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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 상남자 Mar 01. 2022

아이가 본능에 충실해지려 할 때
등장해야 하는 부모

2022년 3.1일 삼일절 아침이 밝았다. 

어제 밤에 두 딸과 함께 침대에 누웠는데 '3월 2일'에 대해서 한참을 이야기 나눴다. 


이제 2학년이 되는 딸은 3월 2일에 새로운 교실에 가서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긴장되고 두려운 생각이 든다고 했다. 


"윤아,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생각을 하니 윤이 마음이 많이 두근거리나 보구나. 윤이가 긴장되고 두렵다고 했는데 아빠 생각에는 그 마음 속에는 설렘도 있고 기대감도 있을것 같은데 어때?"


아이들에게 '감정'이란 때론 참 낯선것이다. 고요했던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장이 일어나는 것처럼 새로운 자극은 새로운 감정을 만든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 감정의 모습을 잘 모른다. 마치, 어두 컴컴한 호수에서 물결치는 '소리'만 눈에 보이는 것처럼. 


그래서 그 감정을 해석해주는 역할을 보호자가 해주어야 한다. 아이의 눈에 보이지 않는, 막연하게 느껴지는 '그것'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생존'을 생각한다. 파충류의 뇌가 포유류의 뇌보다 우선하는게 그 이유다. 위험이 감지되면 일단 뒤도 보지 말고 도망가야한다. 동굴 밖에서 부시럭 거리는 소리가 난다고 호기심이 발동해서 혼자 쫄래쫄래 나가보던 원시인은 아마 우리의 조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걱정 많고 두려움 많은 이들의 후손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항상 '걱정'이 많다. 어제 침대에 누워 아이와 이야기를 할 때에도 아이는 3월 2일부터 마주하게 될 많은 것들을 '걱정'했다. 


선생님이 무서운 분이면 어쩌지?

시간 맞춰서 학교에 가야 하는데 늦으면 어쩌지?

친구들 중에 아는 애가 한 명도 없으면 어쩌지?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데 내가 말을 걸었는데 친구들이 모른체하면 어쩌지?

반에 이상한 애가 있으면 어쩌지?

1학년때 우리반에 있었던 그 애는 몇 반 된거지? 나랑 같은반 되면 어쩌지?

교실을 못찾으면 어쩌지? 

신발장에 내 이름이 없어서 어디에 신발을 넣어야 할지 모르면 어쩌지, 신발을 신고 교실에 가야할지 실내화를 신고 가야할지 잘 모르겠으면 어쩌지?

준비물 챙겨갔는데 사물함에 넣어야할지, 책상 속에 넣어야할지 고민되면 어쩌지?

......

'어쩌지'가 모여 어느 덧 걱정은 괴물이 되어 아이의 마음을 공격하고 있었다. 눈물까지 글썽이는 것을 보니..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만 걱정이 없겠네'


라는 티벳의 속담을 개인적으로 좋아하긴 하지만 이 상황은 '걱정하지마'로 해결된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다음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바로 '성공 경험'떠올리기.


'작년 1학년때 할머니가 윤이를 봐주시다가 갑자기 건강이 나빠지셔서 못오셨던거 기억나지? 그때 윤이가 갑자기 혼자 등교하게 되었잖아, 그때 혼자 학교갈때 기분이 어땠어? 우와, 씩씩하게 혼자 잘 갔었구나, 멋진걸'


'아빠, 엄마 출근하고 윤이 혼자 집에서 30분 있다가 학교 갔었잖아, 그때 혹시 학교에 지각한 적 있어? 지각해서 선생님한테 혼난적 있어? 한번도 없다고? 우와, 아빠는 어쩌다 늦을때도 있는데 윤이는 어쩜 한 번도 지각을 안했어, 대단하다!'


'작년에 윤이를 좋아한다고 고백(?)했던 친구가 누구누구였지? 그렇게나 많아? 윤이는 같이 놀자고 하는 여자친구도 많고, 남자친구도 많네. 그리고 혼자 있는 친구에게도 윤이가 가서 같이 놀았다고 했잖아, 그 친구 이름은 뭐였지? 이야, 윤이는 친구들도 많고 좋겠다.. 아빠도 친구 많은데 윤이는 아빠 닮아서 그런가봐'


지난 1년 동안 쌓아왔던 '성공경험'의 봉인이 하나씩 해제되자 그제서야 아이는 배시시 웃으며 파충류에서 포유류로 돌아왔다. 


좋은 것, 잘된 것, 성공한 것은 굳이 남겨놓지 않고 

걱정할 것, 실패한 것, 마음 아팠던 것을 차곡차곡 쌓아놓는 인간 생존 시스템이 참 지랄맞다.


그래서 곰살맞은 '부모'의 존재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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