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도 학생이 되어봐야 학생의 마음을 안다.
대학교때 낙성대 구민체육센터에서 수영 고인물들 사이에서 죽을둥살둥 수영하다 나는 수영은 힘들겠구나 싶었다. 그 이후로 수영을 멀리하다 직장에서 간 제주도 워크샵에서 깊은 물에서도 유유히 수영을 즐기시는 한 선배님의 여유에 반해 1회 레슨에 2만원이나 하는 그룹 레슨 수영장에 등록했다.
포기하지 않고 1년을 다녔다. 수영 실력이 는 건 사실이지만 실력이 그리 쭉쭉 늘거나 하진 않았다. 매번 똑같이 제공되는 피드백에 실증이 났다. 그런데 문득 내 실력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니 항상 그에 대한 피드백도 똑같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수영장을 바꿨다. 고인물들이 주로 등록한다는 구민센터로. 수영 실력을 늘리기보단 수영을 하는 것에 더 집중을 해야겠다 싶었다. 타구민은 등록할때 가장 마지막 순번이 배정되기에 어렵사리 등록에 성공했다. 인원은 마감인데 막상 수영을 하러온 인원은 그리 많지 않았다. 매월 초가 가장 많았고, 뒤로 갈수록 짧아졌다.
줄이 짧아지니 덩달아 대기 시간도 줄었다. 25미터를 찍고 한숨 돌리려면 내 앞에 있던 사람은 이미 출발했고, 뒤에 따라오던 사람은 내 뒷꽁무니를 쫓았다. 쫓기는 사람처럼 꾸역꾸역 출발하면 반대편 25미터가 까마득해 보였다. 갈 수 있을까 생각이 들면 숨이 가빠져 왔고, 힘이 들어간 몸은 납덩이를 얹은 것처럼, 가라앉는 타이타닉처럼 물 아래로 가라앉았다. 침수되는 배를 구사일생으로 끌고 반대편 기슭에 다다라서 기진맥진하고 하면서 ‘먼저 가세요’를 읖조렸다. 뒷 사람에게 비켜준만큼 자신감을 내려갔다.
구민센터 수영장에서 어떤 강사를 만나느냐는 참 복불복이라는 생각인데, 내가 만났던 2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강사님은 성실함은 있었지만 관심은 부족했다. 개별 피드백은 거의 없었고, 전체적인 설명만 있었다. 수강생들이 겪고 있는,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에 발생하는 간극을 좁혀주려는 노력은 부족했고, 그의 기대치는 높아졌다. 자유형 5바퀴에서 시작하던 워밍업이 어느새 10바퀴가 되었고, 내 주위에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수강생들의 모습에 지쳐 수영 슬럼프가 찾아왔다.
그리고 출근을 하니 반에 있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중 누구는 수학 시간에, 체육 시간에, 국어 시간에 내가 수영장에서 겪었던 그 어려움과 좌절감을 맛보고 있지 않을까. 이번 단원평가는 문제가 쉬우니 다들 백점 맞을 수 있을꺼야 하고 교사가 말할때, 나는 불가능할 것 같은데 생각하며 허탈함을 되뇌이고 있지 않을까. 설명을 듣고 나서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을때 나는 그들에게 친절한 추가 피드백을 제공하고 있었을까.
교사도 학생이 되어봐야 그 마음을 안다.