변 이웃들에게 내가 하는 일이 분명했기 때문에 사회적 신분이 보장되었다. 내가 그 학교에서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다고 하면 다들 그렇게 생활해가는구나 하고 넘어갔다. 지역 경찰이 조사를 나왔을 때도 학교장 편지 하나를 보여주니 하는 일이 분명하다며 별말 없이 외국인등록절차가 마무리되었다. 다음으로는 현지인을 안정된 위치에서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학교 동료들만이 아니라 학생들을 만나 그들의 생각을 책이 아닌 삶 속에서 엿볼 수 있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힌디만이 아니라 인도 전반에 걸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은 즐겁게 나를 도와 주웠다. 여기에 월 40만 원 정도의 현지 수입까지 있어서, 회사는 수입이 나서 좋았고 가정적으로는 월세를 낼 수 있어서 초기에 후원만으로는 부족한 생활비를 충족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